걸리부·구가원의 중국냉면과 ‘가죽나물’
[아시아엔=박명윤 <아시아엔> ‘보건영양’ 논설위원, 보건학박사, 한국보건영양연구소 이사장] 요즘 중국냉면을 찾는 한국인들이 많아졌다. 중국냉면은 1980년대 호텔 중식당에서 중국냉면을 팔면서 본격적으로 알려졌다. 중국냉면은 중국의 찬 비빔국수인 량몐(凉?)에 한국식으로 찬 국물을 더해 만들어졌다. 얼음 육수에 새우와 해파리, 갑오징어 등 해물과 오이, 달걀, 당근 등 채소를 곁들이고, 땅콩 소스와 겨자장을 넣어 먹는다.
필자가 가족과 함께 즐겨 찾는 연희동 소재 전통중화요리 걸리부(傑利富)와 구가원(邱家苑)에서는 꼭 ‘가죽나물’을 냉면에 곁들이는데 가죽나물이 없으면 중국냉면을 팔지 않는다. 참죽나무의 여린 잎을 가죽나물이라고 하며, 이른 봄에 올라오는 가죽나물은 독특한 향이 있어 별미 식재료로 알려져 있다. 위장건강에 도움이 되는 가죽나물은 봄철에만 나오기 때문에 값(1kg, 2만원)도 꽤 비싸다. 중국냉면은 땅콩 소스의 달콤한 맛을 즐길 수 있지만 칼로리가 높다.
냉면은 냉면집마다 나름대로 맛을 내는 비법을 갖고 있기 때문에 맛이 다르다. 냉면의 맛을 결정하는 육수를 북한산 인근 만포면옥에서는 소의 사골을 고아 우려낸 육수에 동치미국물을 섞어 간을 맞추고 있다. 만포면옥의 메뉴는 평양식 냉면, 비빔냉면을 비롯하여 불고기와 수육, 녹두지짐 등이 있다. 우리 가족은 이 식당에서 평양식 냉면에 수육, 녹두지짐 등을 곁들여 먹곤 한다.
<동국세시기>(東國歲時記), <진찬의궤>(進饌儀軌), <부인필지>(夫人必知) 등 옛 문헌에 냉면이 등장하는 것으로 보아 17세기 조선시대부터 먹은 음식으로 추측된다. ‘동국세시기’에서는 메밀국수를 무김치와 배추김치에 말고 돼지고기를 섞은 것을 냉면이라고 하면서, 음력 11월 시식(時食)으로 소개했다.
궁중의 잔치 기록인 ‘진찬의궤’에 의하면 궁중의 잔치상에는 대개 온면(溫麵)을 차렸으나, 1848년 3월 잔치(순조 비의 회갑 축하잔치)와 1874년 4월 잔치(경복궁을 재건하면서 연 잔치)에는 냉면(冷麵)을 차렸다고 한다.
조선 후기 문인 겸 학자 홍석모(洪錫謨, 1781-1857)가 1849년 쓴 <동국세시기>에 ‘관서(關西, 평안도와 황해도 북부 지역)의 국수가 가장 훌륭하다’고 적었다. 그는 “메밀국수를 무김치나 배추김치에 말고 돼지고기를 넣은 것을 냉면, 국수에 여러 가지 채소와 배ㆍ밤, 쇠고기ㆍ돼지고기 편육, 기름장을 넣고 섞은 것을 골동면(骨董?)”이라고 했다. 앞의 냉면은 ‘물냉면’, 뒤의 골동면은 ‘비빔냉면’으로 본다.
<본초강목>(本草綱目)에는 “메밀은 위를 실하게 하고 기운을 돋우며 정신을 맑게 하고 오장의 찌꺼기를 훑는다”고 기록되어 있다. 메밀은 쌀이나 밀가루보다 아미노산(amino acid)이 풍부하며, 필수아미노산(트립토판ㆍ트레오닌ㆍ리신 등)이 다른 곡류보다 많다. 메밀에 함유되어 있는 루틴(rutin) 성분은 모세혈관을 튼튼하게 하므로 고혈압에 좋으며, 또한 메밀은 변통(便通)이 잘 되어 변비를 예방할 수 있다.
황해도 곡산 부사(府使)를 지낸 실학자 다산 정약용은 지인에게 아래와 같은 시를 적어 줬다.
“(음력) 10월 들어 관서(關西)에 한자나 눈이 쌓이면/ 겹겹이 휘장에 푹신한 담요로 손님을 붙잡아둔다네/ 벙거짓골(삿갓 모양의 전골냄비)에 저민 노루고기 붉고/ 길게 뽑은 냉면에 배추김치 푸르네.”
냉면의 고향은 평안도, 함경도, 황해도 등 북한이며, 특히 1911년 평양면옥상조합(平壤麵屋商組合)이 생길 정도로 평안도는 ‘냉면의 나라’라는 별칭이 붙었다. ‘평양냉면’은 주로 동치미 국물을 사용하였지만 소고기ㆍ돼지고기ㆍ닭고기ㆍ꿩고기 등을 이용한 고기육수도 사용했다. 평양냉면은 툭툭 끊기는 면발과 심심한 육수가 맛의 포인트이다. 황해도 냉면은 물냉면이지만 평안도보다 면발이 굵고 돼지고기 육수를 많이 사용하여 진한 고기 맛이 나며, 간장과 설탕을 넣어 단맛이 난다.
1920년대 함경도의 대중적인 외식은 감자나 고구마로 만든 전분 국수였다. 1930년대 감자 전분 면발에 식초로 삭힌 가자미회를 얹고 고춧가루, 마늘 등으로 만든 양념을 한 ‘회국수’를 만들어 먹었다. ‘함흥냉면’은 쫄깃한 면발과 매콤새콤한 회가 맛의 포인트이다.
속까지 시원한 ‘평양냉면’과 얼얼하고 쫄깃쫄깃한 ‘함흥냉면’을 즐겨 먹는 북한의 음식문화가 6ㆍ25전쟁 후 남한에서도 널리 애용되어 특히 더운 여름철에 즐겨 찾는 음식이 되었다. 북한에서 남한으로 내려온 실향민들은 서울 남산 일대와 남대문 주변에 정착하여 냉면집을 운영하였다.
부산 별미로 인기를 끄는 ‘밀면’은 함경남도 흥남에서 냉면집을 운영했던 피란민이 개발한 음식이다. 당시 함흥냉면에 들어가는 감자전분은 비싸서 엄두도 못 냈고, 배급 밀가루에 고구마 전분을 조금 섞어 만든 것이 밀면이다. 밀면은 값싸고 맛있어, 가난하고 마음이 고달픈 피난민들이 냉면 대신 많이 찾았다고 한다. 북한의 6.25전쟁 때 피란민이 남한으로 대거 몰려와서 부산의 인구가 전쟁 이전의 두 배로 급증하여 생존을 위해 새로운 음식들이 만들어졌다.
요즘 SNS를 통해 ‘냉면 마니아’들이 추천하는 다양한 냉면 중에는 가정에서 간단히 조리할 수 있는 ‘수박 냉면’이 있으며, CJ제일제당은 다양한 냉면 신제품 출시했다. 최근 날씨가 본격적으로 더워지기 시작하면서 냉면을 찾는 소비자가 폭발적으로 늘어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