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5년전 베를린 파독간호사로부터 온 편지엔…
[아시아엔=이동순 시인, 영남대 명예교수] 이런저런 편지를 많이 받았지만 오늘은 특별한 편지 하나를 소개하려 한다.멀리 독일 베를린에서 보내온 편지다.
이 편지의 곡절 많은 주인공은 경북 성주 출생의 파독간호사 이민자 여사. 1968년 무렵 독일로 떠나 여러 병원에서 일했다. 그녀는 간호사 계약기간을 마치고 베를린의과대학에 진학해서 모든 과정을 거친 뒤 내과의사가 되어 병원을 열었다. 독일인 교수와 결혼해서 베를린에 정착했다.
1995년, 염무웅 선생을 좌장으로 모시고 안종관, 정지창, 김창우, 이동순 등 5인이 북유럽으로 배낭여행을 떠났다. 백설에 덮인 스칸디나비아 일대와 피오르드 해안 구석구석을 산천유람한 뒤 돌아오는 길에 독일과 스위스를 잠시 들렀다.
베를린에서는 백림여성회 멤버들의 환영을 받았다. 백림여성회는 파독간호사로 독일에 왔다가 계약기간이 끝나고도 돌아가지 않고 그대로 현지인과 결혼해서 눌러 정착한 한인여성들의 친교단체 중 하나이다. 전체 회원이 약 10여 명 된다고 했는데 그날은 여섯 분이 오셨다.
베를린의 어느 뒷골목 주택가로 안내 받은 아담한 집의 거실 장방형 식탁엔 연어회, 문어숙회, 새우회를 비롯해서 양상치, 파슬리 등 각종 채소와 함께 멋진 와인이 여기저기 보초병처럼 우뚝 서 있었다. 집 주인은 아일랜드인 택시기사랑 부부가 된 한인간호사 출신 아무개씨 댁이었다.
그날 밤은 참으로 황홀한 시간이었다. 춤과 노래와 재담으로 밤이 깊어가는 줄 몰랐다. 초저녁에 시작해서 거의 새벽 2시까지 놀았다. 나는 주로 고향 테마, 어머니 테마 옛노래를 불렀는데 아니나 다를까 여기저기서 울음이 터졌다.
‘향수’, ‘고향길’, ‘고향설’, ‘고향무정’, ‘어머님 사랑’, ‘어머님전 상서’, ‘어머님 안심하소서’, ‘불효자는 웁니다’, ‘비나리는 고모령’ 등을 비롯해서 고향, 어머니가 노랫말에 등장하는 노래를 부르니 온통 눈물 콧물로 범벅이 된 슬픈 밤이었다. 한 여성은 엉엉 울며 다가와 나를 껴안았다.
가슴에 쌓인 깊은 한과 애수와 고달픔을 주체하지 못하고 온통 넋이 나간 감격의 얼굴이었다. 너무 원초적이며 자극적인 노래로 백림여성회 회원들의 영혼을 뒤흔들어놓았던 아름다운 애수로 흐뭇한 밤이었다.
그렇게 놀고 난 다음날, 너무 기운을 썼던지 편도선이 붓고 열이 펄펄 오르고 온몸이 와들와들 떨려 병원을 갔는데 그곳이 이민자 원장의 병원이다. 주택가 모퉁이의 호젓한 병원에서 진료와 처방을 받고 침도 맞고 주사도 맞았다. 그리곤 안채, 부부가 사는 주택을 구경하고 그녀가 안내하는 지하 와인저장고로 들어갔다. 족히 수천 병은 되어 보이는 와인들이 차고 서늘한 선반에 즐비하였다.
민자 여사는 아무거나 맘에 드는 와인 두 병을 고르라고 하셨다. 나는 황홀한 분위기에 넋이 나갔다. 그 와인저장고가 몹시 부럽고 탐스러웠다.
한국이 독일로 간호사를 보낸 것은 1966년부터 10년 동안이다. 약 1만1천명의 간호사가 독일로 떠났다. 한국인 간호사들의 근면, 성실성은 현지인들에게 크나큰 인상을 심어주었다. 대부분 고용기간을 연장해서 근무했고, 기간이 끝난 뒤에는 파독 광부들과 결혼하거나 현지인과 결혼해서 독일에 눌러 살았다. 전체 약 절반 가량이 독일에 남았다고 한다.
한국 이주노동자들의 대다수는 독일 루르지역이나 라인란트 일대에 살고 있다. 당시 한국인 노동력 수출은 광부, 간호사 파독에 이어서 베트남전쟁 용역시장, 중동의 건설시장, 원양어업 진출 등으로 이어져 한국의 경제발전에 크게 기여했다. <파독간호사로부터 온 편지>(조경애, 가람출판사)가 지난 2012년, 많은 독자의 심금을 울린 바 있다.
이민자 여사가 보내온 이 편지는 1996년에 받았으니 어언 25년이 넘었다. 내 시집 <봄의 설법>을 보내드리고 받은 답장이다. 백림여성회 회원들 나이가 어느 덧 팔순이 가까울 것이란 생각이 든다. 꽃다운 젊은 날에 고향을 떠나 평생 만리타국에서 살며 고향을 그리워하던 그분들의 애타는 향수와 눈물과 가슴 속 고이 간직한 사랑을 생각해 본다. 잘들 계신지 궁금하다.
이동순 선생님,
보내주신 시집 “봄의 설법”
잘 받아 애독하고 있습니다.
섬세하고 정 있는 선생님의 심성이
하나하나 나타나 있어
가슴에 훈훈함을 느끼고 있습니다.
“이 강산 낙화유수 흐르는 봄에
그 누군들 깊은 가슴 속 묻어둔 슬픔 없으리오마는
떠나간 사람을 못 잊어하는 그대 마음처럼
우리는 춤추며 속으로 울리라.
소주에 취해 울리라.”
그날 밤 소주에 취하진 않았지만
저희 외로운 마음들에
불 피워 따뜻하게 해준 우리들의 만남은
저희들에겐 두고 두고 추억으로 머물러 있겠지요.
유성기 틀 듯, 개울물 흐르듯 흘러나오던
선생님의 귀여운(미안) 흘러간 노래들.
염 선생님의 익살스런 재담들,
김 선생님의 아쉬운 춤사위 등등
또 다시 한데 어울려 기쁜 얼굴로 맞을 수 있는 날을
손꼽아 기다리겠습니다.
항상 건강하시고 아름답고 순박한 시들
많이 쓰십시오.
기대로 부푼 마음으로 기다리겠습니다.
안녕히 계시고 모두께 안부 전해주십시오.
1996년 11월 17일
베를린에서
이 민 자 드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