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 권재일 한글학회 회장 “탈북자에게 ‘나중에 밥 한번 먹어요’ 하면, 연락 기다려”
“남한 간접화법, 북한은 직접화법 익숙···외국어 남용 소통 방해”
[아시아엔=편집국] 한국의 비약적인 경제 발전과 한류 문화의 세계적 확산에 힘입어 한국어를 배우는 사람이 크게 늘고 있다. 인도네시아의 소수민족인 찌아찌아족은 자기 언어인 ‘찌아찌아어’ 표기에 한글을 사용하고 있으며, 교육부 국립국제교육원이 주관하는 한국어능력시험(TOPIK) 응시생은 1997년 2000명에서 지난해 33만여명으로 급증했다. 유네스코는 매년 문맹 퇴치에 공이 큰 사람이나 단체에 ‘세종대왕 문해상(文解賞)’을 시상하고 있다.
일제 강점기에 사라질 위기에 처했던 한국어와 한글이 이처럼 세계 속의 한국어와 한글로 발전한 데에는 한글학회의 끊임없는 노력이 있었다. ‘말글이 살아야 민족이 살고, 민족이 살아야 국가가 산다’는 믿음 아래 1908년 조직된 한글학회는 올해로 111돌을 맞았다. 한글날을 열흘 앞둔 지난 9월 30일 서울 한글회관에서 권재일 한글학회 회장(서울대 언어72-76)을 만났다. 서울대 언어학과 명예교수인 권 회장은 국립국어원 원장을 지냈고, 2016년부터 한글학회를 이끌고 있다. 인터뷰는 이선민 조선일보 선임기자 겸 <서울대총동창신문> 논설위원이, 정리는 김남주 <서울대총동창신문> 편집장이 맡았다.
2019년 한글학회 창립 111돌
-국권이 흔들리던 한말(韓末)에 어문민족주의에 기반해 ‘국어연구학회’로 시작된 한글학회가 111돌을 맞이했습니다. 어떤 단체인지 간략하게 소개해 주시지요.
“말씀하신 대로 말과 글을 통한 민족주의를 토대로 주시경 선생과 제자들이 1908년 8월 31일 조직했습니다. 우리나라 학술단체로는 가장 오래됐지요. 우리말과 글을 연구하고 이를 바탕으로 교육, 보급해 발전시키는 것을 목적으로 합니다. 일제 강점기 때는 물론 광복 이후 지금까지 우리말과 글을 지키고 가꾸기 위한 다양한 활동을 펼쳐왔습니다. 많은 분들이 정부의 재정 지원을 받는 언어 정책기관으로 알고 있는데 순수 민간 학술단체입니다.”
-주요 업적으로는 ‘우리말 큰사전’ 편찬을 들 수 있겠지요. 그 외 중요한 활동을 꼽는다면 어떤 게 있나요.
“일제 강점기와 그 이후로 나눠 말씀드리지요. 일제 강점기에는 무엇보다 한글 교육이 중요했습니다. 교육을 위해서는 사전 편찬이 필수였고요. 주시경 선생 때부터 사전 편찬이 최대 과제였습니다. 1929년 조선어사전편찬회가 조직돼 본격적으로 준비에 들어갔는데 우선 맞춤법과 표준말을 정해야 했습니다. 1933년 한글맞춤법통일안을 제정했고, 각 지역의 방언을 조사해서 1936년 표준말을 정했습니다. 이어 사전 편찬을 본격적으로 준비하다 일제의 탄압으로 1942년 조선어학회 사건이 일어나 모진 고초를 겪었지요. 결국 사전 편찬은 광복 후 속개돼 1947년 1권이 나왔고 1957년까지 전 6권이 완간됐습니다.
광복 이후에는 말과 글에서 일제 잔재를 없애는 일에 힘을 쏟았습니다. 우리말 순화를 위해 한글만 쓰기 운동 등을 펼쳤죠. 요즘은 ‘외국어 마구 쓰기 이제 그만’이란 표어를 내걸고 영어 혼용과 남용을 막기 위한 운동을 벌이고 있습니다. 우리 언론과 교육·산업 현장에서 불필요한 외국어가 많이 쓰여 의사소통에 문제를 일으킨다고 보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학술 활동으로는 1년에 두 차례 국어학 학술대회를 개최하고, 학술지 ‘한글’을 네 차례 발행합니다. ‘한글 새소식’이라는 대중지도 만들고요.”
