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9년 10월 하노이①] ‘트럼프-김정은 회담’ 호텔서 존 바에즈를 만나다

가수 존 바에즈가 그린 ‘소년의 초상화’. 1960년대 월남전에 반대하는 노래를 여러 곡 부르며 반전운동에 앞장선 존 바에즈는 1972년 성탄절 무렵 하노이를 방문했다. 40년 남짓 지난 2013년 3월말 다시 와서 거리를 구경하다가 한 소년승려 사진을 보고 엿새 만에 아크릴화로 그렸다. 바로 이 그림이다. 

[아시아엔=최병효 주노르웨이대사, LA총영사 역임] 필자는 2019년 10월 하노이를 3일간 둘러볼 기회가 있었다. 결혼식 참석차 5일(토) 저녁 하노이행 밤 비행기에 올랐다. 4시간반 남짓 비행 후 자정녘에 도착하여 하노이 신시가지에 한국인이 투자한 그랜드플라자에서 한 숨 자고, 일요일 오전 인근 빈쇼핑센터(Vin Shopping Center)를 둘러보았다.

하노이 최고의 쇼핑몰인 듯 세계적으로 유명한 브랜드 상품들과 식당, 카페, 수퍼 등 우리나라 백화점과 유사하였다. 코코넛 아이스크림을 맛보고 호텔로 돌아와 중식당을 겸한 월남식당에서 쌀국수 요리를 시켰다.

베트남 쌀국수 맛은 한인보다도 더 많은 숫자의 월남인이 모여 사는 LA지역에서 많이 먹어 보았던지라 특별한 느낌은 없었다. 오히려 미국에서의 월남 음식이 더 풍성한 것 같기도 하다.

저녁 무렵에는 하노이 근교 1시간 거리의 ‘플라밍고 리조트 다이라이’(Flamingo Resort, Dai Lai)에서 열린 성대한 결혼식에 참석하고 거기서 하룻밤을 보냈다. 호숫가 4층 빌라를 빌려 정원에 무대를 만들어 가수도 등장하고 신랑신부도 노래하고 춤도 추는 공연 같은 행사였다. 하객들도 무대에 올라 밤늦게까지 노래 부르고 춤도 췄다.

골프장을 포함해 넓은 호수를 둘러싼 광활한 리조트는 규모나 조경에서 세계적 규모였다. 그런데 아침 식사를 하며 보니 운영이 부실한 곳도 눈에 띠었다. 급속한 성장을 따라 갈 소프트웨어는 아직 부족한 듯 보였다.

오바마 분짜 <사진=셰프 앤서니 부르댕(@anthonybourdain) 인스타그램 캡처>

월요일에는 하노이 구도심으로, 관광 중심지이기도 한 호암키엠(湖還劍) 호수 인근 오바마 대통령이 들러서 유명해졌다는 서민 국수집인 속칭 ‘오바마 국수집’(Obama Bun Cha)에서 국수를 맛보았다. 분짜라는 국수는 불에 직접 구은 돼지고기가 쌀국수에 얹어 나오는 것으로 과거 영국의 중국집에서 즐겨먹던 돼지고기 볶은 것을 국물 국수에 넣은 것과 대비되었다.

필자는 이어 인근 호암꺼이(West Lake)를 바라보는 군대식 카페에 들러서 월남식 코코넛 커피를 마셨다. 종업원들이 군복을 입고 카페 장식도 군대식으로 한 곳으로 월남전을 상기하며 커피를 마시는 경험을 할 수 있었다. 저녁에는 신부의 안내로 ‘하나유키’(Hanayuki)라는 일본식당으로 옮겨 같은 주인이 인근에서 운영하는 월남식당 음식을 가져와서 월남 전통음식을 맛보았다. 중국 변방 음식처럼 느껴지는 월남음식에 특별한 감명을 받지는 못했다. 나로서는 보다 세련되고 맛이 분명한 태국음식을 선호하는 편이라서 그런지 모르겠다.

화요일에는 90년대 초부터 잘 아는 사이로 북한주재 월남대사를 지낸 끄 대사를 오랜만에 만나 하루를 같이 보냈다. 하노이에서는 가격에 비해 좋은 프랑스 음식을 먹을 수 있다기에 옛 프랑스지역으로 불리는 호암키엠 인근의 프랑스 저택을 개조한 식당에서 점심을 하였다. 끄 대사는 와인 대신에 월남산 ‘멘 보드카’(Men Vodka) 한 병을 시켰다.

