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혁재의 지선 전망대 D-75] “지방자치는 중앙정치 들러리 아닌 내 고장 일꾼 뽑는 것”
지방선거에 출마하겠다는 의지를 밝히는 이들이 부쩍 많아지고 있습니다. 예외 없이 ‘지역 발전’을 출마의 변으로 내세우지만 정말 그런지는 의문입니다. 특히 광역자치단체장의 경우 정치적 이해관계에 따라 출마하고 공천하는 것이 관행이었습니다. 지금도 각 정당들은 ‘필승카드’라는 이름으로 누가 출마해야 이길지를 저울질하고 있습니다.
지방자치와 지방선거가 지방의 필요, 주민의 의사와는 무관하게 실시되어 왔기에 벌어지는 일들입니다. 잘못된 관행의 첫 단추를 꿴 건 지방자치를 권력 확대와 유지의 수단으로 여겼던 이승만 정권과 자유당입니다. 지방자치를 멋대로 연기하기도 하고, 전쟁 중에 갑자기 지방선거를 치르는 등 오로지 정치적 손익 계산만 따랐습니다.
편법과 관권을 동원하고도 1956년 제2차 지방선거에서 참패한 자유당은 지방자치를 약화시키고 싶어 했습니다. 1960년 제4대 정부통령 선거를 앞두고 지방행정 조직을 장악할 필요가 있었던 겁니다. 제4대 총선(1958.5.2)에서 공공연하게 부정선거를 저질렀음에도 자유당은 4석이 준 반면 민주당이 33석이나 늘자 위기감을 느꼈기 때문입니다.
야당 출신 선출직 시·읍·면장은 중앙정부의 지시를 무조건 따르는 게 아니므로 자유당에 불리한 직선제를 임명제로 바꾸었습니다. 지방의원 임기는 3년에서 4년으로 환원시켰습니다. 지방의원의 임기를 3년에서 4년으로 1년 늘린 것은 1959년 8월에 예정된 지방의원 선거를 대통령 선거 뒤인 1960년 8월 이후로 미루기 위해서였습니다.
제1기 지방의회와 달리 자유당에 불리하게 구성된 제2기 지방의회가 정부통령 선거에서 불리하게 작용하지 못하도록 지방의회의 힘도 약화시켰습니다. 의회해산권과 불신임의결권을 부활시켰습니다. 지방의회 폐회 중 위원회를 열지 못하도록 했고, 지방의회가 법정일수보다 많이 열리는 걸 막으려고 감독기관의 폐회 명령권을 도입했습니다.
어느 나라 어느 시대건 독재정권은 의회를 좋아하지 않습니다. 유신 때는 형식상으로 대통령이 추천하고 통일주체국민회의가 의결했지만 아예 대통령이 국회의원의 3분의 1을 임명했습니다. 5공 때는 국회가 1년에 150일 이상 열리지 못했고, 모든 회의는 오후 2시에 열어야 했습니다. 자유당이 지방의회를 약화시킨 것도 같은 맥락입니다.
지방자치를 위축시키는 방향으로 지방자치법을 고치는 걸 제대로 막지 못한 건 국가보안법 때문이었습니다. 자유당은 1958년 8월 5일 지방자치법 개정안을 국보법 개정안과 함께 국회에 상정했습니다. 국보법 개정의 골자는 대공 사찰 강화와 언론 통제였습니다. 민주당은 야당 탄압의 도구가 될 국보법 개정을 막는데 주력했습니다.
상대적으로 지방자치법 개정 문제는 관심 밖으로 밀려났습니다. 민주당은 보안법 반대 국민대회 준비위원회를 구성해 규탄대회 가두시위 등을 벌였습니다. 법안의 처리를 둘러싸고 여야 의원 사이에 폭력 소동까지 벌어졌습니다. 1958년 12월 24일 자유당은 폭력까지 행사하면서 국가보안법 개정안을 변칙 통과시켰습니다. 이걸 ‘2.4 파동’이라 부릅니다.
무술경찰 3백명을 국회에 투입시켜 국회 본회의장에서 무기한 농성 중이던 민주당 국회의원 80여명을 끌어내 지하실에 감금시켰습니다. 자유당 의원 128명만으로 국보법 개정안을 통과시켰습니다. 지방자치법 개정안도 함께 통과되었습니다. 그러나 4차 지방자치법 개정안의 내용은 실현되지 못했습니다. 4.19혁명으로 이승만 정권이 무너졌기 때문입니다.
지방자치는 중앙 정치의 부속물이거나 장식품이 아닙니다. 지방선거는 중앙 정부에 대한 ‘시민의 심판’이 이뤄지는 중간평가가 아니라, 지방정치인에 대한 ‘주민의 선택’이 이뤄지는 축제가 되어야 합니다. 6.1 지방선거가 3.9 대선에 영향 받지 말고 누가 정말로 다음 4년 동안 지역을 위해 열심히 일할 일꾼이 될 것인가를 판단하는 기회가 되기를 바랄 뿐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