-한글의 우수성은 무엇입니까.
“첫 번째는 만든 사람, 만든 연대, 만든 원리가 분명한 세계 유일의 문자라는 점입니다. 두 번째는 대부분의 문자가 상형에서 발달한 데 비해 한글은 만든 과정이 매우 과학적입니다. 발음기관의 모습과 천지인(天地人)을 토대로 가획(加劃)과 조합을 통해 이뤄졌습니다. 세 번째는 처음부터 자음과 모음을 나눠 만든 문자라는 것입니다. 로마자 등 다른 문자들은 자음으로 출발해서 일부 덜 쓰이는 자음을 모음으로 바꿨습니다. 네 번째는 지금은 사라졌지만 소리의 높낮이를 나타내는 방점까지 생각했다는 것입니다. 무엇보다 한글의 위대성은 누구나 쉽게 배우고 편하게 사용할 수 있다는 점이 아닐까 싶습니다. 문자 생활의 민주화와 평등을 이룬 문자입니다.”
-최근 사회 환경의 급속한 변화와 휴대폰 사용의 일상화에 따라 신조어가 등장하고 줄임말 사용이 급격히 늘고 있는데요. 이런 현상은 어떻게 보십니까.
“청소년들이 인터넷이나 휴대전화에서 빠른 의사소통과 재미를 위해 쓰는 말은 큰 문제가 있다고 보지 않습니다. 언어는 시대 환경에 따라 계속 변화해 왔지요. 다만 다른 세대와의 대화나 격식을 갖춰야 할 글에도 그대로 쓰는 것은 문제라고 봅니다. 특히 방송언어와 자막에서 이를 흉내 내는 것은 우리말 파괴를 가속화한다는 점에서 문제가 심각합니다. 공공기관이나 언론이 우리말을 심각하게 파괴하는 행위에는 범칙금이라도 물려 경각심을 갖도록 해야 우리 말글을 지킬 수 있다고 믿습니다. 우리 말글을 지키는 가장 좋은 길은 우리 말글에 대해 모든 국민이 자긍심을 높이는 일이겠지요. 외국어보다 우리말이, 외래어보다 고유어가 더 쉽고 품격 있다는 사실을 국민들이 인식하고 일상에서 실천하면 간판, 상표, 상품 이름도 우리말을 쓰게 될 것입니다.”
-한류 바람을 타고 한국어에 대한 세계인의 관심도 높아지고 있습니다.
“한국어는 세계 7111개 언어 중 사용인구 수로 15번째 언어입니다. 한국의 경제 발전과 한류의 세계적 보급에 힘입어 1990년대 이후 한국어와 한글에 관심 갖는 사람이 급격히 늘었습니다. 한국어의 세계화를 위해 정부 여러 부처에서 세종학당 등 사업을 펼치고 있지요.
한글의 세계화, 즉 문자가 없는 소수민족에게 한글을 문자로 보급하는 일은 서울대 언어학과와 훈민정음학회를 중심으로 진행하고 있습니다. 인도네시아 찌아찌아족에게 한글을 전한 게 대표적이죠. 찌아찌아족에 한글을 전한 지 10년이 지났는데 우여곡절이 많았습니다. 사실 인도네시아 정부는 공식적으로 허락한다는 말은 하지 않았어요. 찌아찌아족을 관할하는 바우바우시 시장에게 교육부장관이 한 말은 ‘못 들은 것으로 하겠다’라고 합니다. 시장은 그 말을 ‘알아서 하고 문제가 생기면 바우바우시가 책임지라’는 말로 받아들였고, 시장의 재량으로 한글이 보급된 것이죠. 그 후 우여곡절이 있었지만 지금은 한글과 함께 한국어 교육까지 이뤄지고 있습니다.
