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통’과 서울역 양동 매매춘 소녀의 ‘전설같은 이야기’

지금은 사라진 이른바 ‘청량리 588’ 집창촌 

[아시아엔=김덕권 원불교문인협회 명예회장] 지난 10월 26일은 고 박정희 대통령 서거 42주년이었다. 박대통령은 흔히 박통이라고 칭한다. 박통의 최후가 너무나 비극적이어서인지 무언가 안타까운 정서와 향수가 아련히 남아 있는 것이 사실이다.

며칠전 카톡을 통해 박통의 어린 매매춘 여성과의 애틋한 사연이 전해져 소개하려 한다. 나는 그 글을 읽고 사실관계를 확인하려 했으나 실패하고 말았다. 50년 훨씬 넘은 일인데다, 지금은 매매춘으로 불리는 당시 ‘창녀’와 관련된 이야기를 기록으로 남기기 어려웠을 것 같다.

따라서 구전으로 전해오는 것을 어느 누가 나름대로 정리한 것이 내게 전달된 것이 아닌가 추측한다. 젊어서 주색잡기도 해본 필자는 이 일화가 박통에게 있었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어 미리 양해를 구하고 독자들과 공유하려 한다. 

아다시피 박통은 그 여러 공(功)과 과를 남겼다. 하지만 비명횡사(非命橫死)로 비극의 막을 내리고 말았다.

서거 42주년이 지나고 보니 박통의 일화 한 가지로 그분의 공덕(功德)을 기려본다.“종규야!” “옛! 각하! 부르셨습니까?”

1969년 서늘한 가을 어느 날이었다. 박정희 대통령은 경호 실장 박종규를 찾았다. 그리곤 수줍게 웃으면서 손짓으로 귀를 가깝게 대라고 한다.

“종규야, 오늘 밤에 나 좀 조용히 나갔다 오고 싶다. 준비 좀 해다오” 대통령을 쳐다보니 노동자들이 입고 다닐 듯한 어설픈 잠바에 찌그러진 중절모를 쓰고 있었다.

‘도대체 야밤중에 어디를 다녀오시겠다는 것인지?’ 상당수의 비밀 경호원을 대동하고, 청와대를 몰래 빠져나온 박통은 서울역 앞 양동 골목으로 향했다. 당시 서울에서 제일 큰 창녀촌 지역인 양동을 암행시찰 하는 것이었다. 박종규와 경호팀은 모두가 초긴장 상태에 돌입했다.

‘아무리 비밀리에 움직이는 민정 시찰이라도 그렇지, 이렇게 창녀촌을 급습하다니?’ 경호원들이 절대로 표시내지 않도록 지시 내린 대통령은 혼자서 터벅터벅 창녀촌 골목을 후벼든다. 누가 보아도 중년의 노동자 모습이었다. 빨간 전구가 주렁주렁 매달린 어둠 속 창녀촌에서는 새악시들이 마구 튀어나와 대통령 소매 끝에 매달린다.

곳곳에 숨어서 지켜보던 경호원들은 침이 마르다. 입속이 바싹 바싹 메말라 간다. ‘아니 저 가시나들이.. 도대체 어느 안전이라고..’ 튀어나가 말릴 수도 없다. 소리칠 수도 없다. 각하가 특별히 소리치기 전에는 절대로 아무 것도 할 수 없다. 옴짝달싹 말라는 엄명을 내렸기 때문이다.

아니, 그런데 한 어린 아가씨가 아예 각하를 껴안으며 숫제 매어달려 버린다. “잠깐만 쉬었다 가세용” “그래 좋다. 쉬었다 가자!” 대통령 목소리가 들린다. 경호실장 박종규는 절망의 한숨을 내쉰다. “맙소사! 각하가 어떻게 저런 창녀들이랑 같이 하룻밤을?” 대통령과 창녀가 손을 잡고 2층 다락방을 올라가는 삐거덕 소리가 들려왔다.

임권택 감독의 ‘노는 계집 창’ 한 장면

두 사람이 들어 눕기에도 비좁은 창녀 방에서 두 사람은 마주 앉았다. “오빠! 타임은 200원이고, 긴 밤은 1000원이에요. 우선 화대부터 주세요. 나는 씻고 와야 되니깐.”

