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의 시] ‘괘종시계’ 박노해
안데스 고원의 원주민 부족은
여명이 밝아오면 높은 언덕으로 올라가
동쪽을 향해 절을 하며 기도를 한다
파차마마여, 오늘도 태양을 보내주소서
너무 오래 구름이 끼고
알파까가 병들고 감자 흉작이 드는 것도
신에게 바치는 효성이 모자란 탓이라고
그리하여 날마다 태양이 뜨는 것은
신의 은총이고 삶의 기적이라고 감사하면서
해가 뜨면 햇살 같은 얼굴로 서로를 포옹하며
하루를 기쁨으로 시작해왔다
어느 날 스페인 선교사가 들어와
그것은 무지몽매한 미신이라고
태양은 아침마다 떠오르게 돼 있다고
자 여기, 괘종시계가 울릴 때 일어나면
날마다 태양을 볼 수 있다고 가르쳤다
과연 괘종시계는 훌륭하게 태양을 떠오르게 했고
새벽에 동쪽을 향해 기도드리는 행렬도 사라져 갔다
이제 아침이 오고 태양이 떠올라도
아무도 햇살 같은 얼굴이 아니었다
무감하고 피로한 노동의 시작만이
하루하루 주어질 뿐이었다
사람들은 아침부터 감자를 한 줄이라도 더 심고
알파까 한 마리라도 더 늘리는 데 매달릴 뿐이었다
날마다 태양을 보내주시는 파차마마의 은총과
삶의 기적에 감사하는 마음이 사라지자
사람들 가슴 속에 태양이 떠오르지 않게 되고
아침마다 환희에 빛나던 주변의 세계와
우애의 마음들이 마술처럼 사라져버린 것이다
정확하게 울리는 괘종시계와 함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