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얀마불교문화순례단’과 함께한 나를 찾아 떠난 3박5일

[아시아엔=글 이상기 기자, 사진 전희구 한국뇌성마비복지회 부·울·경 지회장] 지난 10월 25일 서울 중림종합사회복지관에서 이색적인 북콘서트가 열렸다. 한국과 미얀마의 장애인들이 공동으로 발간한 시집에 실린 시를 낭송하는 것이었다. 불교장애인 모임인 ‘보리수아래’ 최명숙 대표 눈에는 물기가 흘렀다. 작년 말께부터 1년 가까이 불편한 몸을 이끌고 동분서주한 끝에 한국-미얀마 장애인 공동시집 <빵 한 개와 칼 한 자루>(모과나무)가 그 직전 출간돼 이날 동료 장애시인들과 함께 무대에 서게 됐기 때문이다.

<빵 한 개와 칼 한 자루>에는 미얏쭈에잉(시각장애), 밍카웅쪼스와(절단장애) 등 미얀마 장애시인 8명의 15편과 한국의 김미선·이경남·정준모·홍현승·최명숙씨 등 5명이 지은 22편 등 모두 37편이 한국어와 미얀마어로 담겨있다. 번역은 부산외대 박장식 교수와 주한 미얀마대사관 레이레이몬 통역관이 맡았다.

북콘서트 닷새 뒤인 10월 30일 오후, 장애인·비장애인 18명으로 구성된 ‘미얀마불교문화순례단’이 인천국제공항에 하나둘씩 모여들었다. 3박5일간 미얀마 여정이 시작된 것이다. 참석자 모두는 일정 동안 각기 정해진 역할을
맡았다. 회덕사 주지로 이번 행사 총책임을 맡은 효현스님은 이용현씨 도우미로, 광림사·연화원 원장 해성스님은 일정의 시작과 마무리 때 법회 인도를, 강선사 성운스님과 박정범(53·사업)씨는 홍현승(27·시인, 뇌병변 장애) 도우미, 중앙승가대대학원 무심스님과 최숙희(68·여) 조계종 포교사는 미영순(70·여) 전국저시력인연합회장 도우미, 구명수 공사 교수와 필자는 김영관(34·뇌병변 장애) 도우미 역할을 맡았다. 지체장애를 지닌 지소연(59·여) 수필가와 전희구(72) 한국뇌성마비복지회 부산울산경남지회장은 사진촬영을, 윤동혁(67) 푸른별영상 대표는 영상촬영을, 그리고 용굴암 범종스님은 운영지원, 최명숙(뇌병변 장애) 보리수아래 대표는 운영총괄을 각각 맡았다.

인천공항을 출발한 순례단은 이날 밤 10시 양곤 국제공항에 도착해 양곤호텔로 이동했다. 5~6개월의 지리한 雨期가 지나고 섭씨 20도를 약간 웃도는, 밤하늘엔 무수한 별들이 음력 9월 열이틀 둥근달과 함께 일행을 반겼다. ‘아제’ 여행사와 최명숙 운영총괄, 효현스님이 고심에 고심을 거듭해 짠 미얀마 일정은 다음과 같다.

제2일
-지체장애인협회 방문
-민속촌(소수민족의 전통가옥 및 생활문화
모아 놓음)
-차욱타지 파고다(길이 67m의 와불)
-미얀마장애인협회와 만찬(서라벌 한식당)

제3일
-마하파따나 동굴사원(경전 결집지)
-아웅산국립묘지 참배(1983년 전두환 전
대통령 방문 당시 폭파사건 현장)
-쉐다곤 파고다(미얀마 불교문화의 精髓)
-장애인 보장구 공장 견학

제4일
-쉐달랴웅 와불(길이 56m, 높이 18m)
-짜가와이 수도원(1000여 수도승이 생활)
-쉐모도 파고다(114m로 미얀마에서 가장 높은 탑)
-짜익푼 파고다(4개의 좌불상으로 된 사면불상)
-술래파고다 등 시내 야경

빡빡한 일정이다. 더구나 일행 중 특히 주변의 도움이 필요한 장애우가 함께 하는 순례인 것을 감안하면 더욱 그렇다. 그러나 숨 가쁘게 여기는 이는 아무도 없었다. 아마도 미얀마가 주는 푸근함 때문이었으리라. 거기엔 미얀마에 7년 전 정착한 가이드 김성호씨의 해박하고 정성스런 설명도 한몫 했다.

필자는 이 글을 쓰기 직전 동행했던 장애우들에게 “가장 인상 깊었던 것을 몇 가지 알려달라”고 했다. <아시아엔> 독자들께서 아시다시피 위 일정에 나와 있는 관광지들은 인터넷 검색을 통해서 충분한 정보를 알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런 면에서 이 글은 필자와 장애우들의 합작품이 되는 셈이기도 하다.

국제정치학 박사인 미영순 전국저시력인연합회 회장(전 흑룡강성대학교 동북아연구소 객원교수)은 이번 미얀마 방문을 사회적인 면과 문화적인 측면으로 나눠서 설명했다.

