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로나19 사태 이후 ‘사순절 두번째 주일’에 드리는 기도

나는 그동안 남의 아픔에 얼마나 무심했나? 코로나19가 이런 나를 돌아보게 한다.

[아시아엔=김근상 성공회 주교, 아시아기자협회 부이사장, 경기도청 평화협력 자문관] 최근 읽은 책에 이런 예화가 깊은 감동으로 다가왔다.

‘폴’이라는 이름의 한 회사원이 뉴욕에서 중요한 미팅을 마치고 자기 팀 동료들과 함께 공항으로 가려고 거리로 나섰다. 그 날이 마침 금요일 저녁시간이어서 교통체증이 심해 택시 잡는 것이 거의 불가능해 보였다. 그런데 정말 ‘기적적으로’ 빈 택시 하나가 그들에게 다가오고 있었다. 이 택시를 보는 순간 다른 동료들이 손살같이 달려가서 그 택시를 잡아탔다.

그런데 문제가 발생했다. 너무 빨리 달려가는 바람에 바로 길가에서 장사하고 있던 노점상의 야채·과일 박스를 차버려, 과일과 야채가 길바닥으로 굴러 떨어졌다.

하지만 폴의 일행 중 어느 누구도 이를 개의치 않고 택시에 올라탔다.

폴은 그러나 택시를 타지 않고 그 자리에 순간 멈추어 섰다. 택시 안 동료들이 빨리 타라고 외쳤다. 그리고 이 택시 타지 않으면 비행기 놓친다고 더 크게 소리쳤다. 폴은 나를 “먼저 가라”고 일행을 떠나보냈다. 폴이 노점상 할머니에게 다가갔다. 할머니는 울고 있었다.

자세히 보니 할머니는 앞을 못 보는 시각장애인이었다. 눈이 성한 사람이라면 바닥에 흩어진 과일이나 야채를 주우면 그만인데···, 눈이 어두운 할머니가 어떻게 그 과일과 야채를 주워 담을 수가 있겠는가?.

앉아서 울고 계신 할머니를 폴이 위로해 드리면서 땅바닥에 떨어진 야채와 과일을 하나씩 줍기 시작했다. 이때도 폴 곁에 수많은 사람들이 지나갔지만 다들 자기 갈 길이 바쁜 듯 아무도 노점상 시각장애인 할머니의 울음과, 폴의 행동에 관심도 갖지 않았다.

폴은 야채와 과일을 다 정돈한 후 지갑을 꺼내 돈을 할머니 손에 쥐어주면서 이렇게 말했다.

“할머니, 이 돈이면 손해 보신 것 충분히 해결될 것 같습니다.”

이에 그 할머니가 폴에게 이렇게 말했다. “Are you JESUS, 혹시 예수님 아닌가요?”

이 말을 듣고 당황한 폴이 “나는 절대 예수가 아닙니다” 하고 답했다. 그때 시각장애인 할머니가 그렇지 않을 거라면서 계속 이렇게 말하는 거였다.

“아까 노점 가판대가 넘어지고 과일과 야채가 땅에 떨어질 때 제가 도움을 요청할 분은 예수님 한 분밖에 없었습니다. 그래서 저는 예수님께 이렇게 기도했습니다. ‘JESUS, please come help me.’(예수님 나에게 다가오셔서 제발 나를 도와주세요) 그랬는데 기도의 응답처럼 당신이 와서 나를 도와주었어요. 그러니 ‘You must be JESUS’(당신은 예수님이 틀림없습니다)”

그날 저녁 폴은 비행기를 놓치는 바람에 집에 돌아가지 못하고 하룻밤 더 뉴욕 호텔에서 머물러야 했다. 그는 한밤 중 자신에게 이런 질문을 던졌다. “When was the last time someone confuesd you for JESUS.”(누군가가 당신을 예수님 같다고 착각하게 했을 때가 언제인가?)

코로나19로 마음이 심란하고 울적한 일상이다. 지금 이 순간 가슴에 손 얹고 나 자신에게 묻는다. 나는 정말 작은 예수가 맞나? 나의 삶의 방향과 목적은 올바른가?

마스크 문제로 길게 줄 서있는 모습을 보면서 이런 생각을 해본다.

‘이 세상을 아름답게 만드는 것은 돈도 나의 능력이나 나의 재능도 아니다. 우리 모두가 작은 예수가 될 때만이 가능하다.’

나의 필요보다 다른 사람의 필요를 먼저 생각하고 기꺼이 양보할 수 있다면, 만일 내가 예수님처럼 이웃을 사랑할 수만 있다면, 만일 내가 예수님처럼 나를 희생함으로 누군가를 세우고 살려줄 수만 있다면 분명 나 한 사람 때문에 이 세상은 더 아름다워질 것이 분명하다는 사실을···.

오늘 밤 가슴에 손을 얹고 물어보자. “When was the last time someone confuesd you for JESUS?”(누군가가 당신을 예수님 같다고 착각하게 했을 때가 언제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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