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0년 전 내가 ‘지금의 나’를 보면 뭐라 말할까?
[아시아엔=이형선 <아시아엔> 칼럼니스트, <원주mbc> 전 기자] 하늘이 맑다. 걷기에 딱 좋은 날씨다. 마당을 나서면 곧바로 오솔길, 아침햇살이 숲길에 레이스처럼 늘어져 하늘거린다. 그 아래를 천천히 걸어도 좋으련만···. 애써 고개를 돌리고 서재로 발길을 돌린다. ‘이러다 좋은 때 다 놓치는 것 아니야?’ 잠시 멈칫했다가, ‘이러면 안 되지’ 다시 발길을 돌린다. 해야 할 과제가 산더미다.
더 늦기 전에 공부를 하겠다며 대학원에 들어가 아동심리치료학 석사과정을 밟고 있는데 ,학교는 한 학기 겨우 다니고 코로나19 때문에 1년 내내 온라인 수업중이다. 마음이 어떻게 움직이는지 ‘心理’를 배우는 것도 재미있고 주위에 어려움을 겪는 아이들에게 도움을 줄 수 있을 것 같아 아동심리치료학을 전공하게 됐다.
국문학과 출신이 전혀 다른 분야의 공부를 하다 보니 챙길 게 한두 가지가 아니다. 게다가 온라인 수업이다 보니 학사관리가 더 철저해져서 과목마다 매주 과제를 내주는 바람에 숨 돌릴 틈이 없다.
아, 코로나 이전 대학원 수업 등교할 때가 좋았는데···. 완행열차 타고 깜박 졸다보면 어느새 서울, 맨 먼저 들르는 곳이 청량리역사에 있는 대형서점이었다. 어떤 책이 잘 팔리는지, 어떤 책이 새로 나왔는지, 커피 마시며 아기자기한 문구들을 둘러보는 것도 큰 즐거움이었다. 남들은 쉰이 다 돼서 무슨 공부냐, 몇 시간씩 걸리는 그 먼 길을 어떻게 다니냐고 하지만, 내겐 오롯이 혼자 쓸 수 있는 그 시간이 정말 소중하고, 또 달기만하다.
일이고 사람이고 다 끊고 산속에 들어가 산지 10년, 아이만 키우며 종종거리다가 가방 메고 서울에 가면 대도시의 소음과 번잡함 속에서 오히려 나와 가까워지는 느낌이 들었다. 서울행 열차가 터널 속으로 들어갈 때 나는 대학에 합격해 부푼 꿈을 안고 서울로 향하던 갓 스무살 그 시절로 빨려 들어간다.
모든 것이 빠르고 정확하게 한치 빈틈도 없이 꽉 맞물려 돌아가는 듯 보였던 서울, 그 거대함에 압도되지 않으려고 잰걸음으로 일부러 더 빨리 걸었던 것 같다.
그때의 내가 지금의 나를 보면 무슨 생각을 할까? 밤늦게 다시 완행열차를 타고 꾸벅거리다 보면 원주역에 도착해 있다. 가로등 하나 없는 들길을 달려 집에 도착하면 차갑고 시린 밤하늘에 총총이 빛나는 별들, 저 위에서 내려다보이는 창백하고 푸른 점···. 지구 위에 서 있는 티끌보다도 작은 ‘나’를 생각하며 한참동안 서 있곤 했다.
‘나’라고 하는 것, 이것이 무엇인가? 요가와 참선을 하면서 늘 화두로 삼았던 질문은 여기서도(대학원) 나를 번뇌로 몰아간다.
‘최선’을 앞세워 ‘나’를 주장하고, 나와 생각이 다른 이들을 비판하고 내식대로 뜯어고치고자 했던 것이 결국은 타고난 성향과 살면서 생겨난 콤플렉스의 반영이라는 것을 배우면서 정말 그런가? 하는 생각에 혼란스럽기까지 하다. 그동안 내 입맛에 맞는 책만 찾아서 보고, 나랑 생각이 비슷한 사람들과만 어울리고···. 그렇게 해서 찾아낸 답을 ‘정답’이고 ‘최선’이라고 우겨댔던 것은 아닐까? 그렇다면 윤리와 도덕과 정의는 또 무엇이란 말인가?
이것 역시 하나의 ‘견해’에 불과하다는 것을 모르지 않으면서도 새로운 것을 알게 되는 순간 마치 그것이 전부인 양 빠져들게 된다. 우물 안에서 세상을 보다가 그 우물을 빠져나오는 순간, 더 큰 우물에 빠진다고 해야 할까?
심리치료를 공부하면서 깨달은 것이 있다면 이 세상에 나쁜 이는 없고 단지 아픈 이만 있을 뿐이라는 것이다. 고통 받는 한 사람의 내면을 자세히 들여다보면 그가 그렇게 할 수밖에 없는 마음의 작용을 보게 되고 그가 벗어나기 힘든 현실에 대해 연민의 마음을 가지게 된다. 그와 함께 내안에서 잊혀졌던 상처가 되살아나 ‘또다른 나’를 불러낸다.
“다 괜찮다”며 저편으로 던져 버렸던 아픈 기억이 “사실은··· 괜찮지 않다”며 다시 일어나 울먹인다. 나는 내안에서 숨죽이고 있던 상처투성이의 그 아이를 꼬옥 안아준다.
“그래 그동안 많이 힘들었겠구나···.” 내안의 상처를 치유해야 남의 상처를 치료할 수 있게 되는 것이다. 심리치료란 결국 ‘그 안에 내가 있고 내 안에 그가 있다는 깨달음’속에 ‘공감하고 소통하는’ 것이다. 보통 학식이 늘면 자신감이 늘 것 같지만 나는 오히려 그 반대인 것 같다. 컴퓨터세대인 20~30대 대학원 동기들은 순식간에 만드는 PPT(프리젠테이션) 자료를 며칠 동안 날밤을 새워서야 겨우 완성할 때나, 또 배우면 배울수록 모르는 것들이 늘어나고 해결되지 못한 질문들이 쌓이면서 점점 쪼그라드는 것 같다.
“정말 아는 게 아는 게 아니었구나···.” 어찌 보면 그동안 안다고 생각했던 것들은 ‘안다는 생각’ 그뿐이었던 것 같다.
공부(工夫)라는 말은 원래 한자인 주공부(做工夫)의 약자로 산스크리트어 ‘Ju Gong Fu’에서 나왔다고 한다. “불도(佛道)를 닦는다, 수행(修行)을 한다”는 뜻인데 불도를 닦는다는 것은 결국 ‘나’를 깨치기 위함 아닌가? 그렇다면 나는 감히 공부를 하고 있다고 말할 수 있을 것인가? ‘대학’(大學)의 길은 본래 갖고 태어난 밝은 덕을 밝히는데 있다(大學之道 在明明德)고 했는데···.
밤새 과제를 하고 책을 보느라 눈은 침침해져도 머리가 맑아지는 것 같아 좋다. 그렇게 밤이 깊어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