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루히토 일왕 첫 메시지 “세계평화·국민통합”···즉위식엔 전범 따라 왕비도 참석 못해
1일 0시 직전 ‘레이와 카운트다운’···즉위 첫날 혼인신고 밀려들어
[아시아엔=이정철 기자] 1일 일본에 레이와(令和) 시대가 개막했다. 나루히토(德仁) 일왕이 오전 10시 30분 도쿄의 고쿄(皇居·일 왕궁) 마쓰노마(松の間·소나무실) 왼쪽 문으로 입장했다. ‘검과 국새 등을 계승하는 의식’이 시작된 것이다.
왕위 계승 1순위인 동생 후미히토(文仁)와 휠체어를 탄 나루히토의 삼촌 히타치노미야(常陸宮)가 차례로 들어왔다. 행사장에는 아베 신조(安倍晋三) 총리와 각료 전원이 미리 들어와 엄숙한 표정으로 서 있었다.
<조선일보> 이하원 도쿄특파원은 이날 상황을 이렇게 썼다.
나루히토가 흰색 천이 덮인 높이 50㎝의 단 위에 올라가 서자, 행사장 오른쪽 문으로 일본 왕실을 상징하는 삼종신기(三種神器) 중 청동검과 곡옥(曲玉)을 든 시종 두 명이 들어왔다. 시종들은 90도로 고개를 숙이며 나루히토의 앞에 놓인 두 개의 탁자에 조심스럽게 두 보물을 놓았다. 이어서 다른 시종 두 명이 들어와 청동검과 곡옥 사이에 국새(國璽)와 어새(御璽·일왕의 인장)를 올려놓았다. 나루히토가 일본의 126대 일왕으로 즉위하는 순간이었다. 즉위식은 일 왕실 전범에 따라 남성들만 참석한 채 약 7분간 진행됐다. 나루히토의 부인 마사코(雅子) 왕비도 참석하지 않았다.
11시 10분. 같은 장소에서 국민에게 소감을 말하는 의식이 열렸다. 이번엔 나루히토 일왕이 오른쪽 문에서 들어왔다. 그 뒤로 흰색 드레스를 입은 마사코 왕비와 왕족 13명이 따라 들어왔다.
단에 오른 나루히토는 시종장이 전해 준 종이를 펴서 국왕으로서 첫 메시지를 발신했다. “일본 헌법 및 전범(典範) 특례법이 정하는 바에 따라 왕위를 계승했습니다. 이 몸에 짊어진 중책을 생각하면 숙연한 생각이 듭니다.” 그리고 아버지 아키히토가 30년 이상 국민과 고락을 함께하고 맡은 일에 진지했다며 경의를 표시했다. 이어 나루히토는 “항상 국민을 생각하고 국민에게 다가서면서 헌법에 따라 일본 및 일본 국민 통합의 상징으로서의 책무를 다할 것을 다짐한다”며 “국민의 행복과 국가의 발전, 그리고 세계의 평화를 간절히 희망한다”고 말했다.
그가 국민 통합을 하겠다고 맹세할 때 발음이 커졌으며, 세계평화를 언급할 때는 정면을 응시했다. 나루히토의 첫 메시지는 6개의 긴 문장으로, 낭독에는 모두 1분 50초가 걸렸다. 이어서 아베 신조 총리가 대열에서 1m 앞으로 나와 참석자들과 함께 나루히토 일왕에게 고개를 숙여 인사했다.
아베 총리는 “(오늘의 행사는) 격동하는 국제 정세 속에서 평화롭고, 희망 넘치고, 자부심 있는 일본의 빛나는 미래를 만들어나가겠다는 결의”라고 의미를 부여했다.
나루히토 일왕은 이날 오후 자신을 보좌할 시종장 등을 임명하는 것으로 첫날 공식 일정을 마무리했다.
일본 열도는 새 일왕 즉위와 레이와 시대 개막을 축하하는 분위기로 전국이 들썩거렸다. 1일 0시가 되자 일본 각지에서 일제히 환호성이 울려 퍼졌다. 도쿄 시부야에서는 빗속에서도 휴대폰을 들고 ‘5, 4, 3, 2, 1’을 외치는 ‘레이와 카운트다운’이 실시됐다.
같은 시각, 곳곳에서 운행된 레이와 특별열차에서는 ‘레이와 건배’를 하는 일본인들의 모습이 TV 화면을 탔다. 관청에는 레이와 첫날 혼인신고를 하려는 사람들이 몰려들었다. 도쿄 스미다구청 등에서는 이날 0시 특별히 혼인신고를 받았는데, 50쌍이 몰려들었다. 일본의 모든 TV 방송은 “새로운 시대가 밝았다”며 일왕 취임 생방송을 진행했으며, 마이니치신문 등이 호외를 발행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