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로나시대, 대학 어디로④] 에너지와 생기 넘치는 ‘몸‘ 교육
[아시아엔=강준호 서울대 체육교육과 교수, 기획처장 역임] 우리는 로크의 교육관에서 ‘몸’에 대한 교육을 연역해 낼 수 있다. ‘몸’교육은 로크가 주장한 체육보다 확장된 개념으로 인간 존재 전체에 육박하는 그 무엇을 말한다. ‘건강한 신체에 건전한 정신’을 강조했던 로크는 신체가 그 자체로 정신과 별개로 떨어져 있는 것이 아니라 신체를 통한 모든 경험이 개별 인격체를 형성하는 근간이 된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의사이기도 했던 그는 신체에 대한 교육에서 건강, 활력 등 몸의 신체적 기능적 측면에만 초점을 맞췄다. 그러나, 인간의 몸을 머리나 가슴과 분리된 물리적 대상으로만 이해하지 않고 ‘체화된 지식의 주체’이자 사회적, 자연적 환경과 상호작용하는 ‘삶의 실체’로 인정한다면 여기서 우리는 새로운 교육의 패러다임으로서 ‘몸’교육이라는 개념을 건져 올릴 수 있다
몸은 뼈와 살과 각종 기관으로 구성된 물질적 실체이지만, 동시에 한 개인의 실존적 총체적 삶을 그대로 담아내는 인간 존재 그 자체이기도 하다. 전자는 한자로 체(體)라고 표현한다면 후자는 신(身)에 가깝다. 체(體)의 한자 구성을 살펴보면 骨(뼈 골)과 豊(풍성할 풍)으로 구성되어 있다. 뼈를 근간으로 인간의 여러 기관들로 구성된 자연적 물리적 객체로 몸을 보는 것이다. 그러나 신(身)은 임신한 여성의 몸을 묘사한 상형문자로 신체를 통해 드러나는 개인의 전인격적 삶과 현재 모습을 그대로 담아내고 있다.
<대학(?大學)>에 나오는 수신제가지국평천하(修身齊家治國平天下)라는 문구에서도 신(身)은 삶의 주체이자 자아 전체로서의 몸을 말하는 것이다. 신(身)은 스피노자가 정신과 신체는 하나의 실체에서 나타난 서로 다른 속성이라고 주장할 때의 그 실체와 유사하다. ‘몸’교육은 곧 신육(身育)을 의미한다.
‘몸’교육은 개인의 삶을 이성이 아니라 몸을 통해서 바꾸는 교육이다. 개인을 보편적 인간관과 이념에 맞추는 것이 아니라 독립적이고 능동적인 삶의 주체로 만드는 교육이다. 이런 ‘몸’교육은 특히 실천하는 인간을 키우는 데 매우 중요한 역할을 한다. 왜냐하면 앞에서 말했듯이 실천이란 사유와 성찰에 대한 몸의 능동적 반응(respond)이기 때문이다. 결국 타인과 세상을 지각하고 생각과 의지를 행동으로 옮기는 것은 몸을 통해서 일어난다.
우리 몸은 인공지능이 아무리 발달해도 이성의 명령을 수행하는 로보트처럼 작동하지 않는다. 몸은 환경과 상호작용하는 주체이자 객체로서, 생물학적 나, 사회적 나, 그리고 심리적 내가 만나는 인문, 사회, 자연의 융복합 플랫폼이다. 현대철학이 이성을 거부하고 몸과 체화된 지식을 중시한지 꽤 오랜 시간이 지났다. 그럼에도 오랫동안 대학의 교양교육은 이성중심의 인간관, 즉, ‘머리’를 교육시키면 온전한 인간이 완성된다는 전제하에 이뤄져 왔으며, 이러한 사고는 여전히 대학사회를 지배하고 있다. 이제 그 오래된 작은 이성의 감옥에서 벗어나야 한다.
몸을 교육의 대상으로 접근하는 것은 조금 더 복잡하다. 인간의 몸은 크게 아픈 몸과 아프지 않은 몸으로 나눌 수 있다. 보통 전자를 illness, 후자를 wellness라고 부른다. 아픈 몸은 질병, 감염, 상해, 폭력 등 원인과 부위 그리고 정도에 따라 비교적 분명하게 나누어진다. 그래서 아픈 몸은 의학의 대상이 된다.
아프지 않은 몸의 경우는, 일반적으로 그냥 한 카테고리로 인식하는 경향이 있다. 그러나, 이것은 마치 상하지 않은 와인은 다 같은 와인으로 취급하는 것과 같다. 아프지 않은 몸은 세 가지 차원으로 나눠볼 수 있다. 첫째는 ‘고통없는 몸’이며, 둘째는 ‘활력있는 몸’이고, 셋째는 ‘행복한 몸’이다. ‘고통없는 몸’이란 특별히 아픈 곳은 없지만 활력은 없는 몸을 말한다. 수시로 찾아오는 무기력, 원인을 모르는 피로, 권태와 짜증 등 딱히 아프지 않으면서 고통을 수반하지 않으나 활력은 느끼지 못하는 몸 상태를 말한다.
한편 ‘활력있는 몸’이란 에너지와 생기가 넘치는 몸을 의미한다. 가벼운 몸과 생명력을 스스로 자각할 수 있는 상태다. 마지막으로 ‘행복한 몸’이란 자유의지를 가지고 몸과 마음을 한 가지 목표에 몰입함으로써 자신이 살아있는 생명체라는 것을 실존적으로 느끼는 몸이다. 이것은 자기 충족감과 행복감이 극대화되는 동시에 내적으로 한 단계 고양된, 일종의 ‘숭고하고 종교적인’ 체험이 수반되는 몸이다.
이런 분류를 바탕으로 몸에 대한 교육은 크게 세 가지 차원에서 진행되어야 한다. 첫째는 신체적 고통을 예방하거나 줄이는 방법에 대한 교육이고, 둘째는 운동을 통해 체력과 활력을 기르는 교육이며, 셋째는 ‘행복한 몸’을 경험하는 교육이다. ‘행복한 몸’은 몸의 다양한 감각을 통해 세상을 지각하며 신체를 능동적으로 움직이는 활동을 할 때 경험할 수 있다.
스포츠, 음악, 미술, 댄싱, 가구 만들기, 요리 등 이성에 억눌렸던 감각을 깨우고 자신의 몸을 자발적으로 움직이는 활동들이 여기에 해당한다. 여행도 새로운 세상을 몸으로 직접 체험한다는 점에서 ‘행복한 몸’을 위한 활동이라고 할 수 있다. 그 중에서도 신체를 움직이는 것 자체가 내재된 목적(autotelic)인 스포츠는 ‘고통없는 몸’, ‘활력있는 몸’과 ‘행복한 몸’을 모두 경험하게 할 수 있는 ‘몸’교육의 가장 적극적이고 효과적인 수단이다. 몸에 대한 세 차원의 교육은 어느 하나 우열을 가릴 수 없지만 특히 ‘행복한 몸’에 대한 교육이야말로 날카롭고 급박한 인공지능시대를 살아갈 우리 학생들에게 필요한 것이 아닐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