한글을 문자로 보급할 때는 그 종족의 말이 한글로 표현 가능한지를 우선 따져봅니다. 또 그 나라의 정부가 승인해줘야 보급할 수 있습니다. 중국과 태국의 문자 없는 소수민족 가운데 한글이 도움이 될 경우가 있는데 정부가 허락하지 않더군요. 그 외 태평양 솔로몬 군도의 원주민 말과 남아메리카의 아이마라어 표기를 한글로 하려고 했지만 쉽지 않았습니다. 한글을 보급할 때는 우리가 연구 개발해서 주되 사용 여부는 그 국가와 민족에 맡기는 형태로 진행해야 한다는 교훈을 얻었습니다.”
-남북한의 언어 통합도 큰 과제인데요. 그와 관련해 추진되던 겨레말 큰사전 편찬 작업은 중단 상태죠.
“‘겨레말 큰사전’은 남한의 ‘표준어’와 북한의 ‘문화어’, 각 지역 방언, 중국과 중앙아시아 등에 흩어진 민족어를 아우르는 사전을 만들자는 목표 아래 2005년 시작됐는데 50% 정도 진행되다 2010년 천안함사건 이후 중단됐어요. 30만 어휘를 공동으로 선정했고 각 어휘의 뜻풀이의 절반 정도를 남겨둔 상태였습니다. 그 후 우리가 독자적으로 추진해 70% 정도까지 진행됐습니다. 하지만 동무, 어버이 등 남한과 북한에서 다른 의미를 지니는 어휘를 함께 논의해 통합하는 일이 남았고 띄어쓰기, 맞춤법, 사이시옷, 두음법칙 등의 원칙을 정해야 합니다. 현 정부 들어와 의지가 강하더라도 북측에 편찬지원금 지불이 불가능해 당장 재개하기 힘든 상황입니다.”
-남북한이 오랜 단절에도 언어의 동질성을 유지할 수 있었던 것은 남북한 정부의 어문정책을 수립한 인물이 조선어학회에서 함께 활동했었기에 가능했던 것 같습니다.
“정확한 지적입니다. 광복 전에 한글학회 전신인 조선어학회의 주도로 한글맞춤법과 표준말이 정해지지 않았다면 지금 남북한의 언어 차이는 심각했을 겁니다. 또 조선어학회의 핵심 인물이었던 최현배와 이극로가 각각 남한과 북한의 어문정책을 주도했죠. 한글학회의 큰 공헌입니다. 남북한은 언어소통에 별다른 문제가 없기 때문에 학계에서는 언어의 이질화라는 표현을 사용하지 않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남북한은 사용 어휘와 그 의미, 표현 등에서 차이를 보이기도 합니다. 언어 통합을 위한 과제는 무엇일까요.
“세 가지를 들 수 있습니다. 첫 번째는 불필요한 외국어나 외래어의 사용을 줄이는 것입니다. 두 번째는 상대방의 화법에 대한 이해가 필요합니다. 우리가 헤어질 때 가벼운 인사의 의미로 ‘나중에 밥 한번 먹어요’라고 말하면 탈북자들은 진짜 밥 먹자는 의미로 받아들이고 연락을 기다립니다.
그리고 우리는 간접화법이, 북한은 직접화법이 일반화돼 있습니다. 또 우리가 자주 사용하는 ‘감사합니다’, ‘죄송합니다’ 등의 표현은 북한에서 거의 쓰지 않아요. 서로 지나가다 툭 부딪쳤을 때 우리가 ‘죄송합니다’라고 말하면 북한 사람들은 ‘뭐 저런 일로 죄송하다고까지 하나’ 생각합니다. 세 번째는 전문용어의 통합입니다. 전문용어의 경우 우리는 영어, 북한은 러시아어의 영향을 많이 받았지요. 앞으로 다양한 분야에서 교류 규모가 커질 텐데 전문용어의 차이로 인한 문제에 대비해야 합니다.”
‘짜장면 원장’으로 불리기도
-국립국어원 원장 시절 ‘짜장면’을 표준어로 지정하셨지요.
