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 “서울대병원 사용설명서 다시 써야”···김연수 원장 “중증 희귀질환자 치료 전념”
‘서울대병원 사용설명서’ 다시 써야···신장질환·이식면역학 전문가
[아시아엔=인터뷰 정성희 <동아일보> 미디어연구소장, 정리 <서울대총동창신문> 김남주 기자] “의학에 반도체 기술을 도입, 의술의 전자정밀화에 관심을 쏟겠다.”
지난 6월 12일 취임한 김연수 서울대병원장이 1982년 1월 28일자 중앙일보 인터뷰에서 한 말이다. 김연수 병원장은 당시 쌍둥이 동생 김범수(서울대 법학과 82학번) 법무법인 KL파트너스 대표변호사와 서울대에 합격해 신문 헤드라인을 장식했다.
기사는 ‘키 1m75cm, 몸무게 65kg, IQ 130의 준수한 쌍둥이’로 표현했다. 지난 6월 27일 서울대 연건캠퍼스 대한의원 건물의 병원장 집무실에서 만난 김연수 병원장은 백발이 있을 뿐 37년 전 준수한 용모는 그대로였다. 분초 단위로 일정을 소화하는 가운데 <서울대총동창신문> 인터뷰에 1시간을 할애했다.
그는 서울대병원의 공공성 확대와 한국 의료 환경의 변화를 위한 구체적인 대안을 제시하며 ‘준비된 병원장’의 면모를 보였다. 김 병원장은 서울대 의대 교육부학장과 교무부학장 등을 거쳐 서울대병원 진료부원장을 역임해 서울대병원 경영 전반에 대한 이해가 남다르다.
심층진료 도입과 지난 4월 문을 연 첨단외래센터 ‘대한외래’도 그의 진두지휘 아래 맺은 결실이다. 김연수 병원장이 그리는 서울대병원의 미래상에 대해 들어봤다.
-취임사에서 상생과 협력을 강조했다. 포부를 말씀해달라.
“서울대병원이 이른바 ‘빅5 병원’의 하나가 되는 것은 우리도, 국민도 원하지 않는다. 경쟁과 유인의 의료기관으로 가지 않겠다. 국가의료를 책임지는 중앙병원으로서 역할과 소명에 충실하겠다. 경쟁과 유인이 아닌 공유와 협력이 가야 할 방향이다. 修辭로 그치지 않겠다. 10여 개의 국립대학 부속병원을 비롯해 보훈병원 등 공공병원들과 협력을 강화하려고 한다. 역량이 부족한 지방 국립병원들로부터 치료가 어려운 환자를 받아 치료한 뒤 마무리를 지방 국립병원들이 맡도록 하는 방안을 추진하겠다.”
-서울대병원(본원)을 찾는 환자는 하루 몇 명인가.
“1만명의 환자가 오는데 65%는 환자들이 알아서 오고 15%는 의료기관에서 보내는 경우다. 나머지는 응급실 환자다. 서울대병원은 환자가 선택하는 병원이 아닌 의료기관이 선택하는 병원이 돼야 한다. 이 비율을 거꾸로 만드는 것이 목표고 중단기적으로는 1대1로 맞추겠다. 환자가 선택해서 찾으면 몇 년이고 기다려야 하지만 의료기관에서 보내는 중증 환자들은 1주일 내 받아 치료 후 다시 보내는 시스템을 만들겠다.”
-환자들의 반발이 적지 않을 것 같다.
