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약이 따로 없다 16] ‘산삼’···강력한 약효 지닌 인류 최고의 약초

산삼

[아시아엔=김제경 한농제약 대표] 인삼이라고 하면 천연적으로 산에서 자생하는 산삼, 산삼을 인공적으로 산에서 기르는 장뇌삼, 인삼밭에서 재배하는 재배삼을 통틀어서 이르는 말이다. 원래 자연산 산삼만을 삼이라고 했지만 후대에 내려오면서 삼을 재배하기 시작해 재배삼이 등장했다.

인삼의 학명은 ‘파낙스 진셍 씨 에이 메이어(Panax Ginseng C. A. Mayer)’라고 한다. ‘파낙스’는 그리스말로 모든 병을 고친다는 ‘만병통치약’의 뜻이고 ‘진생’ 은 인삼의 일본 발음을 따온 것이다.

‘C. A. 메이어’는 인삼의 학명을 붙인 소련 식물학자의 이름이다. 인삼은 초본식물로 가을이 되면 줄기나 잎은 말라 죽는다. 뿌리는 여러해살이다. 숙근성(宿根性)으로 땅 속에서 겨울을 난다.

뿌리는 희고 통통하며 사람의 몸통과 같은 모양을 하고 있다. 줄기는 보통 1개가 나는데 1개 이상 나는 경우도 있다. 줄기의 길이는 보통 30~80cm 정도이며 줄기 꼭대기에 5장의 잎이 손바닥 모양을 이루고 있다.

산삼의 역사와 유래

“산삼의 본 고장은 한국이다.” 단군 이후 조선 중기까지의 역사와 지리를 서술한 책인 <해동기략>(海東記略)은 정약용의 외손자가 지었다고 한다. 여기에는 조선을 ‘진단(震檀)’이라고 기록하고 있다. 진단은 동쪽의 단군이라는 뜻도 있지만 진짜 약, 즉 불로초란 뜻도 된다. 옛 사람들은 고려 인삼을 불로초라고 생각했고 진단이라고도 불렀다. 따라서 진단은 곧 ‘인삼의 나라’라는 뜻이다.

1827년 서유구가 지은 <임원십육지>(林園十六志)에 따르면 우리나라는 제주도를 제외한 전 국토에서 산삼이 많이 자생하고 있다고 기록되어 있다. 그러나 다른 나라에는 이런 종이 없다. 고려인삼은 우리나라에만 있는 최고의 선약이다. 그러니까 우리나라를 불로장생의 신선이 사는 곳으로 생각한 것이다.

진시황제가 천하를 통일한 후 세상을 평정하자 신선의 술법을 닦은 사람인 방사(方士)를 시켜 불로초를 구해 오라고 봉래산으로 보낸 일이 있다. 그가 바로 서복(徐福)이다. 한나라의 무제는 고구려에서 불로초를 구하려고 했다는 기록이 있다. 당나라 황제는 애첩 양귀비의 건강을 위하여 산삼을 구해 오라고 고려에 특사를 보냈다는 이야기도 있다.

이런 옛이야기들은 고려인삼의 진가가 이미 옛날에 입증된 것으로 볼 수 있는 좋은 사례다. 고려인삼이라고 하면 옛날에는 산삼을 가리켰다. 당시에는 재배삼이 없었기 때문에 삼이란 모두 산삼뿐이었다. 그러다 16세기에 풍기 군수를 지낸 주세붕이 밭에서 산삼을 재배하기 시작했다. 이것을 가삼(家蔘)이라 했는데 이것이 오늘날 인삼 재배의 시초가 되었다. 풍기는 오늘날에도 인삼 재배지로 유명하다.

비공개적으로 재배한 것은 이보다 훨씬 전이었다. <세종실록지리지>(世宗實錄地理志)에 의하면 당시에 산삼의 공출이 너무 극심해 전국적으로 천연 산삼이 점점 귀해지자 더 이상 공출 물량을 댈 수 없었다고 한다. 의무적으로 할당량을 채워야 했던 산지 농민들은 할 수 없이 깊은 산골에 몰래 산삼을 재배하기 시작했다. 농민들이 그렇게 기른 장뇌삼, 즉 산양산삼(山養山蔘, 사람이 산에서 기른 산삼)이 정삼(正蔘, 자연산 산삼)을 대신하게 되었다. 그러니까 재배 인삼의 역사는 500년 이상 된 셈이다.

고려인삼은 효능이 뛰어나기 때문에 재배삼도 중국 등에서 최고의 약초로 인정을 받았다. 그러나 시간이 갈수록 재배삼에 대한 평가가 떨어지기 시작했다. 인삼을 재배하면 땅의 기운이 엄청나게 떨어진다. 그래서 연작을 할 수 없다.

요즘에는 인삼밭이 여러 가지 공해물질로 오염되기도 한다. 최근에는 농약이 검출되었다는 보도도 있었다. 이런 문제로 재배삼의 품질은 갈수록 산삼보다 뒤떨어지고 있다.

반면 자연산은 아니지만 장뇌삼은 날로 수요가 증가하고 있다. 우리나라는 국토의 67%가 산지다. 만약에 산지를 자원화해 전국의 산 중 조건이 좋은 곳곳에 장뇌삼을 기르면 나라의 크나큰 재원이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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