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형선의 산중한담] ‘동강할미꽃’과 tv 드라마 ‘눈이 부시게’

동강할미꽃

[아시아엔=이형선 전 원주mbc 기자] 영월 동강을 따라 펼쳐진 석회암벽, 그 거친 틈새로 연분홍 꽃송이가 얼굴을 내밀었다. 우리나라 동강 주변에서만 자란다는 ‘동강할미꽃’이다. 보통 할미꽃은 처음부터 꼬부라지지만 동강할미꽃은 하늘을 보고 핀다. 온몸에 잔털이 보송보송, 뽀얗게 분이 나는 어린 아이같기도 하다.

‘이렇게 예쁜 꽃을 왜 할미꽃이라고 했을까?’

지는 모습을 보니 비로소 이해가 됐다. 꽃이 피고 열흘쯤 지나면 예쁜 꽃잎은 가닥가닥 흩어져 백발이 된 채 허리가 푹 꺾인다. ‘아, 이래서 백두옹(白頭翁), 할미꽃이라고 하는구나’ 고운 자태가 다 사라지고 죽을 때가 되어서야 비로소 ‘할미꽃 그 이름’에 ‘이른다’고 해야 하나···.

할미꽃이라는 이름에 걸맞은 자기완성이자 본연의 모습이건만, 사람들은 이를 외면한 채 화려하고 예쁜 모습만 사진 속에 담으려 한다. 요즘 젊으나 늙으나 한살이라도 더 어려 보이려고 애쓰는 것도 서로의 이런 속성을 너무도 잘 알기 때문일 것이다. 언젠가부터 이런 심리를 이용해 젊음이 절대가치인 양, ‘동안’(童顔)이 무슨 훈장이라도 되는 듯 떠벌리는 마케팅이 성행하면서 이런 풍조가 점점 더 심해지고 있다. 그와 함께 노화에 대한 거부감을 넘어 노인에 대한 반감이 확산되고, 심지어 노인혐오 범죄도 늘어나는 추세다.

드라마 <눈이 부시게> 포스터

현재 우리나라의 65세 이상 고령인구는 707만명, 전체인구의 13.8%에 이르고 있다. 6년 뒤면 고령자가 전체의 20%, 1천만명에 이를 것이라고 한다. 하지만 노인에 대한 사회적 배려와 정책 뒷받침은 아직도 부족하기만 하다. 한 예로, 고령운전자의 운행 중 사고율을 줄이기 위해 운전면허증을 반납하도록 독려하면서도 정작 그들이 이용해야 하는 대중교통 서비스는 개선하지 않고 있다. 그렇다 보니 스스로 위험한 줄 알면서도 끝까지 운전대를 놓지 않으려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우리 어머니만 해도 그렇다. 노화 때문에 언젠가부터 조금만 긴장해도 요의(尿意)를 참기 힘들어진 70대 노모에겐 고속버스 탄다는 것 자체가 큰 공포다. 일본에 가서 고속버스마다 화장실이 딸려 있는 걸 보신 어머니는 “이러면 어딜 가도 아무 걱정이 없겠다”며 부러워 하셨다. 어디 이뿐이랴. 신호등의 초록불은 왜 그렇게 짧은지, 40대인 나도 조금만 걸음을 늦추면 금세 빨간불이 들어와 허겁지겁 뛰게 된다.

T.로스케(Roethke)의 시에서처럼 ‘납의 무게’를 입은 듯 힘겹게 걷던 노인들이 건널목 한복판에서 신호등이 바뀌어 쩔쩔 매는 것을 본 적이 한두 번이 아니다. 텔레비전은 또 어떤가? 고집불통의 성격을 노인의 모습으로 고정화하여 “노인은 원래 저래”란 부정적 인식을 심어주며 세대간 갈등을 부추기고 있다.

그가 누구이든 단지 늙었다는 이유만으로 사회 속에서 쓸모없는 취급을 받고 불편을 감내하며 살아야 한다면 이게 차별이 아니고 무엇이란 말인가?

미국의 유명한 패션잡지 에선 안티에이징(anti-aging)이란 표현을 쓰지 않기로 해 화제가 됐다. 노화라는 것은 자연스런 삶의 과정인데 안티에이징이란 단어가 무의식중에 노화를 우리가 싸워내야 하는 삶의 조건처럼 만들기 때문이라고 한다.

우리나라 국민들의 평균수명은 여성 88.5세, 남성 83.5세로, 의학의 급속한 발달속도로 볼 때 이제 곧 100세 시대가 멀지 않았다 수명이 70살일 때와 80살일 때, 100살일 때 삶에서 필요로 하는 조건들은 달라질 수밖에 없다. 하지만 무엇보다 가장 먼저 바꿔야 할 것은 ‘노화’를 부정적인 것으로만 바라보는 우리의 케케묵은 고정관념이 아닐까?

“내 삶은 때론 불행했고, 때론 행복했습니다···. 어느 하루 눈부시지 않은 날이 없었습니다···. 이 세상에 태어난 이상 당신은 이 모든 걸 누릴 자격이 있습니다.”

최근 방영된 tv드라마(눈이 부시게) 속 노인의 명대사처럼 우리에게 주어진 ‘눈이 부신 날’은 삶의 모든 순간을 의미있는 ‘살아가는 과정’으로 인정하고 받아들이는데서 시작하는 것이 아닐까? 노인 문제를 ‘그들’이 아닌 바로 나의 문제로 바라본다면 최소한 지금보다는 나아지지 않을까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