Men Vodka

점심에 웬 독주인가 놀라서 살펴보니 29도의 쌀 소주였다. 우리의 ‘화요’ 술과 같은 전통 양조주로 맛이 아주 좋았다. 끄 대사는 한국과의 무역 사업에도 관여하는데 이 술을 한국에 수출할 계획이라고 하였다. 우리 소주병 크기의 고급스런 병에 담긴 한 병이 현지에서 한국 돈 3천원 정도라니 한국에서도 경쟁력이 있을 것이라고 하였다.

식사 후에는 그해 2월 28, 29일 트럼프-김정은 회담이 열렸던 유서 깊은 메트로폴 호텔(Metropole Hotel, Sofitel Legend)을 둘러보았다. 프랑스 시대인 1901년 개관하였다는 7층 규모의 오래된 유럽식 호텔로 품격이 있었다. 트럼프는 인근의 매리어트(Marriott) 호텔, 김정은은 역시 인근의 멜리아(Melia) 호텔에 숙소를 정하고 회담은 메트로폴 호텔에서 했다고 한다.

존 바에즈

호텔 로비에 유명한 그림이 있다고 해서 살펴보니 소년의 초상화인데 제법 좋아 보였다. 색감이 피카소 느낌이었는데 의외에도 존 바에즈(Joan Baez)가 그린 것으로 그녀 작품으로서는 처음으로 프레임을 한 것이라고 하였다. 1960년대 미국 버클리를 중심으로 한 월남전 반대운동에 앞장섰던 그녀는 1972년 성탄절 무렵 하노이를 방문하여 이 호텔에 들렀다고 한다. 그녀는 40년 남짓 지난 2013년 3월말에 다시 와서 거리를 구경하다가 한 소년승려 사진을 보고 이를 엿새 만에 아크릴화로 그린 것이라고 하였다.

2019년 2월 28일 북한 김정은 국무위원장과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베트남 하노이 메르로폴 호텔을 산책하고 있다. <사진 연합뉴스>

전쟁 중 방문한 1972년 성탄절 때는 B52기의 하노이 공습이 심해서 거리에서 폭사하는 사람들도 많았는데 한 여인이 아들을 찾아 울부짖는 모습을 보고 호텔방에서 녹음한 ‘Where Are You Now, My Son’ 음악 속에는 폭격 경고 사이렌과 B52가 쏟아 붓는 폭탄 소리도 들어갔다.

1960-70년대 초에 학교를 다닌 우리 세대에는 기타를 치며 맑은 목소리로 노래하는 존 바에즈는 대단히 인기 있는 가수였다. 반전운동가인 그녀 그림이 메트로폴 호텔 로비에 걸린 것은 여러모로 의미가 있을 것 같다. 트럼프나 김정은도 이 그림을 보았을 터인데 어떤 느낌을 받았을지 궁금하다.

김정은도 이 그림에 대해 현지 김명길 대사로부터 브리핑을 받았을 것이다. 우리 언론의 북미 정상회담 보도에 이 그림 얘기는 없었던 것 같다. 지난 2019년 6월 문재인 대통령이 노르웨이 국빈 방문 중 오슬로대학 법대 강당 ‘오슬로 포럼’에서 연설할 때 등 뒤의 높은 벽에 그려진 뭉크의 초대형 벽화가 TV방송에서도 크게 비쳐 보였다. 역시 아무 언론도 이를 언급하지 않고 지나갔다.

국가원수 방문을 통하여 그 나라의 중요 문화에 대해서 우리 국민들이 알 수 있도록 소개하는 것도 의미 있는 일일 텐데 왜 별 내용도 없는 연설문만 집중 보도하고 주변 상황에는 무관심한 것인지 이해하기 어려웠다. 뭉크는 20세기 최고의 화가 중 하나로 평가받는다. 그는 평생 그림을 거의 팔지 않고 모두 오슬로시에 기증했다. 하여 그가 공부했던 독일에만 약간 있을 뿐 세계 유수의 미술관에도 소장품이 거의 없다. 따라서 그걸 관람하려면 오슬로에 가야만 한다.<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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