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로나시대, 대학 어디로③] ‘지덕체’에서 ‘체덕지’로
[아시아엔=강준호 서울대 체육교육과 교수, 기획처장 역임] 일반적으로 전인적 인간(whole person)을 기르는 방법으로 ‘지덕체(智德體)’의 균형이 자주 언급된다. ‘지덕체(智德體)’ 교육이란 풀어 말하자면 ‘머리’에 대한 교육, ‘가슴’에 대한 교육, 그리고 ‘몸’에 대한 교육이라 할 수 있다. 그리고 여기에 접근하는 방식은 크게 두 가지로 나누어볼 수 있다.
먼저 인간의 본성을 이성에서 찾는 관점이 있다. 플라톤, 아리스토텔레스 등의 고대 그리스 철학자와 데카르트와 같은 합리주의자, 그리고 동양에서는 공자가 이성을 중시하는 대표적인 사상가들이다. 이들은 이성을 바탕으로 이데아를 논하고, 합리적이며 객관적 사고를 통해 보편적 세계관을 제시하는 데 관심을 가졌다. 이들에게는 이성을 통해 세상의 원리를 이해하는 지(智)가 가장 중요하였다. 이 말은 지, 덕, 체가 동등하게 중요한 것이 아니라, 덕과 체가 지에 의해 통제되어야 한다는 의미를 함축한다.
‘지덕체(智德體)’의 대표적인 사상가로 플라톤을 들 수 있다. 서양정치철학의 시조인 플라톤은 인간의 영혼을 ‘이성’, ‘격정’, ‘욕구’으로 분류하고, 국가를 구성하는 시민을 이러한 특성에 따라 세 부류로 나눴다. 그는 ‘이성’을 지닌 철인(哲人)이 이상적인 인간이며, 그들이 국가를 통치해야 이상국가가 될 수 있다는 철인정치론을 펼쳤다. 이런 이성적인 인간을 교육하기 위해 플라톤은 이성을 가장 중요하고 핵심적인 교육의 대상으로 삼았지만, 그 이전에 인격을 완성하고 영혼을 고양시키기 위한 핵심 기초 교육으로 음악과 체육을 중시했다.
그는 음악이 욕망을 순화시키고, 맑고 깨끗하며 세련되고 균형 잡힌 정서를 갖게 해준다면, 체육은 건강과 체력증진은 물론 용기와 기개, 인내심과 침착성을 길러준다고 생각했다. 실제로 당대 최고 귀족의 자제였던 플라톤은 판크라티온(복싱과 레슬링이 융합된 스포츠 종목) 선수로 올림피아드와 함께 그리스 4대 제전 중 하나인 이스트미아 제전에 출전하여 2번이나 우승한 경력을 가지고 있다. 이는 마치 철학적 담론을 주도하는 서울대 철학과 교수가 전국체전 레슬링 선수로 출전하여 금메달을 두 번 딴 것과 같은 것이다.
전인교육에 대한 다른 관점은 ‘체덕지(體德智)’ 순으로 접근하는 것이다. 인간의 본성을 이성보다는 감각과 감정, 이상보다는 현실, 합리보다는 경험, 객관보다는 주관 그리고 관념적 세계관보다는 개인의 삶을 중시하는 관점이 여기에 해당한다. 로크나 흄 등의 경험론자, 니체, 하이데거, 퐁티와 같은 실존주의자 또는 현상학자, 그리고, 동양의 노자 등이 크게 보면 이 그룹에 속할 것이다. 이들은 감각과 경험의 주체이자 실존과 현상의 실체인 개인의 체(體), 즉 몸을 중시한다.
체(體)를 덕(德)이나 지(智)보다 중시한 대표적 사상가가 영국의 경험론자이자 근대 자유주의 사상의 시조인 존 로크다. 그는 이성보다 감각과 경험을 중시했다. <교육에 관한 단상>이란 책에서 로크는 감각의 기반인 신체(身體)가 가장 중요하고 다음이 덕(德)이고 마지막이 지(智)라고 주장했다. 그에게 교육의 목적은 체육, 덕육, 지육을 통해 나라를 이끌만한 능력과 소양을 갖춘 건전한 인격의 신사를 양성하는 것이었다.
로크는 인간의 마음은 백지와 같으며 모든 관념은 경험을 통해 형성된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건강한 신체가 좋은 경험의 전제가 된다고 강조하였다. 이런 로크에게 신체에 대한 교육이 가장 중요했던 것은 어찌 보면 당연한 논리적 귀결이었다. 아울러 그는 교육이 체력, 창조력, 위기극복능력, 적응력, 지력의 5가지 힘을 길러줘야 한다고 주장했다. 320년 전에 이미 최첨단의 시대를 살아갈 인재의 모습을 그려내고 있으니 놀라운 일이 아닐 수 없다.
이러한 로크의 사상은 영국의 근대 교육체계가 경험주의 사상을 기반으로 하는 데 큰 영향을 끼쳤으며 그 과정에서 체육이 자연스럽게 교육의 중심축의 하나로 자리잡게 되었다. 예를 들어, 영국의 많은 사회적 리더를 배출하는 명문 고등학교인 이튼 칼리지(Eton College)에서는 화요일과 목요일 오후 학생들은 의무적으로 스포츠 활동에 참여해야 한다. “나폴레옹을 워털루에서 쳐부순 영국의 힘은 이튼 학교의 운동장에서 길러졌다”라는 말이 괜히 나온 것이 아니다.
이러한 교육체계는 대서양을 건너 미국의 사립 및 공립학교들로 확산되었다. 영국이나 미국의 중고등학교와 대학교가 과하다 싶을 정도의 훌륭한 스포츠 시설을 갖추고 적극적으로 스포츠 활동을 장려하는 이유도 이러한 교육철학에서 연유한다.
그렇다면 ‘지덕체(智德體)’와 ‘체덕지(體德智)’의 접근 중에 어떤 것이 더 바람직할까? 사실 이 세 가지의 순서를 따지는 일은 큰 의미가 없다. 마치 삼발이의 세 다리 중 어느 하나가 짧으면 바로 설 수 없는 것처럼 지(智), 덕(德), 체(體)는 인간이 하나의 전체로서 온전한 존재가 되기 위한 필수불가결한 요소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표기의 순서는 인간관과 세계관의 근본적인 차이를 드러낸다.
‘지덕체(智德體)’ 세계관은 객관화된 ‘세계’에 대한 이성적 이해를 ‘개인’의 주관적 경험과 실존적 삶보다 우선시하는 반면, ‘체덕지(體德智)’ 세계관은 그 반대라고 볼 수 있다. 객관적 지식체계를 중시하는 ‘지덕체(智德體)’ 세계관은 그동안 학문과 과학기술문명의 발전을 가져오는 토대가 되었지만, 한편으로 개인의 삶이 소외되는 부작용을 낳았던 점을 부인하기 어렵다.
보편적 지식은 인간을 평균으로 조율해 버린다. 그리하여 인간소외가 점점 더 심화될 인공지능시대의 도래를 고려한다면, 그리고 그에 더해 현대사회의 다원화되고 개인주의화된 특성을 인정한다면, ‘체덕지(體德智)’ 세계관이 대학의 미래지향적 교양교육과 더 잘 부합된다고 볼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