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9년 10월 하노이②] 베트남 ‘에그커피’와 ‘모터사이클’
[아시아엔=최병효 주노르웨이대사, LA총영사 역임] 메트로폴 카페에 앉아 커피 메뉴를 보니 에그커피(Egg Coffee)라는 이름이 보였다. 60-70년대에 한국에서 다방에 아침에 가면 보던 달걀노른자가 둥둥 떠다니던 모닝커피와 같은 것일까 궁금해 주문했다. 9천원으로 한국의 1/3수준인 월남 물가로서는 매우 비쌌다. 호텔 숙박비 350달러에 비해서도 비싸기는 마찬가지였다.
월남식 에그커피는 우리의 모닝커피처럼 달걀노른자가 들어갔으나 설탕과 연유를 넣고 노른자를 휘저어서 걸죽한 것이 모닝커피만 못하게 느껴졌다. 그 유래가 궁금하였는데 독립전쟁 시절에 우유 크림이 부족해서 달걀을 대신 넣은 것이라고 한다. 우리의 모닝커피는 어디서 유래한 것인지 궁금하다.
필자는 이어 지난 번 왔을 때 못 본 국립미술박물관을 찾아갔다. 90년대 말 방콕에서 살 때 화랑에서 접한 옻칠을 한 월남 그림 수준이 높아서 기대를 하고 갔는데 생각보다 컬렉션이 상당히 빈약했다. 전시도 미술관과 박물관을 혼합한 것 같은 인상을 받았다. 저번에 들렀던 국립박물관은 나름대로 월남 역사를 개관할 수 있어 볼 만했는데 미술관은 좀 실망스러운 수준이었다. 끄 대사도 북한미술 얘기만 하였다.
저녁에는 신랑신부 안내로 북한에서 운영하는 평양관 식당에 갔는데 매일 저녁 한다는 공연은 공연자 한 명이 안 와서 오늘 밤에는 안한다고 하였다. 음식가격에 비해 별로 먹을 것은 없고, 29도짜리 백두산 들쭉술은 8만원쯤 하였으나 1만원하는 멘 보드카보다 나은 것 같지도 않았다. 예전에 소련이나 폴란드 등에서도 북한식당에 갔었지만 만족스러웠던 기억은 없다.
70년대에 김일성대학을 다니고 오랫동안 북한에서 근무한 끄 대사도 사람 먹을 쌀도 없는 북한에서 무슨 좋은 술을 만들겠냐고 하였다. 식당에서 일하는 북한 종업원들이 음식도 내오고 공연 일도 겸한다고 하나 식당 손님은 모두 한국사람이었다.
하노이는 인구 8백만의 대도시인데 특이한 것은 대중교통 수단이 거의 없다는 점이다. 학생들까지도 모터사이클로 통학을 해야 하니 거리는 벌떼처럼 몰려다니는 모터사이클과 자동차와 보행자로 엉켜서 뒤죽박죽이다. 매연도 매우 심각하였다. 간혹 큰 거리에 버스가 보이기는 하나 드물고 노선이 적어 별 도움이 되지 않는다고 하였다. 중국 자본으로 지상에 경전철을 건설하다가 중단한 지 몇 년 되었다고 한다. 중국측이 처음에는 저렴하게 계약하였는데 도중에 자꾸 금액을 올려서 중단 상태에 있다고 한다.
중국의 새로운 실크로드라는 일대일로 정책이 이곳에서도 부작용을 낳고 있는 모양이다. 베트남 경제가 특수를 맞아 급격하게 성장하고 있고 한국기업도 수천개가 있다고 하는데 대도시의 핵심시설인 대중교통 문제를 해결하지 않고 있는 것을 보니 이 나라의 발전이 밖에서 예상하는 만큼 빨리 진전될 것 같지는 않아 보였다. 전기도 가끔씩 문제가 있다고 하였다. 이처럼 전반적으로 기본적 사회인프라 투자가 부족하니 경제발전의 파급효과는 늦을 수밖에 없을 것 같았다.
