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허정균의 계축일기] 장닭(짱) 아닌 서열 2위 수탉의 삶
닭의 세계에서 장닭(짱)이 아닌 서열 2위 수탉의 삶은 비참하다. 같은 밥상에 오르지도 못하고 짱의 눈치를 보며 뒷전에서 얼쩡거리다 먹다 남은 것을 주섬주섬 챙겨먹는다. 만만한 암탉을 어찌 해보려다 짱에게 쪼임을 당하기 일쑤다.
여기서 서열 2위 수탉의 행보는 크게 3가지로 갈린다. 현실을 인정하고 짱에게 굴종하며 목숨을 보전하는 길이다. 대부분의 수탉들이 이 길을 걷는다. 그러나 참고 지내며 실력을 키운 후 짱에게 도전하는 놈들이 있다.
때로는 성공해 짱이 바뀌는 경우도 있다. 소설이는 2017년 11월 세상에 나와 이듬해 8월 지 아비인 짱을 30분간의 격투 끝에 제압하고 짱으로 등극한 이후 현재까지 그 지위를 뺏겨본 적이 없다. 중간에 두어 차례 도전을 받았으나 결국 이를 물리쳤다.
성격은 사나운데 실력이 도저히 미치지 않는 놈은 짱의 핍박을 견디지 못하고 탈출을 시도한다. 그동안 어떻게 나왔는지 불가사의할 정도로 닭장 밖으로 나온 경우가 더러 있었다.
고구려 지배계급의 압박을 피해 북으로 이동한 흑수말갈족이 충분히 이해가 간다. 이런 수탉들은 주인에 의해 운좋게 제2계사나 3계사로 이동되어 제후국의 짱이 되는 경우도 있다.
지난 3월 8일 경기도 포천의 지인이 와서 조선닭 1쌍을 분양해갔다. 짱인 소설이 때문에 기를 펴지 못하고 살던 수탉이 경기도 포천에서 짱으로 등극한 것이다. 그 소식을 알려왔다.
“허 선생님 어제 너무 감사했습니다. 주신 조선닭은 무사히 와서 아침을 열었습니다. 모든 닭들이 텃세는 커녕 알아서 모두 꼬리를 내리네요. 조선닭의 위용이 대단합니다. 시간 되시면 꼭 한번 찾아주세요. 그럼 늘 건강하시길 기원하며 인사 올립니다.”
사람 세상이나 닭 세상이나 닮은 점이 제법 많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