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로나시대, 대학 어디로①] 사유·성찰·실천으로 미래지향적 전인교육을
[아시아엔=강준호 서울대 체육교육과 교수, 기획처장 역임] 시대를 막론하고 인재양성은 대학의 사명이자 존재이유다. 볼로냐대학을 시초로 12세기에 등장한 중세 유럽의 대학은 성직자를 양성하는 교수와 학생의 자치공동체였다. 1810년 설립된 최초의 근대대학으로 불리는 베를린대학은 어떠한 정치권력에도 휘둘리지 않는 학문의 자유를 이념으로, 신분차별의 봉건적 교육을 거부하고 모든 계층을 위한 보편적 인간교육을 지향했다.
20세기 미국 대학들은 일반 교양교육 중심의 학부과정에 더해 전문적인 연구교육기관으로 대학원을 설치하여 학문의 후속세대를 양성하였다.
그 사이 세기(世紀)가 21로 바뀌면서 정보혁명의 거센 물결은 대학이라는 공동체에게 새로운 질적 변화를 요구하고 있다. 코비드19 바이러스 감염병의 확산으로 ‘언택트’가 규범이 된 이후, 이 시대에 대학은 무엇이고 누구를 위해 존재해야 하는가?
팬데믹은 달리는 말의 채찍처럼 디지털시대로의 전환을 가차없이 재촉하는 중이다. 인공지능과 4차산업혁명으로 인한 세상의 변화는 이제 그 속도와 폭을 가늠조차 하기 어렵게 되었다. 이처럼 전방위에 걸쳐 총체적으로 변화하는 급박한 시대에 대학은 어떤 사람을 길러 세상밖으로 내놓아야 할까?
대학교육은 크게 교양교육과 전공교육으로 나뉜다. 교양교육이 보편적인 인간중심 교육이라면, 전공교육은 전문성을 중시하는 학문중심 교육을 가리킨다. 필자는 교양교육에 초점을 맞추어 앞으로 대학이 가져야 할 인재상과 그런 인재를 키우기 위한 교육의 방향이 무엇인지를 생각해보고자 한다.
문명사적 전환기와 학생들의 현주소
레오나르도 다빈치는 고대 로마시대 건축가 비트루비우스의 건축 지침서인 <건축 10서>에서 영감을 얻어 자신을 모델로 인체비례도를 만들었다(그림 1). ‘비트루비우스적 인간’으로 알려진 이 인체비례도를 통해 다빈치는 인간의 신체에서 아름다운 균형과 조화의 비례를 끄집어냈다.
하지만 균형과 조화는 인간의 신체에만 깃든 게 아니다. 행복하고 고양된 삶을 살기 위해서는 이성, 감성, 신체 등의 요소들이 균형있게 발달해야 한다. 그런 인간을 우리는 전인(全人, whole person)이라고 부른다.
비트루비우스적 인간과 황금비율
이러한 전인적 관점에서 우리 학생들을 한번 살펴보자. 세계 최고의 교육열을 가진 부모 아래서 유치원 시절부터 오직 대학입학을 목표로 한 주입식 교육과 줄세우기 교육에 찌들려 있지 않은가. 그렇게 치열한 경쟁을 뚫고 입학한 학생들 상당수가 불안과 우울증에 시달리고, 심지어 자살이라는 극단적 선택을 하는 학생들도 빈번하게 나타난다. 2018년 경제개발협력기구(OECD)가 세계 79개국(회원국 37개국, 비회원국 42개국)을 대상으로 18세 미만 학생들의 삶의 만족도를 조사한 결과에 의하면, 한국은 79개국 중 65위였으며, OECD국가 중에서는 최하위권이었다.
더 우울한 것은 신체적으로도 체격은 커졌으나 체력이 형편없이 저하된 점이다. 서울대 스포츠과학연구소 조사결과 운동을 하지 않는 서울대 학생의 체력은 50대와 비슷한 수준이라고 한다. 한 마디로, 우리 대학의 많은 학생들이 인간으로서 심각한 불균형 상태 또는 부조화 상태에 있다고 볼 수 있다. 이것은 학생들로부터 온전한 인간으로 성장할 기회를 박탈하고, 그들을 오로지 입시경쟁에 몰아넣은 우리 사회 전체의 책임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대학은 보다 올바르고 건강한 인재를 양성할 의무를 지닌다. 왜냐하면 우리의 학생들이 맞이해야 할 시대가 심상치 않기 때문이다.
인류는 현재 문명사적 전환기를 관통하고 있다. 인공지능을 중심으로 한 디지털 전환과 4차산업혁명기술의 기하급수적 발전으로 우리가 사는 세상의 모든 것이 격변하고 있다. 당장 심각해지는 환경문제는 지구의 지속가능성을 위협한다. 국가, 기업, 계층 등 모든 영역에서 양극화는 점점 심화되고 있고, 미중 간 글로벌 패권경쟁은 불길한 미래의 그림자를 엿보게 한다.
세계 곳곳에서 확인되는 민주주의의 위기는 또 어떤가. 이 모든 것들이 얽히고설켜 앞으로 우리 학생들은 불확실성의 확대와 정체성의 혼란에 더욱 자주 노출될 것이며 학교에서 미리 배운 지식으로 해결할 수 없는 수많은 문제에 직면하게 될 것이다. 그 예견된 변화를 지금의 교육으로 감당할 수 있을까.
*이 글은 서울대 인문대에서 인문학총서 시리즈 가운데 한 챕터로 출판된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