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3주년 국군의날⑤] 헌팅턴의 ‘군인과 국가’와 12.12사태 ‘유감’
민군관계와 정치의 이론에 관한 명저 <군인과 국가>를 쓴 사무엘 헌팅턴은 정치학 대가다. 한국해양전략연구소에서 부탁한 재번역을 하다 보니 여러 군데 허점이 보였다.
생도시절을 포함 43년 복무기간을 마치고 미국, 영국, 독일, 일본, 중국, 러시아, 북한 등을 방문하고 육군 소장으로 예편한 내 눈이 높아진 것이 영향을 끼쳤을 것이다.
<日本 軍閥興亡社>를 생도시절부터 수십 차례 읽은 필자로서 볼 때는 일본에 대한 서술이 부족했다. 독일군에 대한 지식도 부족했다. 헌팅턴이 <군인과 국가>를 쓴 것이 1956년이니 1955년 창건된 독일 연방군에 대한 자료가 부족할 것은 당연했다.
1944년 연방군이 히틀러를 제거하려다 실패하여 총살된 곳은 연방군의 성지가 되었다. 연방군 장교는 여기서 임관선서를 한다. 독일이 과거를 반성하고 새로운 군대를 만들기 위해 얼마나 노력하고 있는가를 보여준다. 그러면서도 장교 교육은 병으로 부터 출발하며, 싸우면 이기는 군대를 만들기 위해 프러시아 군대의 전통도 계승하고 있다.
김관진 장관 등 독일에 유학한 장교들의 증언을 생생하게 들은 나로서는 부족했다. 조남국 박사는 독일의 학계가 훈련을 받는 과정을 잘 설명해 주었다.
그러나 헌팅턴의 민군관계의 이론은 탁월했다. 미국의 개척사부터 시작해서 남북전쟁과 세계 1, 2차대전과 한국전쟁 기간을 다루고 있다. 특히 군인을 △전문성 △책임성 △단체성을 가진 전문직업의 이념형(ideal type)을 갖춘 전문직업으로 분류한 것은 민주국가 군대의 규범이 되었다.
군의 전문성은 무력의 관리다. 군은 대조직을 움직여 폭력을 관리하는 기술의 전문가다. 군인은 의사와 같은 고도의 전문가다. 아무나 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책임성은 사회의 안전보장이다. 장교의 국가에 대한 책임은 전문적 조언자로의 책임이다. 단체성의 경우 군도 관료조직의 성격을 가지고 있음을 말한다.
계급은 개인에게 부여된 특권으로서 경험, 교육, 연공, 능력에 의하여 책정된 직업상의 업적을 반영하고 있다. 직업군인이 갖추어야 할 모든 교과서적 원칙은 여기서 나온다.
헌팅턴의 <국가와 군인>은 이후 미국 정치학계의 담론을 이끌었다. 특히 1996년 <문명의 충돌>은 오늘날 미국과 중국의 갈등을 정확히 예견하며 미국과 이슬람의 갈등도 다루고 있다.
그는 NSC 자문으로도 일했고 자타가 공인하는 최고의 정치학자였다. 미국 국방부의 조직혁명을 가져온 맥나마라와 함께, 헌팅턴은 군의 사표가 되었다. 오늘날 미국이 세계를 지도하고 있는 것은 이 같은 지성의 지도력이다.
육사는 창설된 1960년대 일본군대 정신교육 영향을 깊게 받고 있었다. 1960년대부터 미국에 유학한 교수를 통하여 헌팅턴의 민군관계 이념을 받아들인 육군사관학교는 군의 문민통제에 대해 철저한 교육을 받고 있었다. 그런 입장에서 12.12 사태가 군의 본령을 흩뜨린 것은 개탄할 일이다.
반면 통신혁명을 이룩한 오명 박사(육사 18기) 등 5공에 참여한 학자들의 높은 기여를 자랑한다. 사회를 지도하는 지성인들은 이 두 측면을 함께 살피고 육사에 대한 비판과 격려를 병행해주기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