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 박상설①] “정녕 사랑했는가?”

박상설 전문기자가 필자 일행과 산책하고 있다

지난 12월 23일 별세한 박상설 캠프나비 대표는 <아시아엔> ‘사람과 자연’ 전문기자로, 캠핑과 인문학, 그리고 주말농장을 접목시켜 자연주의자이자 인문주의자로 평생을 살아왔습니다. 박 전문기자는 “지식을 얻으려면 독서를 하고, 지혜를 구하려면 사람을 만나고, 더 큰 자유를 위해서는 자연에서 뒹굴어야 한다”는 지론을 실천하며 94세에 이 땅을 떠났습니다. <아시아엔>은 박상설 전문기자와 작년 6월 처음 만나, 30여일 투병 끝에 숨지기 전 가까이서 지켜본 최은자씨의 연재를 통해 박 전문기자의 마지막 200일의 삶과 생각을 되돌아봅니다. 박 전문기자는 아시아엔 창간직후인 2012년부터 만 8년간 ‘사람과 자연’ 전문기자로 활약한 한국 최고령 기자 중 한 분으로 꼽힐 겁니다. <편집자>

[아시아엔=최은자 자유기고가] 2021년 6월 5일 토요일 새벽, 전북 완주군 고산면에서 강원도 홍천 샘골 캠프나비까지 331km. 인생질문을 배낭에 넣고 나는 자동차 시동을 걸었다.

막연하고 불확실한 만남, 그러나 나는 가야만 했다. 날씨는 좋았다. 가고 있는 나도 의문이다. 며칠 전 인터넷영상에서 우연히 만난 노인, 그를 만나러 이 새벽 먼 길을 가다니.

더구나 그의 연락처도 모르고 거주지도 모른다. 그러나 화면에서 본 그 사람이 없다면, 내 질문의 답을 구하지 못해도 좋다. 나는 지금 떠나고 싶을 뿐이다. 오히려 331km라는 거리가 더 끌린다.

몇해 전, 섬 여행을 한 적이 있었다. 젊은 부부가 운영하는 민박. 홍보와는 다른 밥상은 그렇다 치더라도 부부의 불손함으로 우리는 숙소를 옮겨야 했다. 그런데 얼마 후 한 TV 프로그램에서 그들이 주인공으로 나왔다. 나는 아연실색했다. 섬을 지키는 순박하고 의리 있고 교양 있는 부부로 나왔는데, 내가 만난 것과 너무 달라 다큐멘터리 프로그램에 큰 상처를 입고 말았다.

나는 코로나 발생 전 동유럽 ‘조지아에서 한달살기’를 계획한 적이 있었다. ‘그래 조지아 가는 길이라 치자’ 생각하며 휴게소마다 다 쉬면서 갔다.

먼 길, 참 좋았다

홍천에 거의 오니 타이어 공기압 체크주의보가 뜬다. 옛날 간판을 단 카센터에서 바람을 넣고 샘골주말농장으로 향했다.

시골길은 내비게이션에만 의지하여 가기엔 어려움이 많다. 할 수 없이 샘골주말농장 안내번호로 전화를 걸었다.

“여보세요, 여보세요.”

쩌렁쩌렁 울리는 목소리, TV에서 들었던 익숙한 목소리다. ‘오, 그분을 만날 수 있겠구나!’

나는 세가지 대안을 가지고 이곳에 왔다.
첫째, 그분이 계신다면 인생질문을 해본다.
둘째, 그분이 계시지 않는다면, 홍천 샘물을 마시며 캠핑한다.
셋째, 내 예상과 너무 다르다면 바로 되돌아온다.

그런데 그분이 계신다. 일단 헛걸음이 아니다.

박상설 전문기자와 필자

샘골주말농장, 드디어 도착했다. 정중하게 인사 하면서 저 멀리 전주서 선생님 뵈러 왔다 하니 조금 놀라는 것 같았지만, 이내 시큰둥해지고는 치고 있던 텐트 끈을 잡아달라신다.

그날은 유튜브 촬영이 있어 아주 오랜만에 홍천 샘골에 들렸다고 했다. 잠시 후 유튜브 촬영팀이 도착하고 우리는 근처 식당으로 가서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었다.

선생님 말씀이 어찌나 명료하고 꾸밈이 없는지 내 질문의 답을 얻어 갈 수도 있겠다 싶은 희망이 들었다. 식사 후 다시 샘골로 가서 촬영을 하고나니 저녁이 되었다.

나와 박상설 선생님은 그분 스타일대로 누룽지를 끓이고 김치 한쪽과 나물 무침으로 저녁을 먹었다. 식사를 마치니 차 한잔을 내주신다.

6월 첫 주말, 가장 좋은 계절 2021년도 예외가 아니었다. 산 목련이 어찌나 예쁘던지 초록은 백가지 초록으로 빛나고, 시냇물소리는 늘 듣던 것처럼 찰찰거린다. 나는 잠시 이곳 홍천 샘골에 온 이유를 잊어버렸다. 우리나라 어디서든 볼 수 있는 이 풍경은 오히려 나에게 질문하고 있었다.

정녕 사랑했는가?
정녕 미울 뿐인가 ?

“자연현상은 단순히 지각하는 것만으로도 기쁨이 된다. 자연의 모습들과 움직임은, 인간에게 매우 긴요한 것이기 때문에, 가장 낮은 수준의 기능을 지녔다 해도, 자연의 효용과 미의 범위 안에 있는 것 같다. 해로운 일이나, 사람 사이의 교제로 인해 속박되었던 몸과 마음에, 자연은 치료 효과를 주어 심신을 정상으로 회복시킨다.”(랄프 왈도 에머슨 ‘자연 중에서’)

박상설 전문기자와 필자

내 삶을 회복시키고 싶었던 둥지로부터 331km 떨어진 곳. 내 삶을 중지하고 싶었던 시간에서 용케도 탈출하여 나는 여기에 와 있다.<계속>

One comment

  1. 아 박상설 선생님이 돌아가셨군요… 문득 생각나서 톡을 열어봤는데 알 수 없음으로 떠서…
    나이 무색하게 철도 없고 열정도 대단하셨던 분이셨는데요…..
    예전이 인터뷰한 적 있는 기자입니다. ㅎ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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