늦둥이 아들 초등학교 입학시킨 어느 엄마의 소망과 두려움?
[아시아엔=이형선 전 원주MBC 기자] 마흔 한살에 낳은 아이가 이번에 초등학교에 입학했다. ‘그 나이에 괜찮겠어?’ 하는 기대반 우려반의 시선 속에 고령출산에서 비롯될 수 있는 온갖 무시무시한 위험(임신중독, 저체중아, 기형아 출산 등)을 무릅쓰고 도전해 나도 이제 ‘학부모’가 됐다.
?입학식 날, 교실에서 올망졸망 아이들 틈에 제법 의젓하게 앉아 있는 모습을 보는데 나도 모르게 울컥했다. 10년 넘게 기자생활을 하다 몸도 마음도 다 무너지는 것 같아서 모든 걸 접고 시골로 들어갔다. 농사는 흉내도 못 내고 텃밭에 겨우 상추나 고추를 심어 먹고 살지만 그래도 하루하루가 새롭고 감사하다. 해와 달이 뜨고 지고, 별이 총총한 밤하늘을 맘껏 볼 수 있다는 것만으로도 큰 축복임을 느끼며 살고 있다.
그 속에서 아이와 함께 꽃을 심고, 노을을 보고, 별똥별을 셀 수 있다는 것은 또 얼마나 큰 행복인가? 시골에 사니 시골학교를 보내는 것이 당연한데도 주위사람들은 의아해한다. 심지어 같은 동네사람조차 걱정스레 묻는다. “학교는 어디로 보냈느냐?”고. “조만간 시내로 이사 가는 것 아니냐?”고.
그도 그럴 것이 우리 마을에서도 학군 좋은 곳으로 위장전입을 해 시내학교로 보내는 경우가 적지 않기 때문이다. 지금같은 무한경쟁시대에 많은 사람들 틈에서 경쟁하며 일찌감치 생존방식을 익히는 게 더 낫다고 생각하는 사람이 대부분이다. 요즘엔 대학입시에서 전 과목을 고루 잘 해야 하는 내신의 비중이 높아지면서 어려서부터 국영수는 물론 예체능, 이에 더해 창의력 학원까지 밤늦게까지 사교육 현장을 전전하는 아이들이 적지 않다. 한창 뛰놀아야 할 시기에 언젠가부터 함께 노는 법보다 경쟁하는 법을 먼저 배우는 세상이 돼 버렸다.
전에 한 방송사에서 한국의 이런 교육방식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는지 외국의 전문가에게 물었다. 그는 깜짝 놀라며 “그런 틀에 박힌 방식이야말로 가장 비창의적인 것”이라고 지적했다. 창의적인 사고를 하기 위해선 무엇보다 자유롭게 생각하고, 상상하고, 만들 수 있는, 그야말로 (멍 때리고 있는) 혼자만의 ‘심심한’ 시간이 필요하다. 하지만 요즘 아이들은 도무지 그럴 틈이 없다.
또 학부모는 학부모대로 그 많은 학원비를 대느라 새벽부터 밤늦게까지 아이랑 밥 한끼조차 제대로 먹지 못한 채 일에 매달리고 있다. 아기를 낳고 1년 만에 복직한 후배는 새벽에 집에서 나와 저녁 늦게 들어가다 보니 주말을 제외하곤 아이가 깨어있는 모습을 본 적이 거의 없다고 한다. 아이나 엄마 모두에게 끔찍한 일이지만 겨우 석달간의 출산휴가를 쓰고 복직한 다른 직장의 친구들은 그나마 1년이라도 육아휴직을 쓸 수 있는 게 어디냐며 부러워한다고 한다.
3살까지 부모와 건전한 애착관계가 형성되지 못하면 평생 분리불안에 시달릴 가능성이 높고, 이는 곧 여러 형태의 정신장애로 나타날 수 있다고 아동전문가들은? 말한다. 게임이나 휴대폰, 약물중독에 빠지는 청소년들이 점점 많아지는 것도 이와 무관하지 않다고 본다.
OECD 36개국 가운데 아동과 청소년의 불행지수가 1위를 차지하고 지난 10여년 동안 자살률 1위라는 오명을 벗지 못하고 있는 건 누구의 책임일까? 그 이면엔 끊임없이 경쟁체제를 만들어 ‘최고’만을 인정하고 대오에서 이탈하거나 탈락하면 영원한 패자로 만들어 버리는 사회분위기가 깔려 있음을 누구도 부인하지 못할 것이다.
언제까지 이런 지옥 속에서 살 것인가? 우리는 무엇을 위해 이렇게 살고 있는 것일까? 이것이 과연 최선일까? 사람답게 사람답게 사는 것은 과연 무엇일까?
경쟁을 위한 경쟁을 하고 있는 건 아닌지, 다함께 멈추고 다시 되짚어 봐야 한다.
부모가 아닌 아이 입장이 되어 “부모랑 따뜻한 밥 한끼 함께 먹는 것이 좋을지” 아니면 “비싼 학원을 보내주는 것이 좋을지” 스스로에게 물어보면 답은 금방 나온다. 온 가족이 오순도순 이야기 나누며 ‘따뜻한 밥 한끼’ 먹을 수 있는 사회, 그런 사회로 가는 게 그렇게 어려울까?
행복한 아이로 키우고 싶으면 가장 첫 번째로 지켜야 할 일이 ‘남들과 비교하지 않는 것’이라고 전문가들은 말한다. 말은 이렇게 하면서도 언제까지 흔들리지 않고 이 말을 지킬 수 있을지? 이제 막 학부모가 된 나는 설레면서도 솔직히 두렵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