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비역장군의 10월유신 비판…’박정희 독재’와 ‘가면 쓴 민주주의자’
내년이면 만 50년이 되는 1972년 10월유신에 대해 족적을 살펴볼 때가 되었다.
조국 근대화를 이루었다고 평가되는 박정희의 평가에서 유신은 누구도, 어떤 식으로도 변명할 수 없는 최악의 실패였다. 김재규의 박정희 살해 당시 사회 경제는 최악이었는데, 그 2년 전 전태일 분신으로 총괄된다.
박근혜는 아버지 공을 세운 것만 알았지 유신으로 이 나라가 얼마나 망가졌는지 아직도 모른다. 가장 우려할 만한 것은 사상계의 장준하 등을 잃은 것만이 아니라 민주화의 가면을 쓰고 김일성을 추수(追隨)하는 자들이 나타나 민주화에 기생(寄生)하여 자라났다는 점이다. 그들 중 일부는 아직까지 정권 배후에 남아 있다.
적자재정은 후세에 물려주는 빚이다. 홍남기 부총리는 나라의 곳간을 관리하는 경제관료로서는 최악이다. 세계적인 오일쇼크가 있었는데도 우리는 극복했다. 다행히 중동 오일 특수가 있었고 오명의 정보통신이 경제를 이끌었다. 기업인으로는 삼성의 이건희가 뒷받침했다. 1988년 서울올림픽은 이들 5공 실적의 총화다. 고구려 후 한민족이 가장 빛나고 나아가 공산권을 무너뜨리는 결정적 계기가 되었다.
그러나 5공을 이끈 전두환의 고난은 지금까지도 계속되고 있다. 법적으로 그리고 정치적으로도 이 문제는 5공 청산과 백담사 유배로 끝난 것이 아닌가? 문재인 정부는 지금 광주의 분노에 불쏘시개를 지피려고 아흔이 넘는 전두환을 불러내고 있다. 6월항쟁이 일어난 1987년은 34년 전으로 일제 36년 강점 통치와 맞먹는 오랜 세월이다.
오늘의 사회경제 상황은 전태일이 분신하던 당시와 같다고 할 수 있다. 한마디로 최악이다. 경제 성적표는 날로 증가하는 청년실업과 이를 메우려는 적자재정으로 종합된다. 빚을 후대에 떠넘기는 소득주도 성장은 국가부채주도 성장이다. 경제학적 근거도 없고 실제로 누구도 가보지 않은 길이다.
5공 6공 경제를 이끈 사공일 등은 대꾸도 않고 웃어버린다. 김재익, 사공일 등은 그냥 관료가 아니다. 최고급의 경제학자였다. 어쨌든 이들의 성공은 대통령 전두환 노태우가 지탱했기 때문에 가능했다. 홍남기의 실패는 문제가 많은 문재인정부의 인기영합에 부화뇌동했기 때문이다. 관료제의 강점은 정치인에 좌우되지 않고 정책을 고수한다는 것이 막스 베버 이래 교과서다.
홍남기는 관료로는 주사도 아깝다. 관官이 아니라 이吏다. 옛날의 아전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