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식농부 박영옥의 돈 생각 19] 주식투자는 최고의 ‘마음공부’다
[아시아엔=박영옥 스마트인컴 대표이사, <주식, 투자자의 눈으로 세상을 보다> <주식, 농부처럼 투자하라> 저자] 프로야구 시즌이 왔다.
우리는 잘 던지던 투수가 수비수의 실책 하나에 무너지는 장면을 종종 본다. 투수는 수비수의 어이없는 실책을 처음 겪는 게 아닌데도 마운드를 내려와야 하는 경우가 많다. 어떤 일을 반복적으로 겪는다고 해서 저절로 적응력이 생기는 것은 아니다.
물이 가득 담긴 그릇을 들고 걸어가면 아무리 조심해도 물이 흘러넘친다. 그러나 같은 양의 물을 그보다 10배쯤 큰 그릇에 담으면 약간의 주의를 기울이는 것만으로 단 한 방울도 흘리지 않고 옮길 수 있다.
물은 우리에게 닥치는 ‘일’이고 그릇은 ‘마음’이다. 마음 그릇이 작은 사람은 사소한 일에도 이성을 잃지만 그릇이 큰 사람은 어지간히 큰일을 당해도 차분하게 대처한다.
머지않은 미래에 일어날 일을 하나 가정해보자. 경제 관련 서적을 열심히 읽은 당신은 주식시장에 대한 상당한 식견을 갖게 된다. 공부를 계속하면서 주식투자도 쉬지 않는다. 매년 꾸준히 수익을 내며 매월 월급의 일부를 주식 계좌에 넣어 투자 원금을 늘려나간다. 수익과 배당금은 찾아 쓰지 않고 고스란히 재투자한다. 주식 계좌를 개설할 때 입금한 돈이 100만원이었는데 인내심을 가지고 노력한 결과 투자금은 3억원으로 불어난다. 원금의 몇 배가 되는 금액이다. 그 즈음 당신의 마음속에 서는 무슨 일이 일어날까?
마음을 다스리지 못한다면, 회사에 출근해서도 온종일 주가 창에서 눈을 떼지 못하고 퇴근 해서도 쉽사리 잠들지 못할 것이다. 투자금이 100만원일 때는 투자한 종목이 상한가나 하한가에 가면 15만원이라는 돈이 생기거나 없어진다. 수익이 나면 기분은 좋지만 마음을 뺏기지는 않을 만한 액수다. 손실이 나면 씁쓸하기는 해도 크게 심호흡 한 번 하면 잊어버릴 수 있는 돈이다.
그런데 투자금이 3억원이라면? 상한가나 하한가를 가정할 것도 없다. 수익률이 1%만 움직여도 300만원이라는 돈이 왔다 갔다 한다. 3%만 빠져도 하루에 900만원이 사라진다. 별다른 뉴스가 없어도 3%쯤은 오르내리는 것이 주가다. 300만원의 월급을 받는 직장인이라면 3개월치 월급이 날아가는 것이다. 그래도 평정심을 유지할 수 있겠는가?
‘수급에 따라 몇 %의 등락은 얼마든지 있을 수 있어. 기업의 가치가 하락한 것은 아니니까 괜찮아.’ 이렇게 생각하면서 업무에 집중할 수 있을지 자문해보라. 업무에 집중을 못 해도 좋고 잠을 못 자도 좋으니까 주식계좌에 3억원이 있었으면 좋겠다고 말할 사람도 있겠다.
장담하건대 이런 사람이라면 머지않아 3억원이 줄고 줄어 3000만원이 되고 마침내 제로가 될 것이다. 그나마 운이 받쳐주지 않으면 갚아야 할 빚만 남을 수도 있다.
30억원이든 300억원이든 결과는 달라지지 않는다. 설마 그럴까 싶겠지만, 설마가 잡은 사람이 주식시장에는 넘쳐난다. 개인적으로 알고 있는 사람도 여럿 있다. 이런 경우를 주식시장에 있는 사람들은 “떠내려갔다”고 표현한다. 나무토막은 강물에 떠내려가지만 투자자는 스스로의 마음에 떠내려간다.
갑자기 3억원에서 시작하는 것이 아니라 투자금이 점진적으로 늘어날 테니 충분히 연습한 상태일 것이라고 생각할 수도 있다. 그러나 이는 사실과 다르다. 가장 최근에 화가 났던 일을 떠올려보라. 화가 나면 누구보다 본인이 제일 괴롭다. 정말 화가 나면 짧은 순간이나마 이성을 잃어버린다. 극단적으로 화가 폭발하는 것이 아니라 슬며시 치밀어 오르는 경우라 해도 판단력이 흐려지는 것은 마찬가지다.
그런데 가장 최근에 화가 났던 그 일은 난생 처음 겪는 일이었는가? 디테일은 다르지만 비슷한 유형의 일을 이전에도 경험했을 것이다. 감정적인 문제인 경우 반복될수록 더 강렬한 반응이 나타나기도 한다. 어르신들이 하는 말대로 ‘마음보’를 고쳐먹지 않으면 평생 비슷한 일을 만날 때마다 화가 나는 고통을 겪어야 한다.
