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혁재의 대선 길목 D-89] 회고적 투표, 전망적 투표
대통령선거는 다음 대통령을 뽑는 거지만 현 정부에 대한 심판의 성격도 갖고 있습니다. 그러나 대통령은 단임이라 현직 대통령에 대한 직접적 심판은 할 수가 없습니다. 그러다보니 현 대통령을 지지하면 정권안정을 위해 여당후보를, 지지하지 않으면 정권교체를 위해 야당후보에게 투표를 하는 성향이 나타납니다.
대통령선거와 대통령선거 사이에 치러지는 국회의원 총선과 지방선거, 재·보궐선거는 대통령 또는 집권당에 대한 중간평가적 성격이 짙습니다. 대통령 지지도가 높을 때는 선거결과가 여당에게 유리하고, 지지도가 낮을 때는 야당에게 유리한 게 보편적입니다. ‘재·보선은 집권여당의 무덤’이라는 표현도 그래서 나온 겁니다.
현재 문재인 대통령의 지지도는 30~40% 안팎에서 오르락내리락하고 있습니다. 임기 6개월 정도를 앞둔 시점의 다른 대통령들과 견주어보면 높지만 여론조사를 하면 정권교체 요구가 더 높게 나타납니다. 이재명 후보 지지도는 문 대통령 지지도에 못 미치고 있고, 윤석열 후보 지지도는 정권교체 요구보다 낮습니다.
현 정부에 대해 긍정적인 평가를 하면서도 이재명 후보를 못미더워하고, 정권교체를 원하면서도 윤석열 후보를 흔쾌히 지지하지 못하는 시민들이 많다는 뜻입니다. 국민의힘은 무능하고 부패했다며 문재인 정부 공격에 힘을 쏟고, 더불어민주당은 이 후보가 당선되는 것도 정권교체와 같은 효과라고 주장하는 게 바로 이 때문입니다.
유권자의 투표 성향은 과거지향적인 회고적 투표와 미래지향적인 전망적 투표로 구분할 수 있습니다. 당선 이후 지금까지 잘 했는지, 선거공약은 잘 지켰는지 따져보고 하는 투표는 회고적 투표입니다. 당선된 이후에 잘할 것인지, 선거공약은 꼭 필요한 것이고 지킬 수 있는 것인지 따져보고 하는 투표는 전망적 투표입니다.
총선과 지방선거에서는 과거에 잘했는지 따져보는 과거지향적 투표가 주류를 이룹니다. 현직자에 대한 심판의 성격이 강하게 나타나는 겁니다. 현직자가 출마하지 않는 대통령선거에서는 심판의 성격은 약해지고 누가 적임자인지 따져보고 투표하는 선택의 성격이 두드러집니다. 미래지향적 투표성향이 우세한 겁니다.
단임제라서 현직대통령이 아닌 후보 가운데 선택을 해야 합니다. 이재명 후보는 문재인 대통령과 같은 당 후보이므로 문 대통령에 대한 시민의 평가에 영향을 받을 수밖에 없습니다. 윤석열 후보도 문 대통령에 대한 시민의 평가에 영향을 받겠지만 이 후보보다는 덜 받게 될 겁니다. 특히 회고적 투표를 하는 시민이 많다면 윤 후보에게 유리할 겁니다.
문재인 대통령에 대한 반감으로 무조건 윤석열 후보를 지지하거나, 문 대통령을 지지하기 때문에 이재명 후보를 선택하는 것은 유권자의 올바른 자세가 아닙니다. 다음 대통령은 앞으로 5년 동안의 국정운영을 책임져야 하므로 거기에 맞는 적임자를 골라야 합니다. 그러기 위해선 회고적 평가와 전망적 평가를 적절하게 조화시킨 선택을 해야 합니다.
요즘의 대선 관련 보도는 지지율 조사결과를 중심으로 누가 앞서가는지에 초점을 맞춘 ‘경마중계식 보도’가 대부분입니다. 지지율 조사가 없는 날은 ‘어느 후보’가 ‘어디’에 가서 ‘무엇’을 하고 ‘어떤 말’을 했다는 식의 ‘동정 소개’로 도배가 됩니다. 후보나 정당에서는 지지율에 목을 맬지 모르지만 시민에게는 지지율이 중요한 게 아닙니다.
지지율이 높다는 것과 국정운영을 잘 한다는 건 다른 문제입니다. 국정운영을 잘 할 수 있는지 알려면 후보나 정당에서 내놓는 정책을 봐야 합니다. 여러 정책들이 제시되지만 시민들에게 전달이 잘 되지 않습니다. 정책이 지지율 보도에 가려지기 때문입니다. 제대로 회고하고 올바르게 전망할 수 있도록 선거보도가 정책대결 중심으로 이뤄지면 좋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