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립고 애잔한, 먼저 간 제자 김상인


[아시아엔=이동순 시인] 평생을 강단에 머물다보니 별별 학생들을 많이 겪는 경우가 있다. 이 편지의 주인공도 나에게 작은 인연으로 다가와 자기존재를 강렬하게 드러내며 지내다가 눈앞을 스쳐간 한 줄기 연기처럼 홀연히 떠나가버린 그런 기억으로 남은 제자다.

나는 영남대 국문과에서 강의를 했지만 1994년 한해동안 계명대로 출강한 적이 있다. 과목은 문예창작론, 담당 교수가 퇴임한 직후라 신임교수 오기 전 공백을 메꾸어준 경우다.

경산에서 성서까지 거리는 좀 먼가? 이른 아침 운전해서 달려가도 캠퍼스엔 주차공간이 이미 다 찼다. 이리저리 헤매다 빈곳을 찾아 겨우 주차하고 헐레벌떡 강의실로 올라가면 꽤 큰 강의실인데도 학생들로 가득했다. 그만큼 문예창작론 강좌의 인기가 높았다.

수업 중에도 질문이 많지만 수업이 끝나면 더욱 질문공세가 쏟아진다. 일일이 답을 해주고 내려오니 주차한 내 차의 운전석 바깥유리에 ‘불법주차’란 표시의 큰 스티커가 붙어있다. 이런~~ 욕이 저절로 튀어나온다. 그 스티커는 절대 떨어지지 않는다. 칼로 긁어내어도 악착스런 자국이 남는다. 계명대 주차관리는 지나치게 병적이다.

낭패한 심정으로 다시 경산 영남대로 돌아온다. 웬 편지가 한 통 책상 위에 놓였다. 뜯어보니 계명대 문예창작론 강의를 몰래 듣노라는 어느 학생의 고백편지다. 일문과 학생으로 창작론 강의를 도강(盜講)해서 들으며 시창작 공부에 큰 도움을 얻고 있다고 했다. 그러고 보니 작품도 두어 번 보여준 적이 있다.

그 김상인이란 학생과 친해져서 자주 보내오는 편지와 전화를 받기도 했다. 졸업 후 서울대 대학원으로 진학했다가 중도에 미국으로 유학을 떠났는데 유학 중에도 틈틈이 편지와 전화를 걸어왔다. 주로 근황과 안부를 물었고 오래 통화했다.

마침내 세월이 흘러 박사학위를 받았다. 전산관리 분야의 희귀전공이라 전망도 밝았다. 그런데 어느 날 그가 귀국했다는 연락이 왔다. 꼭 뵙고 싶다고 해서 만났는데 안색이 몹시 창백하고 힘이 없었다. 어쩐 일이냐니까 암에 걸려 치료 중이라 했다. 아내는 딸을 데리고 친정으로 떠나버리고 자기는 노모랑 쓸쓸히 살고 있다고 했다. 가슴이 메어지는 듯했다.

그렇게 아둥바둥 시를 쓰고 유학까지 하고 박사학위도 받았는데 그 결말이 어찌 그런가? 그는 결국 이런 날을 향해서 그토록 달려온 것인가? 애달프고 어이가 없고 억장이 막혀 그 어떤 위로의 말도 찾을 수 없었다. 병세가 차츰 악화되어 어느 날은 119에 실려 중환자실로 입원했다. 그에겐 병원비를 감당할 경제적 능력도 없었다.

이런 경우를 지원해주는 가톨릭 독지가를 연결해서 병원비의 도움을 받게 해주었다. 입원 몇 달 뒤에 그는 세상을 떠났다. 작별의 의례도 없이 홀연히 혼수상태로 떠났다.

그의 삶에서 과연 시는 무엇이고 해외유학 공부와 학위논문은 다 무엇인가? 어찌 그리도 불운한 삶을 타고 났을까? 그는 짧은 삶을 왜 그렇게 잠시도 편한 날 없이 허겁지겁 쫓기는 듯 살다가 떠난 것인가?

어느 여름날 오후 과일꾸러미를 들고 이마에 땀방울이 송글송글 맺힌 채 내 연구실을 찾아온 그의 모습이 떠오른다. 작은 기쁨이라도 주려는 마음을 안다.

나에게 와서 자기가 세상에서 가장 좋아하는 교수의 얼굴이라도 바라보는 것이 즐거움이며 기쁨이라 말하던 제자 김상인, 저 세상에서도 그는 시를 습작할까? 그의 안식과 명복을 빈다.

김성인 제자의 편지

이 동 순 선생님,

주말은 어떻게 지내셨습니까?
남자는 사십대에 가장 할일이 많다고 하던데요.
정말 그렇습니까?
이십대는 또 어떠할 지요?
지난 주 건네주신 제 습작에 대한 조언은
감사히 받아서 새겨 읽고 있습니다.
신기하게도 품안에 두고 읽을 때와는 달리
한번씩 남에게 보일 때마다
제 글의 미숙함이 스스로 느껴짐을 깨닫게 됩니다.
그런데 요즘은 통 감동이 일지 않아
고민고민하다 한동안 말을 하지 않고 살겠다는
묘한 생각이 그럴 듯해서
실행에 옮겨보기도 했습니다.
부끄럽게도 아직 하루도 성공한 날이 없습니다.
사실 선생님께 이 편지를 쓰며
여쭙고 싶은 의문점들 그리고 하소연 같은 얘기들이
너무 많고 조리가 없어서 글로 옮기지는 못하겠습니다.
그보다는 솔직히 말씀드려야 할 것이 있는데요.
실은 매주 문예창작론 강의를 듣고
또 선생님을 뵙고 있습니다만
제가 도강(盜講)을 하고 있습니다.
처음엔 그냥 강의가 듣고싶어
수업시간에 앉아보곤 했지만
선생님께서 제 글을 읽어주시고 관심을 가져주시니
늦기 전에 말씀드려야 한다고 생각했습니다.
어쩔 수 없이 선생님을 속이는 일이 되어
죄송한 마음 뿐입니다
이제 정체가 탄로났으니 문예창작론 도강(盜講)은
어떻게 될까 안절부절이구요.
어서 빨리 이 송구스런 사연에서
달아나고 싶은 마음이 굴뚝 같습니다.
왠일인지 오늘 저희 집에
맛난 음식들이 많이 있는데요.
선생님께 좀 드렸으면 하는 생각을 합니다.
선생님 안녕히 계십시오.

1994년 11원 20일

김 상 인 드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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