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혁재의 대선 길목 D-3] 자연재해와 선거
안타까운 일이 일어났습니다. 온 나라 곳곳에서 산불 등 대형화재가 잇따르고 있습니다. 특히 3월 4일부터 시작된 경상북도 울진과 강원도 삼척 강릉 영월 등의 산불은 매우 심각합니다. 이 지역에는 원자력발전소와 LNG 저장소 등이 밀집해 있어, 산불이 이런 국가 기간시설들로 옮겨 붙는다면 그 피해는 엄청날 겁니다.
산불재난 국가위기경보의 최고 단계인 ‘심각’ 단계가 발령됐고, 주민대피령에 따라 시민 수천명이 대피했습니다. 소방당국과 산림당국이 인력과 장비를 총동원해 산불을 끄려 애쓰고 있지만 쉽지 않습니다. 날씨는 계속 건조하고, 지역에 따라 강풍이 부는데다, 비 소식도 당분간은 없어 기후 조건도 매우 나쁩니다.
제발 피해 지역 시민들의 생명과 재산, 그리고 화재 진압에 애쓰고 있는 관계자들의 피해가 적기를 바랍니다. 문재인 대통령은 10년 이내 최대라는 산불 피해의 신속한 복구와 피해 지원을 위해 “피해 지역에 대한 특별재난지역 선포를 검토하라”고 지시했습니다. 윤석열 후보와 이재명 후보도 재해현장을 찾았습니다.
시민의 선택을 받아야 하는 후보들이 자연재해라고 해서 나몰라라 할 수는 없는 일입니다. 실제로 자연재해가 대통령선거의 승부를 가른 사례가 있습니다. 2012년 미국 대통령선거입니다. 투표(11월 6일)를 일주일 남짓 남겨놓은 10월 29일 최대풍속이 초속 50m로 북대서양 사상 최대의 허리케인이라는 ‘샌디’ 호가 미국 동북부를 강타했습니다.
피해는 엄청났습니다. 131명이 목숨을 잃었고 수십만 명이 대피했습니다. 13개주 800만 가구가 정전 피해를 입었고, 뉴욕 지하철이 4일 동안 멈춰 섰습니다. 뉴욕증권거래소는 120여년 만에 처음으로 이틀 연속 문을 닫았습니다. 피해액이 500억달러(우리 돈으로 약 53조원)에 이르렀습니다. 오바마 대통령과 롬니 후보의 선거 연설은 줄줄이 취소됐습니다.
이런 상황에서 샌디 피해 복구에 버락 오바마 대통령이 초당적 지도력을 발휘하는 인상적 모습으로 고전하던 대선 판도를 뒤집었다는 평가가 있습니다. 누가 이길지 예측하기 어려운 박빙의 승부가 예상되었으나, 오바마 대통령이 밋 롬니 후보에게 332 대 206으로 예상을 뛰어넘는 큰 표 차이로 여유 있게 이겨 연임에 성공했습니다.
우리나라에선 2000년 제16대 총선거를 6일 앞둔 4월 7일 강원도 고성-강릉-삼척 등 영동지방에 큰 불이 일어난 적이 있습니다. 산불은 동해시와 경북 울진까지 확산되어 동해시 시민들 한때 대피했고, 울진의 원전 2호기는 가동을 중단했습니다. 선거 이틀 뒤인 4월 15일 강원도 일대에 내린 비로 꺼질 때까지 산불은 타올랐습니다.
9일 동안 불타오른 게릴라성 산불로 2명이 목숨을 잃었고, 16명이 다쳤으며, 산림 1만4272ha가 불에 탔습니다. 그 사이 4월 13일 치러진 제16대 총선의 투표율은 57.2% 역대 최저였습니다. 물론 산불이 투표율에 미친 영향, 또는 산불과 선거 결과의 인과관계는 알 수가 없습니다. 그러나 후보들로서는 예민하게 반응할 수밖에 없습니다.
곳곳에 산불이 나던 3월 4일과 5일 이틀 동안 실시된 제20대 대통령선거 사전투표에 1632만명이 참가했습니다. 투표율 36.93%는 역대 최고 사전투표율입니다. 2017년 제19대 대선 때보다 10.87%가 높고, 2020년 제21대 총선 때보다도 10.24%가 높습니다. 전남 지역은 51.45%로 유권자 절반 이상이 사전투표를 했습니다.
사전투표에서 나타난 높은 투표열기가 3월 9일 본투표로 이어져 투표율이 80%를 넘기지 않을까 조심스런 예측도 있습니다. 그러나 본투표가 사전투표율에 비례하는 건 아니므로 섣불리 예단해서는 안 됩니다. 후보와 각 당들도 투표일까지 긴장을 늦추지 않겠지만 아직 투표를 하지 않은 시민들도 올바른 선택에 함께 하리라 기대해 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