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4살 김용균이 남기고 떠난 것들···“바로·지금·여기·누구나’의 행복이 진짜 행복”

고 김용균씨 어머니

[아시아엔=이형선 <원주 MBC> 전 기자] “취업했다고 좋아했는데···. 이런 곳인 줄 알았더라면 절대 보내지 않았을 겁니다.”
한 겨울 창창하던 아들을 갈갈이 찢긴 채 주검으로 거둔 어머니는 마치 자신의 잘못이라도 되는 양 눈물을 흘리며 말했다. 컴컴한 작업장에서 자신을 구해줄 사람도 없이 손전등 하나에 의지한 채 밤새 컨베이어벨트를 살펴보다 결국 그 속으로 빨려 들어가 생을 마감한 만 24살 김용균씨, 바로 그의 어머니다.

장소만 다를 뿐 2년 전 서울 구의역에서도 비슷한 사고가 있었다. 지하철 스크린도어를 수리하던 19살 앳된 청년이 혼자서 일하다 열차에 치여 숨졌다. “최소한 2인 1조의 작업규칙만 지켰더라도 소중한 생명은 구할 수 있었을 것”이라며 온나라가 들끓었지만 그때뿐이었다. 지난해에는 현장실습을 나갔던 직업계 고등학생이 제품 적재기 벨트에 끼어 숨지는 사고도 있었다. 만 15살에서 29살까지 우리나라 청년 근로자들의 산업재해 건수는 해마다 늘어 2017년 말 8762명에 이르렀다. 불과 2년 만에 394명이나 증가한 것이다.

일자리가 없다 보니 위험하고 부당한 줄 알면서도 묵묵히 참고 일할 수밖에 없는 청년들에게 우리사회는 한번 빠지면 영원히 헤어날 수 없는 무간지옥이 되고 있다. 갈수록 노동인구가 급감하고 있다며 막대한 예산을 들여 출산대책을 쏟아내면서도 막상 다 자란 청년들에게는 안심하고 일할 수 있는 환경조차 지켜주지 못하고 있다.

돈과 권력의 비호 아래 각종 불법을 일삼은 한국미래기술 양진호 회장 사건은 청년들이 처한 심리적 현실을 단적으로 보여준다. 말도 안 되는 이유로 폭행을 당하고도 보복이 두려워 신고를 못한 피해자는 물론이고, 바로 옆에서 동료가 폭행을 당하는데도 마치 아무 일 없는 듯 제 할 일을 하고 있는 20, 30대 직원들의 모습은 충격적이었다.
다른 곳도 아닌 사무실에서 회장이 직원을 무자비하게 패는데도, 술자리에서 재미삼아 노리개를 삼는데도, 살아있는 생명을 도검으로 잔인하게 살육하는 데도 그냥 바라보고만 있었다.

“어차피 그 판이 그 판인데···. IT업계를 떠나지 않는 한 참는 수밖에 없다고 하라면 하라는 대로, 시키면 시키는 대로 복종할 수밖에 없었다”고 직원들은 뒤늦게 고백했다. 그들의 말을 들으며 “오죽했으면···” 싶다 가도, “지금이 어떤 시대인데, 잘못 하면 대통령도 당장 내려오게 만들고 판을 갈아엎는 시대가 아닌가?” 하면서 배울만큼 배우고, 알만큼 알만한 이들이 그 많은 악행과 수모를 견디며 노예처럼 살아온 걸 보며 속이 터졌던 것은 비단 나만의 일이었을까?

사회정의보다는 돈과 권력이 좌지우지 하는 반칙사회에서 “나 하나 참으면 그만”이라는 뿌리 깊은 패배의식과 좌절감이 감히 고발조차 못하도록 젊은 그들의 내면을 꽁꽁 묶어놓고 있었다.

일자리를 구하지 못해 연애와 결혼, 출산을 포기한 ‘3포 세대’에서 인간관계와 집까지 포기한 ‘5포세대’, 그러다 꿈과 희망까지 포기한 ‘7포세대’를 넘어 이젠 모든 것을 포기한 ‘N포세대’라고 말하는 청년들이 늘고 있다.

“낙망은 청년의 죽음이요, 청년의 죽음은 민족의 죽음이다. 나라를 잃는 것보다 더 무서운 것은 기백을 잃는 것이다.” 도산 안창호 선생은 이렇게 말씀하셨다.

어둠은 그 자체로 존재하지 않는다. 빛이 존재하지 않기 때문에 그것은 어둠으로 남을 수밖에 없다. 다들 살기 어렵다는 이유로 우리 사회가 너무 쉽게 원칙을 무시하고 청년들을 열악한 일터로 내몰면서 그들의 꿈은 물론 삶까지 짓밟고 있는 것은 아닌지 묻고 있다. 그리고 무엇보다 청년들이 자존심을 지키며, 안전하게 일할 수 있는 양질의 일자리를 많이 만들고 법과 제도를 정비해 제대로 가동되고 있는지 철저하게 감시해야 한다.

또 공정한 방식을 통해 비정규직이 정규직이 될 수 있는 활로를 터주고, 직업전환을 통해 더 나은 삶으로 나아갈 수 있도록 재교육과 재취업 기회를 확대해야 한다. 하나 더, 젊은이들이 컵라면 대신 최소한 밥으로 끼니를 때울 수 있게 곳곳에 밥차나 푸드뱅크를 설치해 지원해줬으면 좋겠다. 요즘 밥값이 너무 올라 돈을 벌면서도 점심을 제대로 먹지 못하는 청년들이 적지 않다.

“나의 행복이 모두의 행복이 되기를 바랍니다.” 지난 성탄절에 문재인 대통령이 보낸 메시지다. 가슴에 간직하고 싶을 만큼 아름다운 말이다. 서로가 서로를 아끼고 보살피는 세상, 사람 귀한 줄 아는 세상, 그 속에 사는 것이 행복일 것이다. 추운 겨울, 광장에 모여 “죽지 않고 일하게 해달라”고 외치는 청년들에게 ‘행복’은 무엇일까? 아무리 애를 써도 닿을 수 없는 저 너머에 있는 무지개 같은 것이 아닐까? “바로. 지금. 여기”에 존재하지 않는 행복은 허망한 남의 꿈에 불과한 것을.

“이런 곳인 줄 알았다면 절대 보내지 않았을 것입니다.”
새해엔 적어도 자식의 일터를 돌아보며 이렇게 탄식하는 부모와 그의 말을 들으며 함께 눈물 흘리는 일이 없었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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