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잠깐 묵상] 당신은 어느 쪽?···‘내 노력의 성과’ vs ‘내게 주어진 은혜’

밀레의 ‘만종’

신명기를 읽어가다 보면 사회적 약자를 배려하는 율법들이 상당히 많다는 것을 알게 됩니다. 오늘 통독 진도 안에서만 꽤나 여러가지 발견할 수 있습니다.

신명기 23장 15, 16절에는 주인을 피하여 도망나온 종을 만난 경우 그 종을 주인에게 되돌려 보내면 안되고 도피처를 마련해 주어야 합니다. 무슨 이런 법이 있을 수 있을까요?

종에 의해 악용될 소지가 다분하지만 아마 이 법 때문에라도 주인들은 종을 함부로 대하지는 못했을 것 같습니다. 3500년 전의 고용보험이라고 할 수 있겠네요. 신약성경 중에서는 사도바울이 쓴 빌레몬서가 바로 이 구절의 적용입니다.

신명기 23장 24, 25절에 나오는 율법도 인상적입니다. 타인의 포도원에 들어가서 포도를 배부르게 먹어도 되고, 타인의 곡식밭에 들어가서 한 손 가득 이삭을 따도 상관 없습니다. 물론 상한선이 정해져 있긴 하지만 무슨 주말농장 체험 프로그램도 아니고, 밭 주인의 입장에서는 유쾌한 법은 아니었을 것 같습니다.

24장 13절에는 저소득층이나 기초생활수급자에게 담보물을 받고 돈을 빌려줬을 경우에 담보물을 해 지기 전에 돌려주라는 법도 나옵니다. 그냥 담보 설정을 하지 말라는 얘기입니다.

24장 19절 이하에 보면 추수 후에 깜빡하고 밭에 두고 온 수확물은 다시 찾아올 수 없었습니다. 나그네와 고아와 과부들 몫이라는 것입니다. 추수 작업 자체도 너무 꼼꼼하게 하지 말고 생계가 어려운 사람들을 위해 적당히 남겨두라는 것입니다.

이 법의 혜택을 받는 사람들 입장에서는 감사한 법이지만 이 혜택을 제공해야 하는 사람들에게는 그렇게 유쾌하지만은 않은 법 같습니다. 그런데 이스라엘 민족 자체가 하나님으로부터 이런 혜택을 제공받으며 지내왔다는 것을 생각해 볼 필요가 있습니다.

이집트로부터 탈출한 히브리 노예들을 하나님은 다시 이집트로 되돌려 보내지 않으셨습니다. 가나안 땅에 들어가서 그 땅의 소출을 마음껏 취할 수 있도록 허락하셨습니다. 광야에서 하루 먹을 양식이 없을 때, 만나와 메추라기를 내려주셨습니다.

심지어 하나님께 반역한 날 다음 날도 어김 없이 주셨습니다. 그들의 생존권을 담보로 삼지 않으셨다는 것입니다. 또한 하나님은 언제나 은혜의 여지를 남겨두셨습니다. 심판의 낫을 단 한번도 끝까지 대보신 적이 없으셨습니다. 사실상 이스라엘 민족 전체가 하나님으로부터 이런 혜택을 받고 있었다는 것입니다.

‘내 노력의 성과’라고 생각하는 만큼 나를 위해 쓸어 담을 것이고 ‘내게 주어진 은혜’ 라고 생각하는 만큼 남을 위해 남길 수 있을 것입니다. 받았다고 생각하면 베풀어도 아깝지 않고 벌었다고 생각하면 조금 베푼 것 가지고도 생색내게 되는 것 아닐까요?

나는 얼만큼을 벌었고 얼만큼을 받았다고 여기며 살고있는지 생각해 봅니다.

베이직교회 석문섭 목사의 오디오 묵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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