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혁재의 대선 길목 D-86] 올해의 사자성어 ‘묘서동처(猫鼠同處)’

묘서동처

대학 교수들이 올해의 사자성어로 ‘묘서동처’(猫鼠同處)라는 말을 골랐습니다. ‘묘서동처’는 중국 당나라 역사를 기록한 『구당서(舊唐書)』에 나오는 말로 ‘고양이와 쥐가 함께 있다’는 뜻입니다. 쥐는 ‘곡식을 훔쳐 먹는 도둑’이고, 고양이는 이 도둑을 잡아야 합니다. 그런데 고양이와 쥐가 함께 있는 것, 즉 도둑 잡는 이와 도둑이 한 패거리임을 한탄한 겁니다.

『구당서(舊唐書)』의 내용을 보면 이렇습니다. 한 군인이 집에서 고양이가 쥐를 잡기는커녕 같은 젖을 빠는(猫鼠同乳) 걸 보게 됩니다. 그러자 그 군인의 상관이 고양이와 쥐를 잡아다 임금에게 바쳤습니다. 관리들은 ‘복이 들어온다’며 기뻐했습니다. 『구당서(舊唐書)』에는 이때 단 한 명의 관리만이 “이것들이 실성했다”며 한탄한 것으로 기록되어 있다고 합니다.

대학교수들은 왜 올해의 사자성어로 ‘묘서동처’(猫鼠同處)를 골랐을까요? 공정하게 법을 집행해야 할 사람들이 오히려 이권에 개입한 사건들이 많은 시민을 절망시켰기 때문일 겁니다. 대표적인 것이 시민들의 주거안정 업무를 담당하는 공기업인 한국토지주택공사(LH) 임직원들의 땅 투기 사건입니다.

교수들이 여러 사자성어 가운데 ‘묘서동처’를 고른 심정은 기도와 같은 것이 아니었을까요. 제20대 대선에서 부패하지 않은 대통령이 선출되어 부패와 비리를 척결해주기를 바랬을 것이라고 생각해 봅니다. 그러나 당선이 유력한 두 후보는 이미 많은 시민들에게 부패와 비리로 얼룩져 있는 것으로 비쳐지고 있습니다.

이재명 후보와 관련된 비리 의혹은 ‘대장동개발 특혜ㆍ로비의혹’입니다. 국민의힘은 이 후보가 대장동 비리의 설계자라 주장하면서 파상공세를 펼쳤습니다. 대장동 사건의 진상은 아직까지 밝혀지지 않았습니다. 대장동 사업에 대한 평가도 엇갈립니다. ‘단군 이래 최대의 공공환수사업’이라는 주장과 ‘최대의 비리 사건’이라는 주장이 맞서고 있습니다.

재판이 시작됐지만 아마도 내년 대선 전까지 1심도 끝나지 않을 겁니다. 법정에 서는 것도 대장동개발 의혹 핵심인물 ‘4인방’(유동규 전 성남도시개발공사 기획본부장, 화천대유 대주주 김만배 씨, 남욱 변호사, 정영학 회계사)입니다. 박수영 국민의힘 의원이 화천대유로부터 50억원을 받기로 했다는 의혹을 제기한 ’50억클럽’ 명단에도 이 후보는 없습니다.

윤석열 후보에게는 ‘본부장 리스크’가 있습니다. ‘본부장 리스크’라는 말은 국민의힘 경선 때 훙준표 의원이 만든 신조어입니다. 윤석열 후보에게 본인과 부인과 장모의 비리가 있다고 주장한 것입니다. 홍준표 의원을 누르고 후보가 되었지만 ‘본부장 리스크’는 남았습니다. 본부장 리스크가 사실로 드러난다면 파장이 매우 클 겁니다.

윤석열 후보 본인의 리스크로는 고발 사주 의혹, 조국 사건과 울산 사건 등을 맡은 재판부 판사들 사찰의혹, 윤우진 전 용산세무서장의 뇌물수수 사건 무마 의혹, 옵티머스펀드사기 고발사건 부실수사 의혹 등이 있습니다. 어느 하나라도 사실로 드러나면 ‘공정과 정의의 상징’이라는 윤 후보의 이미지는 깨지게 될 것입니다.

윤석열 후보 부인 리스크로는 도이치모터스 주가조작 의혹, 부인이 대표인 전시기획사 코바나컨텐츠가 기획한 전시회에 대기업 협찬이 늘었다는 의혹 등이 있습니다. 대표적인 윤 후보 장모 리스크는 불법 요양병원 설립 및 요양급여 편취 의혹입니다. 장모는 이미 재판에서 징역 3년의 실형을 선고받아 법정구속된 상태입니다.

특검에서 대장동 사건과 윤석열 후보에게 제기된 의혹들을 다루자는 데는 상당한 공감대가 형성되어 있습니다. 웬일인지 특검을 하자는 말은 무성한데 전혀 논의는 이뤄지지 않고 있습니다. 특검이 쉽지 않은 것도 사실이고, 특검이 선거 전에 결론을 내지도 못하겠지만 ‘묘서동처’(猫鼠同處)에서 벗어나기 위해서라도 특검 논의는 빨리 시작되어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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