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잠깐 묵상] 당신은 무엇을 그리며 사십니까?
무엇을 그리며 사는가? 어떤 지도를 주로 사용하십니까? 구글 지도를 사용하는 분도 계시고 카카오맵이나 네이버지도를 사용하는 분도 계실 겁니다. 최첨단 IT기술 덕분에 우리는 전세계를 손 위에 올려두고 손바닥 들여다보듯 볼 수 있는 시대에 살고 있습니다. 그렇다보니 여호수아서를 읽을 때 대수롭지 않게 지나치는 부분이 생기는 것 같습니다. 과연 이스라엘은 가나안 땅이 어떻게 생겼는지나 알았을까요?
여호수아 18장 2, 3절에 보면 다섯 지파가 정복전쟁을 치르며 땅을 차지하는 동안 일곱 지파는 가만히 있었습니다. 그들이 게을러서 그랬을까요? 그렇게만 말할 수는 없는 게 당시에 한 번도 가보지 않은 땅에 들어가서 전쟁을 한다는 것은 눈을 가리고 전쟁에 뛰어드는 것과 같았기 때문입니다.
산은 어디에 있고 산 너머에는 무엇이 있으며, 마실 물을 구할 수 있는 곳은 어디이고 마을과 마을 사이의 거리는 얼마나 되는지 등과 같은 정보 없이 하는 전쟁은 자살행위와 다름 없다고 할 수 있습니다. 그래서 여호수아가 일곱 지파에게 한 주문이 정말 탁월했다고 말할 수 있는 것입니다.
18장 4절입니다. “너희는 각 지파에 세 사람씩 선정하라 내가 그들을 보내리니 그들은 일어나서 그 땅에 두루 다니며 그들의 기업에 따라 그 땅을 그려 가지고 내게로 돌아올 것이라” 지도 그리는 주문을 한 것입니다.
처음 가보는 땅을 두루 다니며 지도를 그리려면 마을이며 골짜기며 들로 산으로 발이 부르트도록 다녀야 했을 것입니다. 다니면서 오만 것들을 눈여겨 보고 메모하지 않았을까요? 가본 곳을 또 가보기를 수도 없이 반복했을 것입니다.
양피지나 파피루스 조각 위에 지도 하나를 그리기 위해서는 머릿속으로 수백 번 수천 번을 그려야 합니다. 눈을 감으면 그 땅의 디테일이 모조리 떠올라야 가능한 것이 당시의 지도 그리기였습니다. 그들이 마침내 지도를 완성했을 때는 이미 그 땅이 가슴 속에 새겨진 이후가 아닐까요? 그렇게 그들은 지도를 그리는 동안 그 땅을 받을 만한 사람으로, 그 땅을 다스릴만한 사람으로 변화되어 갔습니다.
오늘 말씀 앞에서 나는 마음 속에 무엇을 그리며 사는 사람인지 생각해 봅니다.
석문섭 목사의 오디오 묵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