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혁재의 지선 전망대 D-73] 짧았던 봄날, 제2공화국 지방자치
이승만 정권에서 홀대 당하던 지방자치가 제2공화국에서는 짧은 기간이었지만 제 모습을 갖췄습니다. 제2공화국 헌법에서는 지방자치단체장의 선임방법을 법률로 정하되 적어도 시·읍·면장은 주민이 직접 선출하도록 규정해 놓았습니다. 정권유지를 위해 지방자치법을 멋대로 뜯어고치는 일이 되풀이되지 않도록 아예 헌법에 못 박아 놓은 것입니다.
헌법에 맞춰 지방자치법개정기초위원회를 구성한 국회는 1960년 11월 1일 지방자치법을 고쳤습니다. 원래 장면 정부의 그림은 시·읍·면은 완전자치로 행정의 민주화를 꾀하되, 광역자치단체의 장인 도지사는 중앙정부에서 임명하는 것이었습니다. 논란 끝에 4.19에서 드러난 시민의 민주화 열망에 맞춰 단체장은 모두 직선하기로 했습니다.
서울특별시장과 도지사를 포함하여 시·읍·면장은 물론이고 동·리장까지 주민이 직접 선출하는 직선제를 전면 도입하였습니다. 임기는 4년이었습니다. 지방의회 의장과 부의장에 대한 불신임제도를 되살렸습니다. 서울특별시장과 도지사, 시장이 법령을 위반하면 내무부장관이 징계위에 징계를 청구할 수 있도록 했습니다.
개정된 지방자치법에 따라 제3차 지방선거가 실시되었습니다. 1960년 12월 12일에 서울특별시 의회와 도의회 의원 선거, 이어서 12월 19일 시·읍·면의회 의원 선거, 12월 26일 시·읍·면장 선거, 12월 29일 서울특별시장과 도지사 선거가 한 달 사이에 차례로 실시되었습니다. 모든 지방자치단체의 장과 의원을 모두 주민이 뽑게 된 겁니다.
12월 12일 시·도의회 의원 선거에서 487명을 선출했습니다. 투표율은 67.4%였는데, 서울시 투표율이 46.2%로 가장 낮았습니다. 12월 19일 3차 시·읍·면의회 의원 선거에서는 25개 시의회 의원 420명, 80개 읍의회 의원 1천55명, 1,343개 면의회 의원 15,376명을 선출했습니다. 투표율은 시·도의회 선거보다 높은 78.9%였습니다.
12월 26일 두 번째 시·읍·면장 선거에서는 시장 26명 읍장 82명, 면장 1,360명을 선출하였습니다. 투표율은 75.4%였습니다. 3일 뒤 12월 29일 서울특별시장 및 도지사 선거가 실시되었습니다. 처음으로 광역자치단체장을 주민이 직접 선출한 겁니다. 잇단 선거로 주민 참여율이 낮아져 투표율은 선거사상 가장 낮은 38.8%에 그쳤습니다.
서울특별시장 후보는 15명, 도지사 후보는 모두 68명으로 경쟁률은 평균 8대1이었습니다. 선거 결과 여당인 민주당이 서울특별시 등 6곳에서 이겼고, 야당인 신민당은 3곳에서 이겼습니다. 나머지 1곳에서는 무소속이 당선되었습니다. 서울특별시장 선거는 기명투표제였는데 찬반 논란이 당연히 불거졌습니다.
제3차 지방선거는 1, 2차 선거보다 전반적으로 투표율이 낮았고, 무소속 진출이 두드러졌습니다. 주민의 관심과 참여가 줄어든 건 선거가 너무 자주 잇달아 치러졌고, 이승만 정권의 붕괴로 관권 개입이 대폭 감소해 동원이 줄었기 때문입니다. 장면 내각 성립 이후 민주당의 신파와 구파가 갈라져 분당한 것도 영향을 미쳤을 겁니다.
제3차 지방선거는 참정권을 강화시킨 선거였습니다. 선거연령이 21세에서 20세로 한 살 낮아졌습니다. 전체 인구 중 유권자 비율이 42%였던 제1차 지방선거보다 10.5%나 늘어나 52.5%가 되었습니다. 또 부재자투표제를 도입했습니다. 부재자투표 신고를 한 유권자는 전체 유권자의 3%나 됐습니다. 부재자 투표율은 65%였습니다.
지방자치단체장과 지방의원을 모두 주민이 직접 뽑는 완전한 지방자치가 제도상으로 완성되었지만 안타깝게도 제대로 운영되지는 못했습니다. 5.16쿠데타가 일어나면서 5개월 만에 지방자치가 중단되고 말았습니다. 30년이 지난 1991년에 부활될 때까지 지방자치는 여당의 권력기반을 약화시킬 것이라는 우려 때문에 계속 금지되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