자만심과 조급증은 주식투자의 적이다. 대범한 성격인 데다 약간의 과시욕까지 있는 사람이라면 투자금을 3억원까지 불린 뒤에는 친구나 직장 동료의 주식투자 멘토를 자처하게 될 공산이 크다. 아직 미숙한 지인들은 그와 같은 종목에 투자하려 할 것이고, 좋아 보이는 종목이 있으면 그의 의견을 물어볼 것이다. 자신감이 넘쳐 자만심으로 넘어가기 딱 좋은 환경이다. 게다가 3억원이면 한 달에 2%의 수익만 내도 600만원이 생긴다. 어지간한 월급쟁이보다 낫다. 솔깃하지 않은가?
이쯤 되면 슬슬 이런 생각이 들 것이다. ‘한달 동안 부려먹고 월급은 쥐꼬리만큼 주는 사장, 능력도 없으면서 호통만 치는 상사, 인간적으로 도저히 정이 안 가는 동료, 사람 취급 안 해주는 거래처···. 이참에 이 꼴 저 꼴 안 보고, 이 사람 저 사람 눈치 안 보는 전업투자자로 나서볼까?’
나는 당당히 자신있게 그런 이들에게 말한다. “본업에 충실하시오!” 내 주위에도 잘 다니던 직장 때려치우고 전업투자자로 나선 사람들이 꽤 있다. 심지어 돈 잘 벌던 의사가 전업투자자가 된 사례도 있다. 그러나 대부분 결과가 좋지 못했다. 이유는 간단하다. 직장에서 일하는 것보다 쉽게 돈을 벌 수 있다는 생각으로 주식투자를 시작하기 때문이다.
“돈을 쉽게, 많이 벌 수 있어서 이 직업을 선택했어요”라고 말하는 직장인은 없다. 있다고 해도 이런 마인드로 일하는 사람은 회사에서 오래 살아남지 못한다. ‘투자자’ 역시 쉽게 돈을 벌 수 있는 직업은 아니다.
‘3억원이면 한 달에 2%의 수익만 내도 600만원이 생긴다’라는 태도를 가지고 있다면 이미 실패한 것이나 다름없다.
그래도 굳이 전업투자를 하겠다면 조금만 시간을 늦추라고 말하고 싶다. 최소한 500개 기업을 탐방해보고 ‘나는 전쟁이 나도 투자를 할 것이다’라는 생각이 들면 그때 전업투자를 하면 된다.
앞에서 ‘3억원’을 가정하고 이야기했지만 그럴 것도 없다. 한국거래소에 따르면 2012년 개인 투자자들의 평균 주식 보유액은 약 6100만원이다. 5억원 이상 보유한 개인 투자자는 1%에 불과하며 1000만원 미만의 계좌가 전체 개인의 60%에 이른다.
이들 중 다수가 “제발 긴 안목으로 투자하고, 일과시간에는 업무에 집중하라”는 조언을 계속하게 만드는 사람들이다. 이들은 운이 좋아서, 혹은 여타의 방법으로 3억원이라는 투자금을 모은다 해도 오래 유지하지는 못할 것이다.
지금 주가의 등락에 마음을 뺏긴다면 투자금이 커져도 100% 같은 지경에 처하게 될 것이다. 지금은 담대하더라도 액수가 커지면 달라질 수도 있다. 많은 투자자들이 좋은 종목을 고르는 눈이 부족해서 주식투자에 성공하지 못한다고 생각한다. 틀린 말은 아니지만 종목 고르는 능력을 키우는 것보다 담대한 마음을 가지는 것이 먼저다. 물에 빠진 다음에 수영을 배울 수 없고, 불이 난 다음에 소화기를 사러 갈 수 없는 법이다.
내 계좌는 수익률이 1% 하락하면 15억원이 줄어든다. 연봉 1억원인 사람의 15년치 월급이다. 나는 수양이 깊은 스님도 아니면서 계좌에서 ‘15억쯤’ 생기거나 사라져도 마음이 흔들리지 않는다. 때로는 수십억원의 손실을 보고 손절매할 때도 있다. 돈이 많으니까 그럴 수 있는 것 아니냐고 하겠지만 오히려 반대다. 내 마음을 내가 잡고 있을 수 있어서 지금의 부를 이뤘다고 생각한다.
주인이 될 기업을 고르고, 그 기업과 동행하면서 성과를 공유하는 모든 투자행위는 투자자의 판단에 기초한다. 즉 △세계경제 △국내경기 △기업 내부 상황 △경쟁기업 상황 등 투자한 기업과 그를 둘러싼 환경은 언제나 변화한다. 이럴 때 투자자의 마음이 봄바람에 살랑거리는 나뭇잎 같아서는 안 된다. 마치 궁수처럼 두 다리로 버티고 서서 과녁을 보고 활을 쏠 수 있어야 한다.
증권사에서 제공하는 각종 정보의 말미에는 “모든 투자의 책임은 투자자 본인에게 있다”라는 경고문이 붙는다. 나중에 문제가 생겼을 때 책임을 피하기 위한 조치지만 투자자 입장에서도 곱씹어볼 만한 말이다. 속으로 이 문장을 계속 되뇌어보라. ‘투자자 본인’이라는 말이 점점 크게 느껴지지 않는가. 모든 책임을 지고 있는 ‘본인’의 마음이 살랑거리고 있다면 그 판단의 신뢰성은 제로다. 투자 성공률 역시 제로로 떨어질 것임은 물론이다.
눈물이 나네요. 오늘 털린사람으로써 와닿는 얘기입니다
정말 주옥같은 글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