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의 시] ‘종자’···박노해 “파릇파릇 새로운 세상을 열어”

종자로 골라내진
씨앗들은 울부짖었다

가을날 똑같이 거두어졌건만
다들 고귀한 식탁 위에 오르는데
왜 나는 선택받지 못한 운명인지요

남들은 축복 속에 바쳐지는데
나는 바람 찬 허공에 매달려
온몸이 얼어붙고 말라가야 하는지요

씨앗들은 눈 녹은 찬물에 몸을 불리고
바람 찬 해토解土의 대지에 뿌려져
또 한 번 캄캄한 땅 속에 묻혀
살이 썩어내리고 뼈가 녹아내렸다

씨앗들은 침묵의 몸부림 속에
두 눈마저 감지 못하고 썩어 사라지며
숨이 넘어가는 최후의 그 순간,
마침내 자기를 마주쳤다

한 알의 씨앗이 수많은 불꽃이 되어
검은 대지에 피어나는 찬란한 새싹을
파릇파릇 새로운 세상을 열어나가는
위대한 첫 발을 내딛는 자신의 모습을

겨울에서 봄으로
죽음에서 부활로
한 생에서 영원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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