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각문화 3.0] ⑤ 미술, 그 용도에 대한 의문

매머드상아 조각상
약 3만4000년 전 크로마뇽인들이 매머드 상아를 깎아 만들었다는 조각상. 이것의 용도는 무엇일까? 아무튼 예술작품은 아니다.

미술은 무엇인가? 미술은 자신의 사상, 주장을 색과 형으로 나타낸 예술의 한 분야라고들 말한다. 그렇다면 예술은 무엇인가? 예술에 대한 언급을 시작하면 조금 복잡하다. 멀게는 고대 그리스에서 이루어진 예술론으로 거슬러 올라가고 이어 중세, 근대, 현대의 예술론 등을 들 수 있다. 아무튼 예술은 철학자가 삶의 방식을 여러 방법으로 제안하고 논의하듯이 작가의 사상적 가치를 어떤 결과물에 부여한 완성품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러므로 예술은 시간적, 공간적으로 남겨진 결과물로 그 자체가 용도라고 할 수 있다. 그런데 예술 작품은 그 용도를 굳이 한정할 수 없는 것이기도 하다. 예술을 향유하는 사람과 작품을 제작한 작자의 어떤 사상을 더듬어 파악하게 되는 것이 예술의 과정이다.

미술은 색과 형으로 나타낸 예술이므로 시각적 이해가 우선이지만 그렇지도 않다. 필자는 어떤 전시장에서 시각장애인이 한 조각상을 만지면서 느끼는 장면을 본 적이 있기 때문이다. 미술은 시각적으로만 국한하여 한정할 수 없지만 어쨌든 시각적 예술 행위이자 완성 작업을 말한다.

그러면 약 3만4000년 전 크로마뇽인이 남겨놓은 조각 작품은 예술일까? 그들이 어떤 철학이나 사상적 주장을 위하여 이 작품을 만들었을까? 그렇지 않다. 이들은 어떤 목적을 위하여 조각상을 만들었을 것이다. 즉 용도, 쓰임새를 위하여 만들었다는 얘기이다.

생각해보면 우리 인류의 선배들이 만들어 놓은 작품들은 거의 쓰임새를 위한 것들이었다. 그 쓰임새들은 몇 가지로 나누어 볼 수 있다.

우선 주술적 용도이다. 위대한 자연에 비해 한없이 나약한 인류는 범신적 기원을 했고 그러한 바람은 지금까지 이어지고 있다. 이러한 용도로 만들어진 것들은 여기저기 많이 보인다. 보이지 않는 신과의 소통으로 어떤 소망의 달성을 기원한 용도로 제작된 것들이다. 고대의 여러 동굴 벽화, 암각화 등에 나타난 상징은 꽤 주술적인 모습을 하고 있다. 크로마뇽인들이 남긴 조각상 역시 주술적 용도로 만들어졌을 수 있다.

라스코동굴벽화(좌) 부적(우)
라스코 동굴 벽화에 그려진 소. 이러한 그림들 역시 어떤 기원을 나타낸 주술적 소통의 결과라 할 수 있다. 또한 현대에 까지 남아 있는 부적은 대표적인 주술적 결과물이다. 이것은 신과의 소통을 위하여 무속인이 제작한 시각적 커뮤니케이션 작품이라고 할 수 있다.

그 다음의 용도는 바로 시각적 커뮤니케이션을 위한 것들이다. 이것은 그리 어렵지 않은 개념이다. 고대인들이 남겨놓은 그림과 글자 등이다.

고대 이집트의 상형문자
고대 이집트의 상형문자들. 이렇게 시작한 그림글자들은 점차 구체화되어 나중에 기호글자로 변해갔다.

문자는 정착문명의 결과물이다. 4대 문명의 발상지에서는 공통적으로 글자들이 있었음을 알 수 있다. 그만큼 대단위 의사소통이 있었고 그것을 기록하여 남겨두는 일이 중요했다. 의사소통의 중요성은 동서양을 막론하고 글자를 해독하고 그것을 운용하는 일이 일종의 사회적 지위를 결정했다는 것이다. 이러한 소통 행위는 사회의 발달과 더불어 확대되었고 중요하게 여겨졌다. 조선시대 양반 사대부의 능력은 글을 읽고 쓰는 일이 가장 중요한 기준이었음은 누구나 알고 있는 일이다.

추사 김정희의 세한도
추사 김정희의 세한도. 조선 사대부의 시각적 의사소통을 위하여 남겨 놓은 전형적인 결과물이다.

세 번째로는 입체 조형물들을 들 수 있다. 앞서 크로마뇽인들이 남겨 놓은 작품에서 볼 수 있듯이 인류는 적지 않은 입체 조형물들을 남겨 놓았다.

고인돌 스톤헨지 피라미드 등
좌측 상단부터 시계방향으로 한국의 고인돌, 영국의 스톤헨지, 이집트의 피라미드와 스핑크스, 고대 그리스 조각상과 한국의 장승 , 오스트리아 빌렌도르프의 비너스 조각상 등은 모두 어떤 알림의 구실을 하고 있다. 이것들은 무엇을 알리고 있을까?

인류가 입체적 제작물을 남겨 놓은 역사는 생각보다 길다. 벽에 그림을 그리는 일보다 입체물을 만드는 것이 어려울 것으로 지레 짐작하여 입체물의 역사가 짧았으리라고 생각할 수 있다. 입체물은 사람들에게 아주 구체적인 암시를 한다. 공간을 점유하며 서 있는 조형물은 어떤 외경을 자아내게 한다. 고인돌과 스톤헨지 등은 묘지로 조성됐지만 그 자체로 일종의 경고를 담고 있다. 이러한 용도로 가장 권위적인 모습을 하고 있는 것이 이집트의 피라미드이다. 절대적 지배자의 묘소에 대한 주의, 경고는 스핑크스 조각상까지 덧붙여 아주 강력한 장치를 보여주고 있다.

환태평양 문화권에서 흔한 토템폴(Totem pole) 문화는 한국에서 장승으로 나타난다. 장승은 집단의 결속을 비롯한 여러 복합 상징을 담고 있는 입체물이다. 한편 다산과 풍요를 기원하는 입체물도 있었다. 빌렌도르프의 비너스상이 대표적인데 이러한 용도를 가진 조각상의 역사는 이후 그리스, 로마 조각들에서도 보이며 심지어 신라 토우에서도 발견된다. 그리고 인류가 점차 구체화한 종교에 대한 조각상이 만들어졌는데 이것 역시 그리스, 로마 조각상들로 나타났다.

이렇게 살펴 본 우리 조상들이 만들어놓은 결과물들이 모두 확실한 용도를 가진 제작품들이었다. 과연 이것들을 미술로, 예술 작품으로 정의할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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