“신장 전문의로서 경험을 말하자면 투석이나 이식수술은 일반화돼 있다. 굳이 우리 병원까지 오지 않아도 잘하는 2차, 3차 병원들이 많다. 서울대병원은 ‘4차 병원’이 돼야 한다. 여기가 아니면 할 수 없는 치료를 전문으로 해야 한다. 고위험 환자, 중증 희귀질환자 중심의 병원으로 가야 한다. 의료진에게도 복지부 분류체계에 얽매이지 말고 중증 희귀질환을 직접 정의해서 그 환자들 중심으로 진료하라고 주문한다. 인센티브를 책정할 때도 일반 환자를 진료한 것은 포함시키지 않고 중증 희귀질환 환자를 진료한 것을 포함시키는 등 공공적인 기여를 확실하게 넣도록 할 방침이다. 환자들의 저항과 관련해 소위 ‘서울대병원 사용설명서’를 다시 써야할 것이다. ‘서울대병원은 이런 병으로 가는 곳이 아니지. 정말 아껴 써야 돼. 왜냐하면 정말 나중에 힘들 때 내가 가야 할 병원이다.’ 이런 생각이 들도록 노력할 것이다.”
-공공 의료기관으로서 서울대병원의 컨셉이 확실해 인상적이다.
“공공 기여란 말이 추상적으로 들릴 수 있다. 그걸 구체화하기 위한 방안의 하나로 서산의료원과 MOU를 맺었다. 서산은 지역이 넓고 화력발전소와 공장도 많은데 의료환경이 낙후돼 있다. 이미 이곳에 5명의 교수를 보냈고 이들이 의사와 간호사를 교육하고 진료를 본다.”
-공공성을 강조하면 재정적으로 어렵지 않을까.
“사실이다. 그래서 정부 도움이 필요하다. 보건복지부와 건강보험공단 관계자들을 만나 ‘우리 이렇게 갈 테니 시범사업을 하자’고 요청하려고 한다. 정부에서도 문재인 케어 이후 대형병원 쏠림 현상이 커져 대책이 필요하다. 같은 돈이면 더 좋은 상급병원 가고 싶은 게 사람 마음 아니겠나. 지금 2차 지역병원이 어렵다고 한다. 1, 2, 3차 병원 간 선순환 구조가 이뤄져야 한다. 1차 의료기관이 서울대병원 등 상급병원에 의뢰하고 여기서 어느 정도 치료가 된 환자들을 2차 병원으로 보내 완쾌토록 하는 식이다. 이런 과정이 정착되도록 시범사업을 하자는 것이다. 지금 의료 과소비가 심한데 길게 보면 보건비용을 줄일 수 있다.”
-상당수 환자들이 과잉 진료, 검사에 대한 불만을 갖고 있다.
“죄송한 이야기지만 정말 본전을 뽑아야 하는 경우도 존재한다. 서울대병원에 와서 쓰는 돈이 100이라면 경쟁하는 병원들은 130 수준이다. 비난하는 게 아니라 그럴 수밖에 없는 구조다. 우리 병원의 하루 환자가 1만명이라고 했는데, 그게 말이 되나? 그런데도 방문하는 환자 숫자 갖고 경쟁하고 자랑한다. 그런 지표 다 없애라고 했다.”
-재정 상황이 궁금하다.
“장례식장, 식당 등 부대수입과 연구지원금 등으로 메우면 연간 적자는 100억원 정도다. 본원의 예산이 1조원 넘는다. 의료비로 9,000억원 들어오고 900억원 정도는 연구지원금과 식당 등 부대수입에서 충당한다. 적자이긴 하지만 ‘착한 적자’라고 말하고 싶다.”
-지난 4월 대한외래를 오픈했다. 첨단의료센터를 지향한다고 하는데 이름은 과거지향적인 느낌이다.
“처음에는 첨단외래센터였다. 그러나 첨단외래센터가 시설적인 측면을 얘기하는 것이라면 몇 년이 지나면 첨단이란 말을 쓸 수 없다. 환자와 의료진 사이에 인터페이스를 첨단으로 유지하는 것이 중요하다는 전제하에 대한민국을 대표하는 의료진이 대한민국을 대표하는 의료를 제공한다는 의미에서 대한외래라 지었다. 대한의원 건물(사적 248호)이 바로 옆에 있어서 그렇게 지은 거 아니냐는 말이 있는데 그렇지 않다.”
