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 남북정상회담장 ‘북한산’ 작가 민정기 화백
“익숙하면서도 낯설어서 김정은 위원장 관심 보인 듯”
[아시아엔=김남주 <서울대총동창신문> 편집장] 지난 4월 남북정상회담에서 화제가 됐던 그림 ‘북한산’의 작가 민정기(서울대 회화과 졸) 화백은 40년 이상 유화로 독특한 풍경세계를 그려왔다. 젊은 시절에는 오윤·임옥상 화백 등과 ‘현실과 발언’ 동인으로 활동하며 민중미술의 지평을 넓혔다는 평가를 받는다.
지난 6월 25일 경기 양평군 양서면 부용리 작업실에서 만난 민 화백을 만났다.
그는 9월 14일부터 내년 1월말까지 서울대장학빌딩에서 ‘아름다운 동행-평화, 꽃이 피다’를 주제로 열리는 ‘남북한 특별전시회’에 출품할 작품에 대해 입을 열었다. “임진각 풍경화를 전시하면 어떨까 싶어요. 지금은 육군 1사단이 주둔하고 있는 임진리 나루터나, 사라지고 없는 임진리 도솔원 풍경을 그린 거지요. 공간이 허락한다면 가로 5미터 크기의 임진리 나루터 전경도 보여주면 좋을 것 같습니다. 분단 풍경을 통해 우리의 현재를 생각해 보자는 것이지요.”
지난 4월 27일 남북정상회담 때 남북한은 물론 세계인의 주목을 받은 그의 ‘북한산’ 그림은 여전히 판문점 평화의 집에 걸려있다. 그곳에서 남북고위급회담이 열릴 때마다 살아 움직이는 듯한 ‘북한산’이 전파를 탄다. 김정은 위원장이 “무슨 기법으로 그렸냐”며 호기심을 나타냈던 그 그림은 10여년 전 ‘금강 전도’ 형식으로 그린 작품이다. 시점이 하나로 고정되는 서구 풍경화와 달리 과거와 현재가 겹치는 등 여러 시점에서 본 풍경을 한 화면에 결합하는 방식을 취했다.
그림에는 중문, 사모바위, 삼천사 마애불 등 이야깃거리가 곳곳에 숨어있다. 작품 주인은 국립현대미술관. 시집을 잘 간 셈이다.
“TV를 통해 보면서 가슴이 벅찼습니다. 김정은 위원장이 관심을 표한 이유는 익숙하면서도 낯설었기 때문이 아니었을까 싶어요. 북한에 큰 풍경화를 그리는 작가들이 많지요. 집체화도 있고요. 그런데 리얼리즘 화풍과는 거리가 멀고. 최종현 선생님 도움을 받아 여러 번 답사하며 그린 그림입니다. 겸재의 금강 전도는 미시령에서 보고 그리면서 미시령도 그림에 나오지요. 저는 북한산 응봉에서 보고 그렸어요. 그리는데 3개월 걸렸지만 답사까지 하면 1년은 걸린 작품이에요.”
민정기 화백의 풍경화는 고지도, 주역, 풍수지리, 설화를 근거로 전통 한국화 준법들을 서양의 유화물감과 화필로 재구성한 독창적인 필법을 쓴다. 지리학자인 최종현 전 한양대 교수의 도움을 받아 다양한 이야기를 풀어내고 사라진 역사의 흔적도 화폭에 복원했다.
사람과 자연, 역사를 조화시키는 인문학적 회화를 지향하는 그는 “주변을 아우르면서 총체적으로 사물을 봐야 풍경화의 진정한 의미를 알게 된다”며 “폭넓은 시각을 갖게 되면 모든 게 더욱 풍성해진다”고 했다.
북한산 그림이 화제를 모으며 그의 작품을 찾는 사람, 갤러리도 많다. 해외에 국내 작가를 많이 소개하는 국제갤러리는 내년 2월 민정기 화백 기획전을 준비하고 있다. 새 작품을 많이 선보였으면 하는 바람에 민 화백도 덩달아 바빠졌다고 했다.
그는 “서울대 회화과 동기인 아내가 큰 도움을 준다”고 했다. 아내 고영실씨는 민 화백의 비서를 자처하며 자료와 그림을 손수 챙긴다고 한다.
대북관계가 좋아져 관광이 가능해지면 북한의 산수도 화폭에 담을 계획이다. “북한을 자유롭게 왕래할 수 있는 날이 곧 오겠죠. 소련도 냉전시대에 이렇게 될 줄 생각이나 했습니까. 세월이 가면 많이 변할 겁니다. 그때 영변의 약산동대, 관서팔경 등 가서 보고 담고 싶어요. 비교적 원형이 잘 보존돼 있을 것 같아 기대가 큽니다.”
민 화백은 서울고 미술반 출신으로 한운성 서울대 명예교수, 故이우범 삽화가, 박찬경 화가 등과 선후배지간으로 서울대 미대 시절엔 연극반 활동에도 몰두했다고 한다. 이런 인연으로 2005년 여균동 감독의 <비단구두>, 2010년 이상우 감독의 <작은 연못>에 각각 실향민과 민씨 어른역으로 출연한 바 있다. SBS ‘시크릿 마더’에 출연해 열연을 펼친 배우 민성욱씨가 그의 차남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