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각문화 3.0] ① 제대로 소통하고 싶다면 디자인!

고대 이집트의 건물 벽에 새겨진 상형문자(왼쪽), 건물은 인간의 거주를 위한 도구이며, 문자는 인간 본능인 의사소통의 역할을 한다.

디자인의 시작

역사 이전 시대부터 우리 인류가 세상에 남겨놓은 것들은 매우 많다. 우리는 그것들 중 가장 가치 있는 것들을 문화유산이라고 부르며 소중하게 취급한다. 이들 문화유산의 범위는 매우 많고 다양하지만 자세히 보면 크게 두 부류로 나누어 볼 수 있다. 하나는 의사소통을 위한 것, 또 하나는 쓰임새를 위한 것이다.

우선 의사소통에 대하여 생각해보자.

인간의 여러 본능 중 가장 중요한 것이 의사소통의 본능이다. 우리의 본능들, 즉 배가 고파서 뭔가 음식으로 배를 채운 다음, 얼마 지난 후 배설을 하고 잠을 자야하는 것과 같은 일들을 들 수 있다. 이런 행위들은 인간본능이라기보다는 오히려 동물의 본능에 속하는 것이라는 생각이 든다.

인간에게는 이런 동물적 본능들보다 중요하면서도 다른 동물들과 분명하게 구분되는 본능이 있다. 바로 의사소통이다. 의사소통은 인간 이외의 다른 동물들에게도 있지만 우리에게 있어서 소통은 본능보다 우선하면서 매우 복잡한 메카니즘을 지니면서 현재에 이르고 있다. 그러므로 우리 인간은 소통 때문에 살고 있다고 할 수 있다.

인간은 누가 되었든 동료들과 의견을 나누면서 살아간다. 가족, 친척, 친구의 소식이 궁금하다. 이것은 태초 이래로 다져온 생존 방식의 또 다른 모습이 남겨놓은 유산이다. 날씨변화, 자연환경 변화, 맹수의 접근, 농사와 사육에 대한 정보, 적들의 침입, 질병의 유행 등 무수한 정보(情報, information)들과 더불어 살다보니 그리 되었을 것이다. 동물처럼 우수한 털을 갖추지 못하여 늘 옷이 필요했고, 그들처럼 막강한 발톱과 이빨로 무엇이든 먹지 못하여 음식에 굶주리다 농사와 목축을 고안하여 살아온 인류였다. 이렇게 한없이 나약한 사람들에게 정보는 매우 중요한, 필수불가결의 무기가 되었던 것이다. 이리하여 인류에게 정보의 향유는 매우 중요한 본능이 된다. 우리의 유전자 속에 확실히 새겨져 내려오고 있는 셈이다. 그렇게 이루어진 유전자로 인하여 우리는 현대 사회에서의 여러 관계를 설정하며 살고 있다.

‘정보를 공유하는’ 소통이 매우 중요하다는 사실은 그로 인하여 벌어지고 있는 적지 않은 문제들을 통하여 알게 된다. 이른바 ‘왕따’와 같은 따돌림 문화가 그것이다. 따돌림은 대단한 형벌이 된다. 바로 소통에서 제외되는 것이기 때문이다. 친구가 없어서 대화를 할 수 없는 처지처럼 참담한 지경은 없을 것이다. 이렇게 의사소통은 매우 중요하다.

다음으로 도구라는 쓰임새를 들 수 있다. 도구는 인간만이 만들었고, 만들 수 있는 유일한 것이다. 인류는 도구를 만들면서 삶을 새롭게 이룩했다. 돌을 다듬어 도끼 등을 만들어 농사를 짓거나 동물을 사육했고 싸움을 벌였다. 도구는 전형적으로 남성적인 특성을 지닌다.

멀리 거슬러 볼 필요 없이 100년 전까지만 되돌려 남성들의 역할을 돌아보자. 남자들은 물리적 힘을 발휘해야만 했다. 농경이나 목축을 하는 사회에서 여자는 노동력을 생산해야만 했다. 즉 아이를 낳아 키워야 했는데 이는 매우 중요한 일이었다. 노동력은 생산성과 비례했기 때문이다. 여자들이 집에서 열 명이 넘는 아이들을 키우는 동안 남자들은 농사를 짓고, 가축을 기르고, 집을 짓고, 도로를 만들고, 성을 쌓고 전쟁을 해야만 했다. 농사, 목축, 건축, 토목, 전쟁에는 도구가 필수적이다. 성공의 열쇠는 도구가 쥐고 있었던 것이다. 힘과 조직을 아우르며 세계를 구축하거나 넓히고, 안전을 도모하는 남성들에게 도구는 정말 중요한 것이었고 도구가 역사를 바꾸어 버렸다.

휴대전화 여성들 사이에 더 빨리 전파

이렇게 의사소통과 도구가 보여주는 예는 지금 우리의 삶 속에 그대로 남아 이어지고 있다. 그 중에서 의사소통은 여성적 특성이 두드러진 본능이라고 감히 단정하고 싶다. 왜냐하면 그렇게 생각하기까지 재미있는 경험들을 했기 때문이다.

휴대전화가 보급되면서 그것이 학생들에게도 보편화될 때 남학생들보다는 여학생들에게 더 빨리 전파되었다. 그리고 휴대전화가 없던 시절, 오전 무렵 집에 전화할 일이 있어서 어렵게 전화를 하면 집 전화는 늘 통화중이었다. 우리의 어머니들께서는 대부분 가족들을 직장, 학교로 보낸 후 오전 시간에 전화를 하면서 보내셨던 것이다. 의사소통은 집이라는 공간에 한정되어 줄곧 아이를 기르고 키우면서 고립되어 있던 여자들에게는 어쩔 수 없는 선택이며 일탈이었을 것이다. 더욱이 유교적인 분위기에서 사회적 활동을 근본적으로 통제하던 분위기 속에서 의사소통은 어쩌면 유일한 답답증 해소방법이었을 것이다. 이렇게 의사소통은 여성 우선의 특성이라고 말할 수 있다. 극단적으로 말한다면 수다를 떤다는 것은 여성들의 행위이면서 의사소통을 위한 일이었던 셈이다. 그것이 통신수단의 발달로 인하여 변화되고 확대된 것이다.

반면에 남성들에게 도구는 본능이다. 작거나 크거나를 막론하고 기계와 같은 물건들에 정통하다. 사내아이들에게 쏘나타, SM7, 그랜저 등 자동차 모델을 가르쳐 주는 일은 없다. 그래도 그들은 순식간에 지나가는 자동차의 모델과 연식까지 바로 알아차린다. 불과 1초도 안 걸린다. 왜 그럴까? 남자들은 인류와 더불어 도구, 기구에 대한 인식과 갈망이 유전인자에 타고 나기 때문이다. 지금도 적지 않은 남성들이 이른바 도구에 몰입되어 있다. 남성의 세계에서는 정도의 차이만 다를 뿐 기구, 도구, 물건에 대한 관심은 당연한 것이다. 같은 휴대폰이라도, 자동차라도 외양을 견주어 비교하고 장단점을 파악하며 무리하게 모델 변경을 시도하는 사람들은 거의 남자이다.

신(新) 시각문화의 이해는 이렇게 의사소통과 도구라는 쓰임새에 대한 이해로부터 시작된다. 디자인의 시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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