-공간적인 문제 때문이겠지만 지하병원이라는 발상 자체가 신선하다.
“현실적으로 지하 외에는 방법이 없었다. 주변에 고궁 등 문화재가 있어 건물을 높이 지을 수 없었다. 지하지만 확 트인 공간처럼 느껴지도록 여러 가지 아이디어를 도입했다. 도서관 느낌의 편안한 휴식공간을 많이 만들었다. 선큰가든(sunken garden)에는 커다란 LED벽을 만들어 다양한 예술작품을 상영한다. 지금은 폭포 영상이 나온다. 대한외래를 열면서 기존 병원의 시스템 하나를 바꾼 게 있다. 진료 대기 모니터에 환자 이름 대신 번호를 띄우도록 한 것이다. 은행에서 순번 기다리듯이 접수하면서 배정된 번호가 뜬다. 환자들이 전광판에 자신의 이름이 뜨는 것을 좋아하지 않는다. 익명화를 통해 환자들의 개인정보를 보호하기 위한 방안이다. 벤치마킹 하겠다는 병원들이 있다면 얼마든지 도와줄 생각이다.”
-서울대병원은 원격의료 도입 등 4차 산업혁명에 어떻게 대비하고 있나.
“개인적으로 원격의료 도입을 찬성한다. 병원 오가는 비용이 얼마나 큰가. 스마트 기기나 웨어러블 기기로 공공의 이익을 증진시킬 수 있도록 할 생각이다. 우리 병원에서는 두 가지 사업을 준비하고 있다. 원격진료가 정치적인 수사가 되어버려서 우리는 ‘원격 모니터링’이란 표현을 쓰는데, 복막투석·만성심부전·부정맥 환자 군에 한해 실질적인 원격 모니터링을 하려고 한다. 또 하나는 원격ICU(중환자실)다. 앞서 서산의료원과 업무협약을 맺고 의사들을 파견 보냈다고 했다. 이곳의 야간 중환자실을 우리가 커버할 계획이다. 중환자실은 돈도 많이 들고 의사가 상주해야 한다. 그렇게 할 수 있는 지방 의료원이 많지 않다.”
-어떻게 이곳에서 서산의 중환자를 보살필 수 있는가.
“중환자실에는 바이탈사인을 보여주는 다양한 모니터링 기기들이 있다. 통신설비를 통해 표시되는 수치를 서울대병원에서 볼 수 있도록 할 수 있다. 필요하면 영상도 가동한다. 미국 미네소타주 로체스터에 있는 메이요병원(Mayo clinic)은 플로리다주 올랜도까지 이런 방식으로 진료한다. 이런 시스템을 국립대학병원들이 함께 구축한다면 도서벽지에 사는 분들의 건강에 큰 도움을 줄 것이다.”
-‘3시간 대기, 3분 진료’라는 오명을 벗기 위해 심층진료를 시작했다. 어느 정도 정착되고 있는지 궁금하다.
“참여하는 의사도 늘고 환자 만족도도 높다. 환자 만족도보다 더 중요한 점은 검사가 줄었다는 점이다. 한 시간에 20명의 환자를 볼 때는 환자를 문진하기보다는 검사에 의존할 수밖에 없었다. X레이를 보고 판단하는 게 빠르다 보니 검사의존도가 높았다. 과거에는 환자를 진찰하고 진료하는 임무보다는 여러 가지 검사를 자동적으로 받게 하는 오퍼레이터 역할밖에 못 했다. 아울러 처방하는 약의 수도 줄었다. 우리 병원에 오는 환자들은 대개 여러 가지 약을 먹는다. 의사와 이야기하는 시간이 늘어나다보니까 어떤 약을 먹고 있는지도 자세히 알게 되고, 중복되는 성분의 약은 빼도록 권유한다. 더욱 고무적인 것은 두 명 중 한 명이 본인이 사는 동네 병원으로 돌아간다는 점이다. ‘이 정도면 치료를 잘 받았고 괜찮은 상황이니 여기까지 오지 않아도 된다’ 이런 대화가 가능해졌다. 병원 수익 측면에서는 손해일 수 있지만 실질적으로 건강보험 낭비를 막는 좋은 방법이다.”
