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장애인의 외침 “이준석 대표님, 다른 방식 정말 없습니다”

아래 글은 이준석 국민의힘 대표의 페이스북에 대한 장애인 홍현승 직장인의 반론 성격의 글이다. <편집자>

[아시아엔=홍현승 직장인] 3월 마지막 토요일 오랜만에 친구를 만나기 위해 외출을 했다. 지인들의 심심치 않은 코로나 확진 소식에 최대한 외출을 자제했다. 외출 전 자가검사키트를 세개 샀다. 증상이 있는 것은 아니지만 마스크처럼 쟁여놓아야 될 상비품이기 때문이다.

며칠 전 전동휠체어 중증장애 동료누나를 동네에서 만날 기회가 있을 뻔했다. 그러나 동네로 선뜻 오라고 하지 못하는 이유가 있다. 내가 사는 창동에 접근 가능한 음식점이나 카페가 떠오르지 않았다. 20년 가까이 사는 동네임에도 말이다. 나는 전동휠체어를 타지만 단거리는 보행이 가능해 어느 공간이든 제약이 적어 관심을 두지 못했던 것이다. 미안한 마음에 내가 다녀온 음식점, 카페, 호텔, 여행지, 접근 가능한 공연장의 정보를 공유하자고 마음 먹고 열심히 사진을 찍었다.

어제 집에 와서 올리려고 했는데 국민의힘 이준석 대표가 페이스북에 올린 것을 보고 너무 경악한 나머지 올리지 못했다. 나는 촛불 이후 국민의힘을 지지하지 않았다. 그렇다고 더불어민주당도 지지한 것은 아니다. 내가 촛불 당시 자유한국당 김진태 의원의 “촛불은 바람 불면 꺼진다”고 한 발언이 너무 싫었다. 울진 산불은 바람 때문에 어마어마하게 퍼졌고 며칠간 잡지 못했다. 그러나 광화문 촛불은 꺼졌다. 끄게 만든 주범이 바로 현 정권이다.

나는 그래서 국민들이 국민의힘에게 정권을 다시 맡긴 것이라고 본다. 그런데 이준석 대표의 글에 나는 분노했다. 정말 여당이 된 대표가 인권을 쟁취하려는 장애인들 투쟁을 저격한 것에 분노했다. 신체장애 당사자들이 이용할 수 있는 교통수단은 지하철과 장애인콜택시(장콜)뿐이다. ‘저상버스 있지 않냐?’고 묻는다. 있긴 하다.

그런데 사실상 타지 못한다. 고장빈도가 많고 너무 공간이 타이트 하기 때문이다. 그리고 1분도 못 기다려주는 한국사회에서 리프트가 내려오고, 장애 당사자가 버스에 올라타 자리잡는데 차가운 시선을 견디기 쉽지 않다. 적어도 나는 안 타고 만다. 물론 2~3번 아주 편하게 저상버스를 탄 적이 있다. 일본 도쿄 시내에서 그랬다. 일본에서는 정말 눈치 없이 저상버스를 탔다. 일본과 한국은 2시간 하늘 길인데 너무 다른 세계였기에 충격이었다. 13년 전 충격이었다. 하지만 13년이 지난 충격은 한국에서 볼 수 없다.

‘장콜 타. 휠체어도 태워주고, 요금도 저렴하고 얼마나 좋아?’ 이렇게 말들 한다. 좋다. 카카오택시처럼 몇 초, 몇 분 만에 배차된다면 탈 수 있다. 그런데, 정말 운 좋으면 5분, 그냥 운 좋으면 20~30분, 평균 1시간, 조금 걸리면 1시간 반, 운 나쁘면 2시간, 정말 인내심 테스트하면 3~4시간 걸린다.

내가 창동 우리 집에서 포천에 있는 학교에 간다면, 집에서 의정부까지 서울콜, 의정부에서 포천 초입까지 의정부콜, 포천 초입에서 학교까지 포천콜, 예약시간도 제각각, 예약방법도 제각각, 이용방법, 이용신청도 제각각···. 이런 장콜이 교통수단이다. 비장애인들한테 묻고 싶다. 교통비가 싸니 이렇게 타고 다닐 거냐고?

자신의 일정을 복불복에 맞출 자신이 있는지? 단지 요금에 한정 지으면 절대 안 된다. 나는 카카오택시 장콜이 있다면, 요금이 일반요금이라도 카카오택시 장콜을 탈 것이다. 카카오택시 장콜이 있다면, 무임승차 지하철 타지 않을 것이다. 바로 바로 배차되고, 혹 시외에서도 그 지역의 카카오택시처럼 내가 부르면 바로 오는 차가 있다면 말이다.

한국의 저상버스가 13년 전 내가 이용해봤던 일본 도쿄 시스템처럼 단 한사람도 얼굴 붉히지 않고, 어느 버스노선이든 일본의 전 지역처럼 어디서든 휠체어 타고 버스를 탈 수 있다면, 나는 장애우대 요금, 장애무임승차가 아닌 성인 요금 내고서라도 타겠다.

이준석 대표가 페이스북에 올린 “다 이해한다. 필요하다. 그러나 이런 방식은 잘못되었다”, 맞다. 나 역시 저분들에게 말하고 싶다. “다른 방식이 정말 없는지.” 그런데 정말 없다. 분노스럽게도 정말 없다.

저 행렬에 함께 하지 못해 죄송하다고 말하고 싶다. 저분들의 투쟁으로 엘리베이터가 생겨서. ‘이런 방식’은 최후의 방식이 되면 좋겠다. 캠페인, 정책토론, 구의원 시의원 시장 장관 면담, 대통령 후보 면담(5년 전 문재인 후보 포함) 방송인터뷰, 다큐 특집, 그리고 스크린 도어 설치 전 철도 점거···. 모두 시도했었다. 그리고 약속도 받았다.

“2004년 100% 하겠습니다.”
“2022년 100% 하겠습니다.”
“2024년 100% 하겠습니다.”

‘아, 두번은 어겨도 세번은 안 어기겠지’라며 기다려야 하나요? 아니면 국제사회 호소로 나가야 하나요? 많은 사람들이 “다른 방식으로 하면 되지 않냐”고 말한다.
그러면 그 방법 제시 좀 해주면 좋겠다. 위 방식을 제외하고. 설마 지하철 리프트는 제시 안하겠지.

창동역 1호선에는 이제 엘리베이터 설치중이라 리프트가 있다. 그런데 그 리프트는 벨트가 없고, 최소 바가 내려온 상태에서 45도로 아주 천천히 내려오는 롤러코스터와 같다. 언제 리프트가 멈춰서도, 또 언제 리프트가 추락해도 전혀 이상하지 않는 기계이다. 그리고 그 책임은 이용자에 있다.

그것이 지하철 리프트다. 대중교통에 내 목숨을 걸어야 된다면 탈 수 있을까? 내 권리를 위해 타인의 권리를 침해해서는 안된다고 한다. 맞다, 안 된다.

그렇다면 ‘기본’적인 ‘최소’한의 권리를 20년, 30년, 40년 보장받지 못하는 권리는 누구에게, 어떻게 호소해야 하는지 정말 궁금하다. 또 ‘희망고문’으로, 또 ‘약속에 대한 믿음’으로 기다려야 되는지 정말 묻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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