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11테러 20주기①] 현장을 가다···”편견·혐오 안 멈추면 현재진행형”
2021년 9월 11일은 9·11테러 발생 20주기가 되는 날입니다. 20년이 흐른 오늘, 우리는 9·11사건에서 무슨 교훈을 얻었고, 이를 간직하며 거울삼고 있는지요? <아시아엔>은 사건 현장을 찾아 20년 전과 오늘의 모습을 독자들께 전합니다. 사건 발생 당시 아직 태어나지 않았던 필자는 이렇게 말합니다. “현장을 보면서 미국인, 아니 세계인에게 잊혀질 수 없는, 결코 잊어선 안될 사건이란 생각이 들었습니다. 아무리 인간이 망각의 동물이라고 해도···.” <편집자>
[아시아엔=김동연 <아시아엔> 미주 통신원, 디킨슨칼리지 재학] 기자는 한일월드컵 직전인 2002년 5월 태어났다. 2001년 9월 11일 9·11테러 이듬해다. 20주기를 앞두고 8월 16일 현장을 찾았다. 세계무역센터 지하철역에 내리자 웅장한 대합실과 오큘러스쇼핑몰이 눈에 들어왔다. 날개를 펼치는 새 모양의 디자인은 비둘기를 형상화한 것 같다.
9·11뮤지엄 기억공간에는 희생자 이름과 사진이 걸려 있다. 이들의 사연을 검색할 수도 있다. 당시 테러로 항공기 탑승객 265명, 세계무역센터 2606명, 펜타곤 125명, 소방관 344명, 경찰관 71명, 경찰견 1마리가 희생됐다.
뮤지엄 지하 계단 옆에서 보니 오래된 철골 2개가 보였다. 건물 2층까지 닿는 철골은 트라이덴트라 불리는데, 세계무역센터 1번 타워(북쪽타워) 동측 벽을 지지해주던 구조물이다. 기둥 밑에는 ‘SAVE’ 글자가 칠해져 있다. “절대 잊어선 안돼!” 소리가 들려오는 듯했다. 안쪽 커다란 액자엔 9월 11일 오전과 오후, 같은 장소에서 찍힌 세계무역센터 1번, 2번 빌딩 모습이 담겨 있다. 쌍둥이빌딩이다.
‘브루클린 브릿지’와 함께 뉴욕시의 랜드마크였던 쌍둥이빌딩은, 비행기 2대에 의해 오전 10시30분 거대한 연기와 잔해만을 남기고 사라졌다. AA11편은 오전 8시46분 1번 빌딩, UA175편은 오전 9시3분 2번 빌딩에 충돌했다.
테러 전개과정은 뮤지엄에 전시된 지도에 자세히 설명돼있다. 항공기 2대가 추가로 납치되고, 이들은 미국 국방부 펜타곤 청사와 백악관과 국회의사당으로 향하고 있었다. 그중 AA77편 항공기는 9시37분쯤 펜타곤 청사 서쪽면에 충돌해 큰 화재를 일으켰고, UA93편은 승객들의 필사적인 저지로 10시3분쯤 피츠버그에서 약 129km 떨어진 섕크스빌 인근에 추락했다.
기자는 뮤지엄에 전시된 사진, 동영상과 음성자료, 그리고 잔해들을 살펴보면서 핸드폰으로 촬영하고 녹음했다. 사진을 들여다보면 2001년 9월11일 오전 8시46분에서 9시3분 사이 격추 장면을 목격한 뉴욕시민들은 경악을 금치 못하고 있다. 충격, 당혹, 걱정, 오열, 절박함···. 격추 당시 충격으로 쌍둥이빌딩 비상구는 고장나고 엘리베이터는 운행 중단됐다. 빌딩 안 사람들은 질식사하거나 매몰됐다. 고층에서 아래로 뛰어내리다 목숨을 잃은 이도 있다. 현장에 남은 희생자들 음성 메시지에 가슴이 저며온다.
8시59분, 희생자 숀 루니는 아내와 통화하고 있었다. 남쪽 타워(2번 타워)는 격추 직전이었다. 건물 관계자가 “아직 이곳은 안전하다”고 안내방송 하던 내용이 통화 소리에 함께 녹음되었다. “비행기가 충돌한 것 같아. 90층에서 화재가 일어난 것 같은데, 너무너무 끔찍해. 그럼 이만.” 그 직후 9시3분, 비행기가 2번 빌딩에 충돌하면서 숀 루니는 목숨을 잃었다. 펜타곤에 추락한 AA77편에는 어린이 5명도 타고 있었다. 3살, 8살 남매와 초등학생 3명 등이다.
다시 뮤지엄에 전시된 사진을 살펴본다. 사고 후 폐허로 변한 현장의 유독가스 속으로 소방관과 경찰관들이 뛰어든다. 의료인과 시민들도 구조에 발 벗고 나선다. 헌혈 자원자도 장사진을 이룬다. 현재진행형 같다.
20년이 지나도, 9·11 테러사건은 미국인, 아니 세계인에게 잊혀질 수 없는, 잊지 말아야 할 역사로 기억된다. 왜 기억해야 하는가? 똑같은 역사가 반복되지 않도록 하기 위해서다. 두려움과 편견, 혐오가 멈추도록···.<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