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의 시] ‘꼬막’ 박노해 “우리 여자만에 말이시”

꼬막

벌교 중학교 동창생 광석이가
꼬막 한 말을 부쳐왔다

꼬막을 삶는 일은 엄숙한 일
이 섬세한 남도南道의 살림 성사聖事는
타지 처자에게 맡겨서는 안 된다
모처럼 팔을 걷고 옛 기억을 살리며
싸목싸목 참꼬막을 삶는다
둥근 상에 수북이 삶은 꼬막을 두고
어여 모여 꼬막을 까먹는다

이 또롱또롱하고 짭조름하고 졸깃거리는 맛
나가 한겨울에 이걸 못 묵으면 몸살헌다
친구야 고맙다
나는 겨울이면 니가 젤 좋아부러
감사전화를 했더니
찬바람 부는 갯벌 바닷가에서
광석이 목소리가 긴 뻘 그림자다

캔 꼬막을 옮기는 아낙들

우리 벌교 꼬막도 예전 같지 않다야
수확량이 솔찬히 줄어부렀어야
아니 아니 갯벌이 오염돼서만이 아니고
긍께 그 머시냐 태풍 때문이 아니것냐
요 몇 년 동안 우리 여자만에 말이시
태풍이 안 오셨다는 거 아니여
큰 태풍이 읍써서 바다와 갯벌이
한번 시원히 뒤집히지 않응께 말이여

꼬막들이 영 시원찮다야
근디 자넨 좀 어쩌께 지냉가
자네가 감옥 안 가고 몸 성한께 좋긴 하네만
이놈의 시대가 말이여, 너무 오래 태풍이 읍써어
정권 왔다니 갔다니 깔짝대는 거 말고 말여
썩은 것들 한번 깨끗이 갈아엎는 태풍이 읍써어

어이 친구, 자네 죽었능가 살았능가

여수 여자만에 저녁 노을이 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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