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조적 외교 벗고 창조적 외교 절실···미·일 넘어 인도·호주 등으로 무대 넓혀야
[아시아엔=김국헌 전 국방부 정책기획관] 한국전쟁에서 사단 규모의 참전은 미국 이외에 영연방 밖에 없다. 1950년 당시 영국 형편은 패전국 독일과 별로 차이가 없었다. 2차대전 초기 미국은 영국에 구축함 50척을 대여했는데, 영국은 미국에 버뮤다를 해공군 기지로 제공했다. 처칠이 미국을 세계대전에 끌어들이기 위해, 루즈벨트는 대가를 얻기 위해 외교전이 치열했다. 처칠이 목욕탕에서 루즈벨트에게 “대영제국 수상은 미국 대통령에 감출 것이 아무 것도 없다”고 한 일화는 유명하다.
1차대전에서 자치령(dominion)인 오스트레일리아(A), 뉴질랜드(NZ), 캐나다(C)는 ANZAC 사단을 이루어 참전했다. 이들은 참호전에서 엄청난 희생을 보았다. 이들은 미국과 마찬가지로 영국에서 건너간 이주민들이 만든 나라로, 식민지가 아니고 자치령의 지위를 가졌다. 아직도 호주와 뉴질랜드, 캐나다의 국가원수(head of state)는 엘리자베스 2세다. 미국에서 영국으로 건너가면 여왕의 초상화가 걸려 있는 것에 놀란다. 물론 이것은 순전히 형식적인 것이지만 그 형식이 아직 남아 있는 것에 주목을 요한다. 캐나다는 원래 프랑스인이 개척했는데 처칠이 ‘18세기의 세계대전’이라고 일컫는 7년전쟁 후 영국이 차지한 것이다. 지금까지도 프랑스인의 후예가 많으며, 공용어로 영어와 불어를 같이 쓴다. 국기도 1965년에 ‘Union Jack’을 빼고 단풍을 넣어 새로 만들었다.
한편 6.25 전쟁 당시 유엔군이 북진을 계속하자 중공의 주은래 수상은 인도 대사를 불러 “유엔군이 38선을 넘으면 중공군이 개입하지 않을 수 없을 것”이라는 경고를 전달했다. 인천상륙 성공 후 승승장구하던 맥아더는 이를 일축했다. 韓滿(한만) 국경을 앞에 두고 전진하던 미군은 12월에 군우리와 장진호에서 풍비박산했다. 말이 작전상 후퇴지 일패도지(一敗塗地)였다. 미국이 중공군 저지를 위해 원폭 사용을 검토했으나 영국이 반대했다. 우리 국내에서는 장사꾼 영국이라고 반대가 비등했으나, 미국과 영국의 역할분담이라고 보아도 좋을 것이다.
1960년대에 인도는 인도네시아, 이집트와 함께 비동맹의 주도국이었다. 인도가 가진 외교적 역할은 지금에도 눈여겨 볼 필요가 있다.
지금도 호주는 미국과 동맹관계에 있다. 미국, 호주, 뉴질랜드가 ANZUS 동맹을 구성했으나 뉴질랜드가 미원자력 잠수함의 입국을 거부해 뉴질랜드는 제외되고 호주만 남았다. 호주는 주기적으로 미국, 한국과 T/S 훈련에 참여한다. 여기 일본도 참여하게 되면 자연스럽게 한국, 미국, 호주, 일본 연합 해군이 되어 남중국해에서의 항행 안전을 맡는 강력한 해군력이 된다.
문재인 대통령이 미국은 동맹이나, 일본은 아니라고 했는데 일단 국내를 고려한 발언이라고 볼 수 있지만, 일본이 독도 문제로 우리 신경을 건드리는 한 일본과 동맹이 되기는 어렵다. 이 문제를 방위백서에 올리는 버릇을 잡아놓기 전에는 안 된다. 위안부 문제에 대해서도 ‘통석의 염’(痛惜의 念)을 넘는 성의를 보여야 한다. 한일 외교당국이 만지작거리는 돈이 문제가 아니다. 두 가지가 해결되기 전에는 일본은 한국과 동맹이 될 수 없다.
이런 입장을 미국조야에 명확히 전달해야 한다. 외교당국만이 아니라 미국 국민의 공감을 얻도록 해야 한다. 미국, 일본만 붙잡고 있을 것이 아니라 눈을 크게 뜨고 세계를 보아야 한다. 이것이 교조적이 아닌 진정으로 창조적인 외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