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형선의 산중한담] 법정스님 뵈러 불일암 가니 ‘봄은 가지마다 이미 와 있네’

홍매화

“어디야? 아직 멀었어?”

“…조금만 더 가면 돼요 이제 다 왔어요…”

순천 송광사 불일암 가는 길, 길가 벤치에 앉아 계시던 어머니가 온몸에 힘을 짜내듯 ‘끙’ 하고 일어서신다. 몇 걸음 걸으셨을까? 아픈 다리를 짚으며 쫓아오다 그새 또 어딘가 앉을 데를 찾고 계셨다. 아이는 아이대로 땀에 젖어 늘어지고, 아버지는 산길 초입에서 아예 걷기를 포기해버리셨다.

불일암 입구 대나무숲 길

그 좋다는 선암사의 홍매화를 보여드린다고 원주에서 순천까지 하루 종일 달려온 나는 ‘벌써부터 이러면 안 되는데’ 하는 생각에 답답해진다.

2월의 끝자락, 눈도 오지 않은 겨울이 지루하기만 하던 차에 매화가 폈다는 소식에 부랴부랴 짐을 쌌다. 2박 3일동안 순천을 거쳐 여수, 지리산, 남원까지 돌아볼 예정이었다. 그러려면 서둘러야 했다.

‘…빨리 여기(송광사)를 보고 선암사로 넘어가야 되는데…’

오늘 일정을 차질 없이 완수하려는 내 의지와는 달리 아이와 부모님의 발걸음은 점점 더 무거워졌고 지친 기색이 역력하다. 남도에 꽃구경을 가자고 하니 선뜻 따라 나섰는데, 막상 나와 보니 여든이 다 되신 부모님에게는 야트막한 산길조차 큰 도전인 듯했다.

불일암 입구

‘그나마 기력이 있을 때 하나라도 더 보여드려야 하는데…’ 지금도 저러신데 언제 또 여기에 올 수 있을까 싶어 마음이 더 급해진다.

“…조금만 가면 돼. 조금만 더…” 어머니와 아이가 혹시 중도에 주저앉지나 않을지 걱정돼 나 혼자 저만치 앞서가다 다시 돌아와 어르고 달래기를 수차례, 겨우 겨우 불일암에 다다를 수 있었다.

불일암

평생 무소유의 삶을 사셨던 법정스님이 계시던 오두막과 텃밭이 온전히 보전돼 있었고, 키 큰 나무 아래 스님의 유해도 모셔져 있었다. 평소 스님의 책은 죄다 찾아서 읽고, 스님이 돌아가신 후 방영된 다큐멘터리를 보면서 꼭 한번 가봐야지 하고 벼르던 곳인데도 눈에 잘 들어오지 않았다. 다만 머릿속은 ‘해지기 전에 선암사를 가야 할텐데…’ 하는 생각으로 꽉 차 있었다.

기념으로 사진 몇장 찍고 겨우 한숨 돌리고 계시는 엄마를 재촉해 돌아서려는데, 아이가 방명록에 무언가 열심히 끄적이는 게 보였다. 뭔가 해서 봤더니, 삐뚤빼뚤 “원주에서 왔어요. 무소유를 실천하겠습니다”라고 쓰여 있었다.

아이는 무소유를 이미 깨달은 듯했다

이제 겨우 8살짜리가 알고 하는 소린가 싶어 “너 무소유가 뭔지 아니?” 하고 물었다.

“욕심 안 부리는 거.”

“너 정말 그렇게 살 수 있겠어?”

“…사실은 욕심이 많아서 좀 힘들 것 같아.”

아이는 기어들어가는 소리로 말한다. 그러면서 빤히 쳐다본다.

“엄마는?”

“나? 나야 뭐…”

나는 말문이 막히고 말았다.

그제야 내 모습이 보였다. 내일 본다고 꽃이 지는 것도 아니고, 꼭 오늘 봐야한다고 누가 강요하는 것도 아닌데 계획대로 하겠다고 조바심 치고 저 혼자 뚝 떨어져 저만치 앞서가며 “빨리 빨리”를 외치며 다그친 게 ‘욕심’이 아니면 무엇이란 말인가?

송나라때 요연이라는 스님이 깨달음을 얻고 지었다는 오도송(悟道頌)이 떠올랐다.

하루 종일 봄(春)을 찾았으나, 봄(春)은 찾지 못하고, 이산, 저산 헤맨다고 짚신만 다 떨어졌네!

지쳐 돌아와 뜰 모퉁이, 매화나무를 보니, 봄(春)은 가지마다 이미 와 있네!

盡日尋春不見春, 芒鞋踏破籠頭雲

歸來隅過梅花下, 春在枝頭已十方

‘그래. 오늘 안 되면 내일 보면 되지 뭐.’

마음을 내려놓고 어머니의 보폭에 맞춰 아이랑 손을 잡고 천천히 산길을 내려왔다. 어둑어둑해지는 숲속에 대나무 잎새가 바람에 이는 소리가 참 듣기 좋았다. 다 내려 와서 주차장으로 가는데 일주문 옆 길가에 붉은 가지가 눈에 띄었다.

선암사 홍매화

‘홍매화’였다. 다시 한번 무릎을 쳤다. 다음날 선암사에 갔더니 다행인지 불행인지 ‘홍매화’는 아직 피지 않았다. 2박3일 동안 남도를 구석구석 돌았지만 마찬가지였다.

‘이 모든 건 우연이었을까?’ 생각하면서 원주로 돌아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