대통령은 깊게 눌러썼던 중절모를 벗었다. “워~매. 혹시 대통령 아저씨 아니세요?” 여자아이는 깜짝 놀라며 소리쳤다. 영락없는 대통령 모습이었다.

박대통령은 “야 이눔아! 내가 대통령이라면 네가 믿겠냐?” 하면서 “그러지 않아도 어렵게 살아가는 판에 여기저기서 감히 내가 대통령 하고 비슷하게 생겼다고 놀려대서 이민이라도 가고 싶다”고 눙쳤다. 대통령은 “괜한 소리 지껄이다가 잡혀가서 혼줄 나지 말고 그만 닥쳐라. 이 녀석아!” 하고 파안대소했다.

대통령은 당시 최고액이던 500원짜리 지폐 몇 장을 쥐어주면서 이야기했다. 당시 500원은 요즘의 5만원과 비슷한 가치였다. “열차 시간이나 기다리다가 가련다. 그동안 나랑 이야기나 나누자꾸나.” 순간 어린 창녀는 당황했다. ‘쉬었다가 간다면, 짧은 타임이 분명한데 이렇게 많은 돈을?’

“그러면 내가 나가서 쏘주랑 오징어랑 사올 테니깐, 우리 술이나 한잔 해요. 호호~” 그렇게 해서, 대통령과 어린 창녀는 양동의 창녀촌 2층 골방에서 한 잔술을 시작했다. 한잔이 두 잔, 석 잔이 되고… 한 병, 두 병이 서너 병이 금방 되었다. 창녀 아이는 차츰 술이 취해갔다.

“아저씨! 여기 포주들도 경찰들도 정화위원도 모두가 도둑놈들이에요. 다 지네들끼리 짜고 치는 고스톱이야. 우리들을 감시하면서 뜯어먹고, 서로 단속 나온다고 알려주고 숨기고, 모두가 도둑놈 강도들이에요.” 아이는 “나는 미용 기술이라도 배워서 미장원 한번 차려보고 싶은 것이 꿈인데, 절대로 이뤄질 수 없는 꿈이지 뭐에요”라고 했다.

“흥, 아저씨는 대통령 하고 비슷하니깐 이야긴데 대통령도 도둑놈이에요. 모른 체하면 도둑놈이지 뭐. 빡~정희도 도둑~노~옴!“ 어린 창녀는 혀 꼬부라진 소리를 마지막으로 술을 이기지 못하고 자리에 쓰러져 스르르 잠이 들었다.

잠든 창녀의 모습에서 아롱진 눈물자국을 쳐다보던 대통령이 글을 적었다.

“밝은 세상이 될 것이다. 너의 희망도 이루어질 것이다. 희망이 이루어지면 우리 열심히 살자. 그래서 가난을 이겨내고 행복하게 살아보자꾸나!”

그녀의 베갯잇에 쪽지를 묻으며 지갑에서 지폐 여러 장을 빼서 넣었다.

청와대로 돌아온 대통령은 새벽에 비상을 걸었다. “즉시 내무장관을 비롯한 관계기관장 총집합하시오. 임자들은 회전의자에서 폼만 잡으면 끝나는 줄 알아?” 불호령이 떨어졌다. 다음 날부터 당장 서울역 앞 양동과 종로3가의 그 유명한 창녀촌들의 철거가 시작됐다.

갈 곳 없는 창녀들을 보호하는 장소도 만들었다. 미용기술을 비롯한 생계형 교육을 준비했다. 직업훈련소의 새로운 시작이었다. 대통령은 청와대 집무실에서 창밖을 내다봤다. 키다리 코스모스가 방긋거리며 고추잠자리를 부른다. 잘 살고 싶다고 애원하는 어린 창녀의 눈물을 생각하며 가만히 손수건을 꺼내들었다.

박통과 어린창녀의 일화가 어떻게 전해졌는지 솔직히 필자도 정확한 내력은 모른다. 설령 약간의 더하고 빼고가 있다손 쳐도 농촌 출신으로 서민들의 삶을 이해하고 그 편에 서며 조국근대화에 앞장선 박 대통령의 고뇌를 보는 듯하다. 시월의 마지막 밤, 부하의 총에 숨진 박정희 대통령과 4년 넘게 감옥에 있는 박근혜 대통령을 생각하니 8순 노인의 가슴이 먹먹해 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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