2018년 방문 때는 사찰도 둘러보고, 이번에도 호암키엠 인근 1천년전 세워진 대학이자 공자를 모신 문묘도 가봤는데 눈에 크게 들어오는 역사문화유적이 별로 보이지 않았다. 오랜 전쟁통에 파괴되어 그런지 원래부터 태국이나 버마와는 달리 크게 발전된 문명이 없었던 탓이었는지 모르겠다.
공산당 일당독재와 그에 따른 부패에서 헤어나 베트남이 결국에는 수준 높은 경제와 정치를 달성할 수 있을 것인가? 현재로서는 앞날이 그리 순탄할 것으로 보이지는 않았다. 베트남에 비해 태국은 얼마나 발전되고 선진화된 국가인가를 새삼 느끼는 하노이에서의 3일이었다. 프랑스 식민지배와 이를 이어 받은 미제를 몰아내기 위해 수도승 같은 인생을 살며 독립투쟁을 성공적으로 이끈 호치민을 그 누가 비난할 수 있을 것인가.
2차대전 직후 모든 식민지를 독립시킨 영국과는 달리 프랑스는 1950년대까지 해외 식민지를 고수하였다고 하지만 세계정치의 대세는 이미 탈식민화였기에 월남도 조만간 프랑스로부터 독립하여 시장경제에 기반한 국가를 수립할 수밖에 없었을 것인데 자본주의 강대국들을 상대로 수백만명이 희생된 그토록 치열한 독립전쟁을 했어야 하였을까 하는 의문이 문득 들었다.
민족적 자존심의 대가는 매우 값비싼 것일 수 있다는 외교적 교훈을 베트남에서 얻을 수 있지 않을지? 시대 흐름을 읽는다는 것이 쉬운 일은 아니지만 그 흐름이 분명한 경우에도 정치 지도자들의 오판이나 욕심에 의해서 무고한 인민들이 대거 희생될 수 있다는 것을 그저 그 민족의 운명이라고 받아들여야만 하는 것일까? 나로서는 명쾌하게 풀 수 없는 의문이었다.
수요일 새벽 하노이를 출발하여 4시간여 만에 인천에 내리니 정글을 벗어나 문명세계에 들어온 기분이다. 우리 민족이 지난 수십년간 엄청나게 희생하며 이렇게 많이 건설하고 발전한데 대한 자부심도 들었다. 그러나 한편으로는 자기들 딴에는 촌철살인식 어법이라고 우쭐대나 내 귀에 들리기에는 시정잡배식 저질의 언사로 국어를 명예훼손 시키며 자리싸움, 패거리 싸움에만 매달리는 정치배들이 백성이나 기업의 발목을 잡지 말고 조금이라도 애국심을 발휘해서 한 단계 더 높은 수준의 국가를 만들도록 노력하면 좋겠다는 바람을 가지는 것은 헛된 망상에 불과한 것일까 하는 불안도 떨쳐버릴 수는 없었다.
미국이나 영국의 근래 모습을 보면, 인류 정치발전사는 소련의 종말과 함께 자유민주주의제도의 승리(the end of history)로 마감되었다는 프란시스 후쿠야마(Francis Fukuyama)의 진단도 시효가 지난 것이 아닌가 하는 의문도 들고, 인류가 글로벌시대를 넘어 AI시대에 걸 맞는 새로운 정치체제를 고안해내야 하지 않나 하는 생각도 들었다.
역사의 진보를 믿지만 그 방향이 항상 앞으로만 향하는 것은 아니고 뒤로 돌아가기도 한다는 점을 상기한다. 우리는 지금까지의 발전에 자부심을 가지고 계속 전진해서 이 격변하는 세상을 견뎌낼 수 있을 것이라는 희망이 있다. 이를 바탕 삼아 한강의 기적을 탐사하는 바이킹 순례를 다시 시작하는 것은 어떨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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