-정치 바람을 막아주는 것도 병원장 일인데.
“백남기 농민 사건을 계기로 진료부원장을 맡게 됐다. 그때 의사직업윤리위원회를 만들었다. 의사의 개인적 소신과 집단의 규범이 다를 때 어떻게 해결할 것인지 판단하기 위함이다. 교수가 환자에게 반말하거나 하대하는 경우, 마약성 진통제를 많이 쓰는 문제, 의사의 부주의로 환자에게 위해가 갔을 때 어떻게 대응해야 할 것인지 등을 위원회에서 다뤘다. 지난해 국내병원 처음으로 인권센터도 만들었다. 곧 ‘직장 내 괴롭힘 금지법’이 시행될 텐데 나름대로 선제적 대응을 한 것 같다.”
-학창시절 에피소드가 있다면.
“1학년 때 문무대에서 집체교육을 받았다. 그때 김씨 성을 가진 친구 5명을 만나 지금까지 형제처럼 지내고 있다. ‘김씨네’로 불렸는데 주변에서 ‘왜 너네끼리만 노느냐’는 시기도 받았다. 추석, 설 명절 등 연휴 마지막 날에 만나고 미국에 있는 친구가 들어올 때 꼭 뭉친다. 가족들끼리도 친하다.”
-교수로서 학생들에게 강조하는 것은.
“자기 과가 아닌 친구들을 많이 사귀어라. 어떤 모임을 갈까 고민될 때 ‘네 소개를 해야 하는 곳에 가라. 익숙한 곳보다는 새로운 곳에 가라’고 조언한다. 개인적으로도 쌍둥이 동생 덕분에 친구들도 두 배이고 법대 등 인문계 친구들도 많다. 우리 입학 무렵 졸업정원제가 시행돼 의대생 정원이 2,000명에서 3,000명으로 늘었다. 이 덕에 다양한 배경을 가진 사람들이 들어올 수 있었고, 지금 한국의료가 세계적인 수준으로 발전할 수 있는 밑거름이 됐다고 본다. 지금 의사정원은 수요를 못 쫓아간다. 가만히 있어도 환자가 몰리다 보니 현실에 안주하는 의사가 늘고 있다. 이런 구조를 깨지 않으면 대한민국 의료계의 미래가 어둡다.”
-사람들에게 병원은 어떤 곳인가.
“병원은 사람이 살아가는 플랫폼이다. 의사들이 치료하는 곳이 아니라 내가 아플 때 치료받는 곳이다. 내 생활을 건강하게 하기 위한 플랫폼이 병원이다. 앞선 선배들이 서울대병원을 국내 최고 의료기관으로 키워주셨고 내 역할은 우리 병원을 국민에게 확실하게 오픈 하는 일이 돼야 할 것 같다.”
김연수 병원장은 신장질환과 이식면역학 전문가다. 1963년 서울 출생으로 서울 영동고를 졸업하고 모교 대학원에서 석·박사 학위를 취득했다. 1999년부터 모교 의대 교수로 후학을 양성하며 서울대학교병원 진료부원장, 서울의대 교무부학장 등을 역임했다. 신장질환, 이식면역에 관한 수백편의 연구논문을 발표했고 한국인으로는 처음으로 미국이식학회에서 ‘젊은연구자상’을 수상한 것을 비롯해 ‘대한신장학회 최우수학술상’ 및 ‘서울의대 학술상’ 등을 수상했다. 대한신장학회 대외협력이사, 대한이식학회 이사로 활동했고 현재 대한신장학회 이사장을 맡고 있다. 미국신장학회와 국제신장학회 정회원이며 동아시아 위원이다. <서울대총동창신문 제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