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혁재의 지선 전망대 D-11] 불순한 의도로 출발한 정당공천제

“무소속인 조봉암 국회부의장은 자유당 2인자 이기붕의 지역구(서울 서대문 을) 출마에 실패했습니다. 괴한들이 선거권자추천을 받는 걸 폭력으로 방해했고, 선관위는 추천인을 심사한다며 시간을 끌다 마감시간이 넘자 등록을 거부했기 때문입니다.”(본문에서) 사진은 재판을 받고 있는 조봉암 전 국회부의장(맨 앞)

모든 시민은 누구나 선거권과 피선거권을 갖습니다. 민주주의의 기본원리인 평등이 선거에서는 선거권과 피선거권의 평등으로 나타납니다. 성별, 인종, 종교, 언어, 재산정도, 직업, 사회적 신분, 교육수준, 정치이념 등으로 제한하지 않는 보통선거는 헌법으로 보장하고 있는 시민의 기본권입니다. 물론 제한이 전혀 없는 건 아닙니다.

국적, 나이, 거주지, 정신적인 판단능력, 법률상의 행위능력, 시민으로서의 자격능력 등으로 선거권과 피선거권을 제한하는 것이 일반적입니다. 제한 사유가 불가피하고 합리적인 기준에 따른 것이라면 보통선거의 원칙에서 벗어나는 건 아닙니다. 여기에 정당이나 선거권자의 추천을 받아야 한다는 요건이 추가됩니다.

후보자 추천제는 일정한 자격을 갖춘 시민만 후보가 되게 함으로써 후보자 난립을 막는다는 취지가 있습니다. 후보등록 단계에서부터 시민의 의사가 반영되는 효과도 있습니다. 추천권자가 누구냐에 따라 정당추천제와 선거권자추천제로 나눌 수 있습니다. 본인추천제도 있는데 우리나라에서는 채택하지 않고 있습니다.

정당은 공직선거 후보를 추천할 때 당내 경선을 할 수 있습니다. 공직선거법에는 당내 경선에서 공정한 경쟁을 보장하고 당내 경선운동이 본선거에까지 영향을 미치지 않도록 해야 한다고 규정하고 있습니다. 경선을 실시하지 않고 후보를 공천하기도 하는데 당선가능성이나 여성·청년 우대 등의 필요에 따른 것으로 전략공천이라고 합니다.

선거권자추천제는 시민이 무소속 출마 희망자를 추천하는 제도입니다. 물론 자신이 살고 있는 선거구에서만 추천할 수 있습니다. 시민이 추천할 수 있는 후보의 수는 제한이 없어 복수추천도 가능합니다. 정치활동이 금지되어 선거운동을 할 수 없는 공무원도 후보 추천은 할 수 있습니다. 

시·도지사 후보는 1천인 이상 2천인 이하의 추천을 받아야 합니다. 해당 시·도의 시·군·자치구의 3분의 1 이상에서 추천을 받되 지역마다 50인 이상이 되어야 합니다. 시장·군수·구청장 후보는 300인 이상 500인 이하, 시·도의원 후보는 100인 이상 200인 이하의 선거권자추천이 필요합니다. 상한선을 두는 건 추천을 빙자한 사전선거운동을 막으려는 겁니다.

시·군·자치구의원 후보는 50인 이상 100인 이하인데, 인구가 1천인이 안 되는 작은 선거구는 30인 이상 50인 이하의 선거권자추천을 받으면 됩니다. 정당 후보와 달리 무소속 후보에게만 선거권자추천을 받도록 한 것은 차별이라는 문제제기가 있습니다. 1996년 헌법재판소는 선거권자추천제가 불합리한 차별이 아니라는 판결을 내렸습니다.

정당 공천제가 처음 도입된 건 1954년 5월 20일에 치른 제3대 총선 때였습니다. 집권여당인 자유당이 처음으로 후보 공천제를 채택했고, 원내 제1야당인 민주국민당도 후보를 공천했습니다. 그 이전에는 선거권자추천제만 있었습니다. 정당정치의 발전에 기여했다고 평가받았지만 실제로는 자유당의 노림수가 숨어 있었습니다.

제3대 총선에서 자유당의 목표는 개헌선의 확보였습니다. 이승만 대통령의 임기 연장을 위한 개헌을 추진하기 위해 개헌에 소극적인 후보의 국회 진출을 막으려 했습니다. 자유당은 후보들로부터 개헌에 찬성한다는 각서를 받고 공천을 했습니다. 정당공천은 도입 의도부터 불순했고, 공천 심사과정은 폭력과 낙하산 공천으로 얼룩졌습니다.

개헌의 걸림돌을 제거하려는 정부여당은 관료와 경찰을 동원해 야당까지 노골적으로 탄압했습니다. 무소속인 조봉암 국회부의장은 자유당 2인자 이기붕의 지역구(서울 서대문 을) 출마에 실패했습니다. 괴한들이 선거권자추천을 받는 걸 폭력으로 방해했고, 선관위는 추천인을 심사한다며 시간을 끌다 마감시간이 넘자 등록을 거부했기 때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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