드라마 ‘사임당, 빛의 일기’와 신사임당의 재발견
필자가 요즘 즐기는 TV프로는 배우 이영애가 열연하는 ‘사임당, 빛의 일기’다.
이영애가 이렇게 연기를 잘하는지는 이번에 처음 알았다. 실제 그 옛날 신사임당도 아름답고 현숙할 수 있었을까 싶다. ‘사임당, 빛의 일기’는 과거와 현대를 넘나드는 신사임당의 진면목을 볼 수 있다.
화가 신사임당(申師任堂, 1504~1551)의 작품으로는 ‘자리도(紫鯉圖), ‘산수도(山水圖)’, ‘초충도(草蟲圖)’, ‘노안도(蘆雁圖)’, ‘연로도(蓮鷺圖)’, ‘요안조압도(蓼岸鳥鴨圖)’와 ‘6폭 초서병풍’ 등이 있다.
<밤에 읽는 조선왕조실록> 야사(夜史) 10편에 나오는 신사임당을 찾아보자. ‘오죽헌 별곡 신사임당’은 조선시대의 여류 문인이자 화가였고, 율곡(栗谷) 이이(李珥, 1536∼1584)의 어머니이다. 어려서부터 부모에 대한 효성이 지극하고, 자수와 바느질 솜씨가 뛰어났다.
또한 그녀는 학자의 집안에서 자라나 유학의 경전과 명현들의 문집을 탐독하여 시와 문장에 능했다. 7세 때 화가 안견의 그림을 본떠 그렸을 뿐만 아니라 산수화와 포도, 풀, 벌레 등을 그리는 데도 뛰어난 재주를 보였다.
사임당이 어린 시절 어느 날, 꽈리나무에 메뚜기 한 마리가 앉아 있는 그림을 그렸다. 그런데 사임당이 잠깐 자리를 비운 사이 그림 속의 메뚜기를 닭이 와서 쪼았다. 그녀의 그림에 대한 예찬은 많은 사람들의 발문에 기록되고 여류(女流)의 으뜸이었다.
그림으로 채색화, 묵화 등 약 40폭 정도가 전해지고 있으나 아직 세상에 공개되지 않은 그림도 수십 점 있다고 한다. 신사임당은 글이나 그림 어느 쪽에서도 부족함이 없을 정도로 실력이 뛰어났으나 결코 나타내려 하지 않았다. 사임당이 어느 날, 잔칫집에 초대를 받아 여러 부인들과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다. 마침 더운 국을 나르던 부엌사람이 어느 부인의 치맛자락에 걸려 넘어져 부인의 치마가 국에 다 젖고 말았다. 공교롭게도 그 부인은 매우 가난해 잔치에 입고 올 옷이 없어 다른 사람에게 새 옷을 빌려 입고 온 것이었다. 그 부인은 수심이 가득해 아무 경황이 없었다.
그 광경을 본 사임당은 그 부인에게 말했다. “부인, 그 치마를 잠시 벗어주십시오. 제가 수습을 해보겠습니다.” 부인은 의아했지만 그렇다고 별 뾰족한 방법이 없어 신사임당에게 치마를 벗어 주었다. 신사임당은 붓을 들고 치마에 그림을 그리기 시작하였다.
치마에 얼룩져 묻었던 국물 자국이 신사임당의 붓이 스칠 때마다 탐스러운 포도송이가 되기도 하고 싱싱한 잎사귀가 되기도 했다. 보고 있던 사람들은 모두가 깜짝 놀라 입을 다물지 못했다. 그림이 완성되자 신사임당은 치마를 내놓으며 가난한 부인에게 말했다.
“이 치마를 시장에 내다 파세요. 그러면 새 치마를 살 돈이 마련될 것입니다.” 과연 신사임당의 말대로 시장에 치마를 파니 새 비단 치마를 몇 벌이나 살 수 있는 돈이 마련되었다. 신사임당의 그림은 그때 이미 많은 사람들에게 알려져 있었기 때문에 그림을 사려는 사람이 많았던 것이다.
하지만 그림은 마음을 수양하는 예술이라 생각했던 사임당은 그림을 팔아 돈을 만들지는 않겠다는 신념을 가지고 있었다. 다만 그 부인의 딱한 사정을 보고 도와주려는 마음에서 그림을 그려주었던 것이다. 사임당은 아이들의 어머니로서도 손색이 없었다.
다섯 아들과 두 딸을 사랑으로 키웠고, 어릴 때부터 좋은 습관을 가지도록 엄격한 교육을 했다. 사임당의 자애로운 성품과 행실을 이어받은 7남매는 저마다 훌륭하게 성장하여, 모두가 인격과 학식이 뛰어났다.
사임당이 33세가 되던 해, 꿈에 동해에 이르니 선녀가 바다 속으로부터 살결이 백옥 같은 옥동자 하나를 안고 나와 부인의 품에 안겨주는 꿈을 꾸었다. 그리고 아기를 잉태한 중에 또 꿈을 꾸었다. 검은 용이 바다로부터 날아와 부인의 침실에 이르러 문머리에 서려 있었다. 그 태몽을 꾸고 난 아이가 바로 셋째 ‘율곡 이이’다.
한편 사임당은 시부모와 친정어머니를 잘 모셔 지극한 효녀로도 알려졌다. 힘든 가운데도 두 어머니에게 극진한 효도를 하였다. 사임당이 38세 때 강릉 친정으로 어머님을 찾아뵙고, 다시 서울로 돌아가는 도중에 대관령에서 오죽헌 쪽을 바라보고 홀로 계신 어머님을 그리며 쓴 시가 남았다.
대관령 넘으며 친정을 바라보네.
늙으신 어머님을 고향에 두고
외로이 서울 길로 가는 이 마음 돌아보니
북촌은 아득도 한데 흰 구름만 저문 산을 날아 내리네.
그 후 한양으로 올라와 가진 모략과 중상을 당하면서도 걸인들을 모아 산 중에 ‘교려지(高麗紙) 공장’을 차려놓고, 거악(巨惡)들과 사투를 벌이는 ‘외유내강(外柔內剛)’이 사임당의 또다른 모습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