[손혁재의 지선 전망대 D-12] 박근혜·송영길 피습 등 정치테러 용납 안돼
16년 전 오늘(2006.5.20)은 제4회 지방선거의 법정선거운동 3일째 되는 날이었습니다. 이날 일어나서는 안 될 사건이 일어났습니다. 박근혜 한나라당 대표가 선거 지원유세 중 테러를 당한 것입니다. 박 대표는 오후 7시반쯤 서울 신촌 현대백화점 앞에서 오세훈 서울시장 후보 지원연설을 하기 위해 연단에 오르다가 피습을 당했습니다.
테러범이 휘두른 커터칼은 박근혜 대표의 오른쪽 얼굴에 11cm 정도의 상처를 입혔지만 다행스럽게도 치명적인 것은 아니었습니다. 테러범은 현장에서 붙잡혔고 10년을 옥살이했습니다. 이 피습사건과 관련한 에피소드가 있습니다. 병원에서 깨어난 박 대표의 첫 말이 ‘대전은요?’였다는 이야기가 알려지면서 대전시장 선거가 뒤집어졌다는 겁니다.
다소 과장된 해석으로 보입니다. 제4회 지방선거는 지지도가 20% 수준에 머물던 노무현 대통령 임기말에 치러진 선거라 처음부터 한나라당 압승 분위기였습니다. 다만 대전시장 선거는 엎치락뒤치락하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피습사건 이후 상황이 바뀌어 뒤지고 있던 한나라당 후보가 43.83% 대 41.14%로 아슬아슬하게 이겼습니다. “대전은요?”라는 말에 민심이 움직였다기보다는 테러에 대한 반발과 동정표가 쏠렸다고 보는 게 합리적인 분석일 겁니다.
지난 3.9 대선 과정에서도 테러가 있었습니다. 서울 신촌에서 선거운동을 하던 송영길 더불어민주당 대표가 둔기에 머리를 맞은 겁니다. 테러범은 옥중에서 극단적 선택을 했습니다. 어떤 명분으로도 테러는 합리화될 수 없습니다.
우발적이던 의도적이던 이 두 사건은 개인에 의한 단독범죄였지만 과거에는 조직적인 정치테러도 있었습니다. 대표적인 것이 1957년 5월 25일 일어난 ‘장충단집회방해사건’입니다. 1958년 제4대 국회의원 총선을 앞두고 선거법 개정을 추진하던 야당 국민주권옹호투쟁위원회는 이승만 독재를 성토하는 시국강연회를 장충단공원에서 열었습니다.
시민 30여만 명이 모였습니다. 시국강연회가 시작되자마자 각목을 든 괴청년 수십 명이 연단 위로 뛰어올라 난동을 부렸습니다. 자유당의 사주를 받은 이정재 등 동대문파 정치깡패들의 테러였습니다. 마이크와 앰프에 불을 지르고 사라질 때까지 경찰은 수수방관했습니다. 뒤늦게 나타난 경찰은 오히려 집회의 중단과 해산을 명령했습니다.
집회방해사건을 수사한 서울지검은 배후를 밝혀내지 않았습니다. 깡패들을 끌고 온 유지광 한 명만 재물손괴죄 등으로 구속기소하고 수사를 종결했습니다. 유지광은 8개월의 실형을 살았지만, 풀려난 뒤에도 정치 테러의 하수인으로 활동했습니다. 3·15 부정선거에도 개입했고 4·18 고대생 습격사건도 그가 저지른 테러입니다.
그러고 보니 내일(1967.5.21)은 장충단집회 경호책임자였던 김두한 전 의원이 선거연설 중 반공법 위반혐의로 구속된 날이기도 합니다. ‘국회 똥물 투척사건’(1966.9.22)으로 국회에서 제명당하고 구속되었다가 병보석으로 출감한 뒤 신민당에 영입돼 1967년 제7대 국회의원 총선(6.8)에서 경기도 수원에서 출마하였습니다.
김두한 후보는 선거 유세 중 한 남·북한의 전깃불 비교 발언이 북한 찬양이라며 반공법 위반혐의로 구속되었습니다. 중앙정보부에서 심한 고문을 받았고, 선거에서도 낙선했습니다. 김 의원보다 2주일 전(5.8)에는 1967년 제6대 대통령선거(5.3)에 출마했던 서민호 대중당 후보도 선거유세 중 발언 때문에 반공법 위반혐의로 구속되었습니다.
‘국민에게 큰 부담인 국방비 절약을 위해 감군해야 한다’는 연설(4.14)이 문제가 되어 사퇴했고, 대선이 끝난 뒤 구속됐던 겁니다. 공교롭게도 김두한 의원이 재선됐던 서울 용산구는 원래 서민호 후보의 지역구였습니다. 한일기본조약에 반대하는 서 후보의 의원직 사퇴로 치러진 보궐선거에서 당선된 김 의원이 나란히 반공법으로 구속된 건 우연일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