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혁재의 대선 길목 D-82] 여론조사는 투표가 아니다

민주주의 정치는 여론 정치입니다. 시민의 뜻에 따라 정부가 들어서고, 시민의 뜻에 따라 정책이 결정되고 집행됩니다. 정치인들이 가장 많이 입에 달고 사는 말도 민심 또는 민의입니다. 정반대되는 이야기를 하면서 서로 민심을 들먹입니다. 이 당이 내세우는 민심과 저 당이 내세우는 민심이 서로 다르면 진짜 민심이 어떤지 궁금해집니다.

민심이 바로 여론입니다. 여론조사는 민주주의 사회에서 민심을 헤아리는 중요한 수단입니다. 시민들이 누구를 지지하는가를 확인해보는 여론조사에 후보들은 일희일비합니다. 여론조사 결과에 관심을 갖는 시민들도 많습니다. 여론조사를 통해 민심이 선거 과정에 반영됩니다. 민심을 바탕으로 정치를 하는 건 매우 긍정적인 일입니다.

그러나 선거를 지나치게 순위 매기기 중심으로 끌어가는 건 좋지 않습니다. 이런 걸 경마 저널리즘이라고 합니다. 경마에서 1등, 2등 순위를 매기듯이 후보들의 인기 순위에만 관심을 갖는 건 문제가 있습니다. 등수 올리기에 급급해 후보들의 능력이나 정책대결보다는 공약을 남발하거나 이미지를 조작하거나 흑색선전 유포 등에 기대게 만듭니다.

여론조사를 맹신하는 건 안 좋지만 여론조사를 제대로 읽으면 시민들이 후보를 선택하는데 좋은 길잡이가 될 수 있습니다. 여론조사를 믿지 못하는 이도 있지만 요즘에는 여론조사 기법이 많이 향상되었고, 여론조사 기관들도 객관성을 지키려고 많은 노력을 합니다. 따라서 여론조사기관들의 조사결과가 서로 다르더라도 크게 의심할 필요는 없습니다.

대부분의 여론조사는 표본이 1,000명입니다. 이 경우 신뢰수준 95%에 오차범위는 플러스 마이너스(±) 3.1%가 됩니다. 여론조사 결과가 30%라면 유권자 전체의 실제 지지도가 오차범위인 3.1%를 더하거나 뺀 33.1%에서 26.9% 사이가 된다는 겁니다. 여론조사 결과 지지도가 25%라면 실제 지지도는 28.1%에서 21.9% 사이로 나타는 게 거의 확실합니다.

여론조사에서는 지지도 30%의 후보가 지지도 25%의 후보보다 앞서지만 실제 지지도에서는 바뀌어 나타날 수도 있습니다. 이런 경우를 오차범위 안에 있다고 합니다. 신뢰수준 95%라는 건 실제 지지도가 각각 26.9%에서 33.1% 사이, 21.9%에서 28.1% 사이에서 나타나는 게 거의 확실하지만 여기에서 벗어날 확률이 5%도 안 된다는 겁니다.

승자편승(bandwagon) 효과라는 게 있습니다. 여론조사에서 앞서가는 후보라는 이유만으로 시민들이 특정 후보를 지지하게 되는 경향을 말합니다. 후보들이 대세론을 주장하는 까닭이 이 때문입니다. 여론조사에서 뒤떨어지는 후보를 동정해서 지지하는 경향도 있습니다. 이를 열세자 효과(underdog effect)라고 합니다.

더 큰 문제는 여론조사 때문에 투표에 참가하지 않는 시민들이 생겨날 수 있다는 겁니다. 이런 경향은 무임승차자(free rider)라 불리는 시민들에서 많이 나타나는데, 자신이 지지하는 후보가 많이 앞서가면 투표를 하지 않는 겁니다. 자신이 굳이 투표하지 않아도 당선에 어려움이 없다는 생각에서입니다.

침묵의 나선(spiral of silence)이라고 하는 반대의 경우도 있습니다. 자신이 지지하는 후보가 많이 뒤쳐져 있을 때 투표에 불참하는 경향입니다. 어차피 자신이 찍어도 당선되지 않을 것이라는 생각 때문입니다. 자신이 생각이 소수일 때는 겉으로 의견을 드러내기가 쉽지 않습니다. 이런 경우 침묵의 논리에 의해 아예 투표장으로 가지 않는 겁니다.

여론조사가 모든 것은 아닙니다. 여론조사는 투표가 아닙니다. 왜 지지하는지에 대해 묻지 않는 소수문항 설문조사입니다. 또 여론조사는 어디까지나 남들이 생각입니다. 누가 앞서가는지 알고 싶을 때 여론조사가 유용하지만 여기에 끌려 다녀서는 안 됩니다. 하나의 정보로만 받아들이고 투표 지지 결정은 자신의 선택기준과 판단을 근거로 해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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