투기를 권하는 사회와 가상화폐 논란 “투자일까 아니면 투기일까?”
[아시아엔=박현찬 스토리로직대표, 작가 ‘경청’ ‘연암에게 글쓰기를 배우다’] 지금으로부터 400여 년 전, 1637년 2월의 어느 날 얀 반 고엔(Jan van Goyen)이라는 네덜란드의 화가는 일생일대의 비극을 맞이한다. 주변에서 떼돈을 벌었다는 소문이 아무리 무성해도 오직 풍경화에만 몰두하던 그가 마침내 자신의 전 재산을 튤립에 투자했던 것이다. 튤립 한 뿌리 가격이 자그마치 지금 돈으로 1억 6천만 원 이상 계속 올라가고 있으니 더 이상은 견딜 수가 없었던 듯하다. 그런데 공교롭게도 그가 투자한 바로 다음날 튤립 시장의 거래가 일시 중단되면서 투자자들의 투매가 시작되었다. 무한히 확장할 것만 같았던 튤립 거래는 이로써 광풍의 막을 내리게 되고, 단 한 번의 잘못된 투자로 그의 인생도 종을 치고 말았다.
서서히 불어오던 가상화폐 바람이 지난 해 하반기부터 열풍으로 바뀌더니 정부의 규제가 본격화되면서 사회 전체의 이슈가 되어버렸다. 가격의 변동 폭은 더욱 심해지고 수백 억 시세차익의 성공사례부터 학비 탕진의 가슴 아픈 사연까지 연일 매체를 장식한다. 가상화폐 투자에 별 관심이 없던 나 같은 사람은 일단 가격의 급등세에 놀라고 투자자들의 숫자에 놀라고 거래 규모에 다시 한 번 놀란다.
뒤늦게나마 가상화폐 투자에 나서지 않은 것을 다행으로 여기며 안도하지만, 아들놈 스마트폰에 가상화폐 거래앱이 깔린 것을 보고는 묻지도 못하고 전전긍긍한다.
가상화폐 논란을 겪으면서 우리는 투자와 투기에 대해서 자문을 하게 된다. 본인이 번 것은 투자고 남들이 떼돈을 벌었다면 투기 혹은 도박이라고 쉽게 이야기하지만, 사실 내가 하는 거래 행위를 합리적인 투자인지 아니면 무리한 투기인지를 냉정하게 판단하기는 어렵다.
경영학을 가르치는 친구와 이 문제를 토론한 적이 있다. 그는 월 임대료를 받기 위해 상가 점포를 매입했는데, 그 지역의 부동산 가격이 올라 큰 시세 차익을 올렸다면 그것은 투기가 아니라고 한다. 그러나 작은 아파트라도 시세 차익을 얻기 위해서 전세금을 끼고 은행의 융자금으로 매입을 했다면 수익의 여부에 상관없이 이것은 투기라고 한다. 매입 당시에 임대수익이나 사용 수익을 고려하지 않고 단기간의 전매수익만을 목표로 했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상품이 가진 기본적인 가치(사용 가치)에는 관심을 두지 않고 단지 새로운 거래 가치(교환 가치)만을 목표로 할 때 투기가 발생한다. 투자와 투기를 가르는 핵심적인 기준은 사용가치를 창출하는지 여부다.
이렇게 정리를 해도 의문이 완전히 사라지는 것은 아니다. 가상화폐까지는 아니더라도 요즘 우리 주변에 펀드나 주식 투자에서 완전히 자유로운 사람이 얼마나 될까. 살펴보면 한국의 주식시장은 이미 단기수익을 노리는 투기적 성향의 자본에 상당부분 잠식돼 있고, 투기성 자본은 기업의 장기적 비전에는 관심이 없다. 그들은 주식의 가격(교환가치)에만 관심이 있고, 기업의 가치(본질가치 혹은 사용가치) 창출에는 진지한 관심을 두지 않는다. 투자와 고용을 창출하기보다는 단기 시세차익을 올리고 빠지는 게 이들의 최대 목표다.
기업들도 주식시장의 이러한 요구로부터 자유롭지 못하다. 게다가 은행들마저도 단기수익을 노리는 외국자본에 잠식되면서 기업대출의 비중을 줄여온 지 오래다. 그리하여 마침내 단기적 시세 차익의 추구는 전 사회의 공통 이념이 되었다. 아마도 가상화폐의 광풍은 그렇게 준비되었는지도 모른다.
이런 상황에서 우리가 하는 거래는 투자일까 아니면 투기일까. 과연 어느 누가 투기가 아니라고 자신할 수 있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