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명숙의 시와 사진] 통영 용화사 새소리를 쌓다
항구를 배회하던 떠돌이 한 사람이
보광전 앞 절 마당에 주저앉아
어간문 앞 계단 위에 떨어지는
새 울음소릴 모아 그득하게 쌓았다
조금만 나서면 보이는 바다에
독행의 섬을 만들고 있는 듯도 보이고
새에게 울 만큼 다 울고 어여히 날아가라는
기다림처럼도 보였다
세월은 낮도깨비 같고
사랑은 모닥불 같은 것
검은콩 놓인 누런 술빵 같은 얼굴로
방랑의 떠돌이는 편백나무 아래서
푸른 영혼이 되어 쉬고 싶다는 떠돌이의 맘이
보광전 뜰에 깔렸다
떠돌이의 맘이 남해바다에 닿고
이름 모를 새소리는 쌓여 섬이 되었다고 하니
아미타부처는 산문 밖의 편백나무 길을 뒤로 밀었다
그리고 손을 뻗어 새가 우는 야자수나무를 흔들었다
새는 날아갔다
있을 것 없을 것 다 있는 세상 밖으로
편백나무 숲길로 날아간 새는
길 위의 사람들이 산문으로 들어가도 울고
무거운 배낭을 메고 산정을 향해 가도 울었다
돌고 돌다 법당 뜰에 앉았던
떠돌이는 여전히 그 자리에서
산문 밖으로 새가 날아간 줄도 모르고
새소리를 놓지 않고 쌓았다
최명숙 시집 <심검당 살구꽃> 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