“우리나라 어문정책을 책임지는 국립국어원 원장으로 한 일 가운데 세 가지가 특히 기억에 남습니다. 첫째는 어문규범과 실제 언어생활 사이의 괴리를 줄이고자 했습니다. ‘짜장면’과 ‘자장면’을 복수 표준어로 지정해서 ‘짜장면 원장’이라는 별명도 얻었습니다. 그 외 ‘먹거리, 손주, 뜨락, 내음, 나래’ 등을 새로 표준어로 지정했죠.
둘째는 사용자와 편찬자가 함께 만드는 ‘우리말샘’ 사전입니다. 일종의 위키피디아 방식 국어사전이죠. 국립국어원이 편찬자가 돼 50만개의 전문용어를 포함한 100만개의 단어를 제공하면 사전을 사용하는 사람들이 직접 뜻풀이를 편집하는 것이죠. ‘우리말샘’은 우리말을 살리는 한 방법이라고 생각합니다. 지금 한국어는 일상용어로 기능할 뿐 전문용어 등에서는 제 방향을 찾지 못하는데 ‘우리말샘’을 통해 전문용어를 국어화하는 것이 이런 상황을 해결할 방편이라 할 수 있습니다. 셋째는 이주노동자, 탈북민, 장애인 등 언어 소외자들에 관심을 기울여 그들의 언어 능력을 향상하는 정책을 펼친 것입니다.”
-언어학자로서 한글에 관심을 두게 된 동기가 궁금합니다.
“어릴 때부터 교장선생님이 꿈이었어요. 그러다가 중3 때 담임 선생님의 권유로 국어를 연구하고 가르치는 교수가 되기로 마음먹었습니다. 그 뒤 서울대 언어학과에 진학하여 그 꿈을 키웠는데 언어학 이론을 가르치신 허웅 선생님, 역사언어학과 알타이어학을 가르치신 김방한 선생님은 영원한 은사입니다. 서울대 학부 시절 국어운동학생회와 언어연구회에서 동아리 활동을 열심히 했습니다. 우리말 지키고 가꾸기를 목표로 하는 국어운동학생회 활동이 지금 한글학회 활동의 밑바탕이 된 게 아닐까 생각합니다.”
-한국어 외에 관심 있는 언어가 있다면.
“한국어 연구를 위해서 지리적이나 역사적으로 가까운 알타이 계통 언어들을 많이 연구했어요. 퉁구스어, 몽골어, 튀르크어 등이죠. 이들 언어와의 차이점이나 공통점을 통해 보면 한국어의 특징이 더 분명히 나타납니다. 역사적 뿌리가 다름에도 한국어의 문법 구조와 비슷한 남아메리카의 아이마라어도 연구 대상입니다.”
-요즘 최대 관심사는 무엇인가요.
“앞으로 제가 수행할 가장 큰 연구 과제는 ‘한국어 문법사’를 정리하는 일입니다. 또 한글학회 회장으로서는 ‘불필요한 외국어를 어떻게 하면 줄일 수 있을까’라는 고민이 머리를 떠나지 않습니다.”
권재일 한글학회 회장은 언어학자이자 국어정책가다. 1953년 경북 영주 출생으로 대구 계성고등학교를 졸업하고 서울대 언어학과에서 학·석·박사 학위를 취득했다. 1994년부터 서울대 인문대학 언어학과 교수로 후학을 양성하면서 언어연구소장, 인문학연구원장 등을 역임했다. 지난해 8월에 정년퇴임하고 명예교수로 있다. 그 동안 한국어 문법론, 문법사, 언어학사 등을 연구했고 한편으로는 남북한의 언어 통합에 관심을 가져 남북 공동사전인 겨레말큰사전 남측 편찬위원장을 맡았다. 2009년부터 3년간 제8대 국립국어원 원장으로 한국어 정책 수립과 집행을 담당했으며, 2016년부터는 우리말과 글을 가꾸고 지키는 한글학회 회장을 맡아 국어 연구와 실천 운동에 앞장서고 있다. <서울대총동창신문 499호 轉載>