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기우의 행복한 도전 53] 국회 ‘학력차별금지법’ 꼭 제정을
[아시아엔=이기우 한국전문대학교육협의회 전 회장, 이해찬 국무총리 비서실장 역임] 현재 우리 사회를 이끌어 나가는 기준은 선택과 집중이다. 잘 하는 사람에게 모든 것을 몰아주자는 의미다. 능력에 따른 결과이니 기본적으로 동의한다.
하지만 공정한 게임규칙을 만들어서 사회적 약자도 승자가 될 수 있는 길을 열어 주고, 패자에게도 부활할 수 있는 기회가 주어져야 한다는 것이 평소 내 소신이다. 특히 전문대는 일반대학에 비해 약자의 입장에 있다. 전문대에 입학하는 학생들 또한 사회적 약자가 많다.
그렇다면 먼저 이들에게 충분한 지원을 해주어야 하고, 이를 통해 동등한 출발 지점을 만들어 주어야 한다. 그 다음에 기회를 공평하게 주고 엄정하게 평가하는 것이 필요하다. 사회 전체로 보면 그것이 더 생산적이고 효율적이다. 그렇지 않고 출신이나 학벌, 재력 등의 개인차를 당연한 것으로 여기며 엄정한 평가만을 강요한다면 누가 자신의 능력을 마음껏 펼칠 수 있겠는가.
어떤 사람이 이 사회와 공동체를 위해 자신을 던져 헌신하겠는가. 나는 우리 사회를 보면서 20대 안에서도 어찌 보면 가장 소외된 전문대 학생들을 위해 헌신하는 영향력 있는 어른들이 적다는 생각을 한다. 그래서 나 같은 사람의 역할이 더 중요하다. 고졸 출신이었지만 학벌 대신 오직 능력으로 평가받으며 우리 사회의 변화와 발전을 위해 열심히 일했고, 국가를 위해 최선을 다해 헌신했다. 내가 일한 만큼 보상이 주어졌고 그것을 알아주는 사람들이 있었다. 우리 사회가 올바른 쪽으로 발전하기 위해서는 나와 같은 사람들이 지속적으로 나올 수 있어야 하지 않을까?
그런데 지금은 어떠한가. 시간이 지날수록 사회적 약자도 승자가 될 수 있는 공정한 사회가 간절해진다. 학력에 따라 임금을 차별하는 기업이나 기준을 없애는 국가적 노력이 필요한 것도 이 때문이다. 학벌중심사회에서 능력중심사회로 가자는 데에는 이견이 없을 것이다.
내가 전문대학에서 학생들을 만나고 있으니 전문대학에 대해서 말해 보고자 한다. 우선 전문대학 졸업생의 경우, 기업에서의 역할이나 임금 구조의 측면에서 일반대학 졸업생보다는 오히려 고교 졸업생과 비슷한 처지에 있다. 따라서 정부의 고교 졸업생 취업 지원 정책이 시너지 효과를 창출하기 위해서는 전문대학 졸업생에게도 같은 관심이 필요하다. 또 전문대 졸업생의 임금이 고교 졸업생과 거의 차이가 없는 반면, 4년제 일반대학과는 여전히 40%나 차이가 난다는 통계에 주목할 필요도 있다.
근본적으로 전문대생들의 취업률의 향상만이 아니라 취업의 질을 높이려면 임금 차별이 없도록 특별법이 만들어져야 한다. 사교육에서부터 학벌 문제를 비롯한 우리 사회 상당 부분의 문제가 바로 임금 차별 때문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다양한 직업을 있는 그대로 인정해 주고 제대로 된 대가를 공평하게 지급한다면 우리 사회의 많은 문제가 사라질 것이다. 이와 관련된 법안은 국회에서 2010년 당시 김기현 새누리당 의원이 ‘학력차별금지법’으로 발의했으나 여야가 일정이 바쁘다는 핑계로 흐지부지되고 말았다.
실력과 경력으로 인정받고 자신의 능력을 키워 나갈 수 있다는 신뢰가 있어야 사회가 발전할 수 있다. 그래야 우리 사회는 저성장, 장기 불황이라는 비극적 미래 전망에서 탈출할 수 있다. 이 부분에 대한 새로운 정책 수립은 반드시 필요한 일이라고 생각한다. 전문대 학생들의 자존감과 실력을 통한 공정 사회 수립을 위해서라도 이 법안은 다시 추진되어야 할 것이다. 능력 중심의 사회가 필요하다는 당위론적 말보다는 현실에서는 이렇게 임금 차별이 상존하기에 반드시 제도적 장치를 마련해 줘야 한다.
물론 학력차별금지법은 임금 체계가 능력과 업적에 따라 결정되면 해결될 문제이다. 우리나라의 임금 체계는 학력과 근속 연수가 중심이 되는 연공급 임금 체계이다. 입사할 때 고졸인지 전문대졸인지 대졸인지에 따라 임금이 결정되는 구조이다. 이와 같은 학력중심 임금 결정 기준이 바뀌지 않는 한 학력차별금지에 대한 논의는 계속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