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만원지폐 발행 10년①] 최고 고액권에 왜 ‘신사임당’이 들어갔을까?

신사임당이 도안된 5만원권 지폐
6월 23일이면 오만원권 지폐가 발행된 지 만 10년이 된다. 오만원권은 처음 발행 때부터 관심과 함께 우려와 논란도 있었다. <아시아엔>은 전세계 화폐를 수집·연구를 취미로 삼고 있는 알파고 시나씨 본지 편집장의 글과 오만원의 신사임당 그림을 맡은 이종상 화백(예술원 회원, 서울대 명예교수) 인터뷰(2013년 7월호 매거진N 창간호)를 통해 대한민국 오만원권 지폐 발행 10주년을 기념한다. <편집자>

[아시아엔=알파고 시나씨 기자] 2009년 6월 23일은 많은 사람들에게 별로 의미 없는 날로 보일 수도 있겠지만, 화폐를 평생의 관심·연구 과제로 목표를 삼은 필자에게는 매우 중요한 날이다. 꼭 10년 전에 노란색 배경에 신사임당의 그림이 실린 5만원권이 나왔다. 당시 이 신권 화폐는 경제적인 면에서도, 사회적인 면에서도 여러 의미가 있었다.

일단은 논란이 덜 된 경제적인 면에서 시작하자면, 한국은 1983년 일본과 함께 3종 지폐 제도에 도전했었다. 오늘날 빈부격차가 거의 없고, 1인당 GDP가 높은 아이슬란드 같은 북유럽 국가라도 4종 지폐 제도를 사용하고 있다. 그러나 신기하게도 전세계에서 일본과 한국만 3종 지폐 제도를 택하고 있었다. 즉 1000원, 5000원 그리고 10000원권 등 3가지뿐이었다.

일본은 이 제도를 당시까지 잘 유지하고 있었지만, 한국은 더 이상 버틸 수 없는 상황이 되었다. 왜냐하면 일본이 1973년 고정환율제에서 변동환율제에 바뀌면서 10년만에 성공적인 경제구조가 달성됐다. 일본보다 7년 늦은 1980년 고정환율제에서 변동환율제로 갈아탄 한국은 일본처럼 성공적인 모습을 보이지 못 했다.

1달러는 1973년경 약 300엔이었다가 현재는 100엔선에서 오락가락 하고 있다. 그런데 한국은 1980년 1달러 580원에서 현재 1000원을 넘은 상황이다. 물론 IMF 구제금융 사태 후 1800원을 넘기도 했다. 즉 일본의 ‘엔화;는 강해지고 나서 멈춘 반면 한국의 ‘원화’는 약세 후 멈춘 상황이다. 2000년대 이후로부터 한국 경제는 더 이상 최고권으로 1만원권을 쓸 수 없는 상황이 되었다.

2009년 오만원권 화폐 초상인 신사임당 영정 앞에서 이종상 화백이 활짝 웃고 있다.

국민이 일상에서 화폐처럼 사용하는 10만권 수표는 한국 경제의 암이 되었다. 정부는 이때 신의 한수를 놨다. 5만원권 발행을 단행한 것이다.

사실은 이제 일부 지폐 즉 1000원권은 없애도 되는 분위기다. 관련 연구들을 보면, 최근 한국의 시장에서 1000원권과 5000월권은 거의 사용되지 않고 있다. 즉, 한국은행이 1000원권을 없애도 한국경제에 그다지 영향을 미치지 않는다는 것이다.

사회적인 측면에서 5만원권을 살펴보자. 우선 논쟁은 아직도 진행 중이다. 일각에서 “5만원권에 왜 여성 그 중에서도 하필 ‘엄마 이미지’로 뜬 여성을 싣느냐? 유관순 같은 ‘엄마’보다 여성운동가 이미지의 인물이 적절하지 않았을까?” 하는 비판이 있다. 물론 신사임당은 남편에게 순종한 현모양처형 여성은 아니다.

필자는 이 문제를 남녀 갈등이 아니라 분단의 후유증으로 보고 있다. 필자는 3년 전 화폐인물들을 통해 세계사를 살펴본 졸저 <누구를 기억할 것인가>를 냈다. 그 책의 기본적인 틀은 세계 각국은 ‘기억하고 기록하고 싶은 인물’을 자국 화폐에 넣는다는 것이었다. 그러다 보니, 대부분 나라는 독립에 큰 공을 세운 인물을 화폐 모델로 삼는다. 하지만 여기서 몇 안 되는 예외가 있다. 그 중 하나는 바로 한국이다. 한국 화폐에 독립운동가보다 조선왕조 인물들이 들어가 있다. 필자는 많은 고민 끝에 한국이 왜 그러한 선택을 했는지 이해하게 되었다.

1953년 발행된 10환권 지폐와 1961년 발행된 50원권 지폐

적어도 정부수립 얼마 뒤까지 한국인들에겐 민족 및 한반도 통일이 최우선 과제였다. 이에 한국 정부는 국민들에게 현대한국의 뿌리가 조선왕조였으며 조선의 영토였던 한반도가 분단되었다는 사실을 기억하도록 만들어야 했다. 이를 위해 가장 효과적인 수단 중의 하나는 화폐였던 것 같다. 6.25전쟁이 끝난 직후 발행된 10환 뒷면과 5.16 후 발행된 50원권 지폐 앞면에 관동팔경의 하나로 북한에 있는 강원도 통천군 고저읍 총석리 바닷가의 총석정(叢石亭)이 새겨 있다.

이같은 필자의 관점에서 ‘조선왕조 인물 중 여성으로서 실릴 인물이 누구였을까?’ 질문을 던지면 대안이 몇 명 안 된다. 그 가운데 신사임당이 최선의 인물이 아니었을까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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