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진핑의 중국을 읽는 키워드 2개···’전통적 우월감’과 ‘현대사 콤플렉스’

중화인민대회당 <사진=위키피디아>

[아시아엔=김국헌 전 국방부 정책기획관] 중국을 제대로 이해하려면 전통적 우월감과 현대사의 깊은 피해망상이 버무려진 콤플렉스를 함께 이해해야 한다. 중국인은 유달리 배타의식이 강하다. 이를 잘 이해하기 위해서는 중국이 현대에 겪은 치욕의 역사를 알아야 한다. 중국을 상대하는 데 있어 중국 역사를 통해 중국인의 心思를 잘 아는 것이 첫째다.

1840년 제1차 아편전쟁, 1842년 제2차 아편전쟁이 일어났다. 청이 영국 사절단에 삼궤구고(三跪九叩)를 요구하던 허무맹랑한 일이 말 그대로 허망하게 깨졌다. 중국이 지대박물(地大物博)이라 하나 반대편에는 그에 못지않은 대영제국도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1885년 청불전쟁이 일어났다. 청은 프랑스에 패배하여 베트남에 대한 종주권을 잃었다.

1895년 청은 청일전쟁에서 패배하여 조선에 대한 종주권을 상실했다. 대만도 상실했다. 1910년 한일합방 후 조선은 일본의 일부가 되었으나, 대만은 1945년까지 50년 동안 일본의 식민지가 되었다. 일본은 요동반도도 접수하려 했으나 3국 간섭으로 뜻을 이루지 못했다. 1900년 북청사변이 일어났다. 의화단에 의해 서방이 공격받자 영국, 프랑스, 러시아, 미국, 이탈리아, 오스트리아-헝가리, 일본 등 8개국 연합군의 공격으로 북경이 실함되었다.

1931년 일본은 만주사변을 일으켜 만주국을 세웠다. 심지어 청의 발상지인 만주가 중국에서 떨어져 나갔다. 1932년 일본은 만주사변에 쏠린 이목을 돌리기 위해 열강의 조계지가 있는 상해에서 사변을 일으켰다. 일본이 전승을 축하하는 자리에 윤봉길 의사가 폭탄을 던져 일본의 군부와 외교관 등 요인을 폭살한 것이 이때다.

1937년 일어난 중일전쟁은 1945년까지 이어졌다. 1941년 일본은 하와이를 기습하여 태평양전쟁을 일으켰다. 해군은 미드웨이해전에서 패배한 이후 미국의 反攻을 받아 후퇴를 거듭했다. 육군은 대륙에서 중국군의 장기 저항에 시달렸다. 남경학살은 지구전에 시달려 포악해진 일본군이 남경 점령 후 중국인의 저항을 꺾으려고 저지른 것이다. 중일전쟁 8년 동안 중국 국민이 입은 참상은 필설로 헤아릴 수 없다. 이에 필적할 수 있는 것은 독소전쟁에서 소련군과 인민이 받은 피해 밖에 없을 것이다.

1949년 10월 1일 중화인민공화국이 수립되었다. 모택동은 천안문에서 중국이 다시 일어섰음을 선언했다. 1840년 아편전쟁 이래 당해왔던 굴욕에서 벗어나 중국이 일어선 것이다. 일찍이 “중국을 건들지 마라. 중국이 잠에서 깨어나면 세계가 진동할 것이다”라고 한 나폴레옹의 예언이 맞았다. 중국은 정권 수립 직후 티베트를 침공하고 1950년 ‘조선전쟁’에도 개입하여 세계 최강의 미군과도 부딪쳐 운산과 장진호에서 미군에게 패배를 안겨 주었다.

중일전쟁과 국공내전에서 단련된 중공군은 일류의 전사였다. 1962년 중국은 인도와 국경분쟁을 벌여 인도를 물러나게 만들었으나, 1969년 소련과의 국경분쟁에서는 막강한 소련군에 참패를 당했다. 1979년 중월전쟁에서도 교훈을 가르친다고 들어왔다가 오히려 교훈을 얻고 물러나지 않을 수 없었다.

중국은 패배의 연속인 현대사를 통해 잃은 것만큼 많은 것을 얻었다. 그것을 읽어내야 중국과 제대로 맞설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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