“옥을 사원의 바닥재로 깔고 사는 국민소득 1500달러의 이 나라 어린이들은 성장과정에서 거치기 마련인 낯가림이 없어 신기하다. 미얀마에 富村이 형성되기 시작하는 걸 보면 10년쯤 뒤에는 다음 두 가지 형태로 나타나지 않을까 싶다. 즉 나는 비록 흙수저지만 내 아들은 금수저로 만들고 말겠다는 ‘이명박 형’과 반사회적 불만분자들을 양산하는 분화를 겪지 않을까 한다. 불교국가인 이 나라는 그동안 사원이 교육·복지·의료를 담당했으나, 자
원개발과 관광객 유입 등으로 경제가 발전하면서 국가경영이 세분화되고 그 결과 같은 불교국가인 태국이나 베트남의 전철을 밟게 될 지도 모르겠다. 또 하나 지금도 로힝야족 케이스에서 보듯 불교도와 회교도의 갈등 심화도 예상할 수 있다. 이름에 성이 없는 것으로 보아 모계사회가 상당히 늦게까지 지속되었던 것 같다. ‘밍글라바’라고 만날 때 쓰는 인사말은 있는데 헤어질 때 인사가 없어 의아하다. 그리고 마스카라에 립스틱 거기다가 네일아트까지 한 불상을 보면 이곳의 부처님은 철저히 낮은 데로 임하신 분이란 생각이 든다. 또 인상적인 것은 사람 중심이 아닌, 새나 개나 나무나 인간은 모두 동등한 생명체로 인식하는 게 인상적이다.”(미영순 전국저시력
인연합회장)

“미지의 나라, 금빛 찬란한 불탑 중심의 불교문화가 인상적이었다. 차 안에서 바라보는 양곤의 평화로움 속에서 빠르게 변화하는 활기 같은 것을 느낄 수 있었다. 거리를 운행하는 버스에 쓰여있는 문구 YBS(양곤버스조합)를 보면서 아웅산 수치 정부의 대국민 정책이 복지 중심으로 옮겨갔다는 것을 살짝 엿볼 수 있었다. 또 장애인들과 만나고 보장구 공장을 견학하면서 우리나라의 1960~70년대로 돌아간 듯한 느낌도 들었다. 한편으론 자칫 미
얀마인들이 받는 것에만 익숙해지면 안될텐데 하는 걱정이 들기도 했다.”(최명숙 보리수아래 대표)

이어지는 최명숙 대표의 말.

“한-미얀마 공동시집 <빵 한 개와 칼한 자루>에 이 제목의 시를 쓴 시각장애시인 미얏쭈에잉 부부를 만나 참 반가웠다. 미얏쭈에잉은 고아로 자라 시각장애인학교에서 도서관 관리인으로 근무하면서 시나리오 작가, 소설가, 오퍼레이터, 프리젠터로 활동하고 있다. 저시력장애인 인미얏쭈에잉의 아내는 남편의 글을 컴퓨터로 옮기는 작업을 한다. 단란하고 화목한 부부시인의 모습은 잔잔한 감동 이상이었다. 미얀마 보장구 제작공장인 삐존 치두 레뚜 니삔야 세욘을 방문한 것도 내겐 뜻 깊었다. 민간이 운영하는 이 공장에서는 절단장애인용 의수·의족·목발 등을 제작하고 수입 보장구 맞춤지원을 비롯한 보장구 수리사업을 한다. 직원 20여명 중 절단장애인도 3명 있다.”

공군 복무 중 교통사고로 뇌의 손상을 입은 김영관씨는 방문기간 내내 필자의 말벗이 돼주었다. 그는 “사람들이 모두 여유가 있고 얼굴에 미소가 떠나지 않아 삶이 풍요로워 보였다”며 “매연이 없어 어느 곳에서든 하늘이 너무 잘 보이고 가슴도 탁 트이는 느낌이었다”고 했다. 김영관씨는 “자연을 훼손하지 않고 원래대로 최대한 이용하며 인공적인 것들이 거의 없어 너무 맘에 들었다”고 했다.

참가자 가운데 두 번째로 어린 홍현승(27)씨 얼굴엔 늘 미소가 감돌았다. 쌍둥이 남매로 장애를 안고 태어난 그는 대학에서 문예창작을 전공한 시인이다. 그의 소감은 한편의 시다.

“차욱타지에서 거대한 와불을 보며 환희가 느껴지고 나도 모르게 가슴이 벅차올라 눈물을 참느라고 무진 애를 썼던 순간이 떠오른다. 마치 붓다께서 내게 ‘현승아, 어서 와라. 너무 잘 왔다’고 하시는 것 같았다. 그리고 지체장애인협회에서 남자 뇌성마비 선생님이 계셨는데 그분의 미소와 미얏쭈에잉 시인 부부의 행복한 모습이 계속 눈에 남는다. 마지막으로 거리 어디에서나 볼 수 있는 들개들의 자유스러움과 누군가의 소유도 아닌 더불어 살아가는 모습들이 정겨웠다.”

‘미얀마, 나를 찾아 떠난 3박5일’을 마치며 출발 전날 읽었던 홍현승 시인의 ‘녹천역에서 기다릴게’가 다시 떠올랐다.

“녹천역 승강장 벤치에는 종이 한 장 뒹군다. ‘치매엄마를 찾습니다.’ (중략) 언제 나간 건지 알 수 없지만/ ‘엄마 나 돌아올 거라 믿어 나 녹천역에서 기다릴게’/ 전단지를 나누어 주는 장갑 낀 딸의 손은 간절함을 담는다/ 저녁 퇴근 길, 청테이프로 역전에 붙이고 간 전단지는/ 매서운 바람에도 펄럭이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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